이불
새벽부터 또 눈이 내린다. 먼 데 산은 벌써 하얀 이불을 덮고 잠들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송이는 가늘고 작다. 온 누리를 순수하게 만드는 몸짓 같다. 한동안 창문에 서서 눈 내리는 광경을 바라본다. 시선 바로 앞 놀이터에, 정원수에, 건너편 206동 현관 앞에, 도로에, 사뿐사뿐 내려앉는다. 카시미론이불을 처음 덮었을 때 생각이 난다. 쌓이지 않으면 그 이불처럼 가벼우리라.
읍에서 작은엄마와 살림을 시작한 삼촌 집에 갔을 때다. 하룻밤 묵어야 했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끊겼기 때문이다. 작은엄마는 내게 새로 산 카시미론이불을 덮어주었다. 겨울엔 두껍고 무거운 솜이불을 덮는 게 일상이었고 익숙한지라 이상했다. 이불을 덮긴 했는데 가벼워 둥둥 떠 있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잠이 오지 않았다. 갈 수만 있으면 집으로 가고 싶었다. 아니 솜이불을 덮고 싶었다. 삼촌과 작은엄마는 후줄근한 솜이불을 덮었지만 바꾸자고 할 수 없었다.
모처럼 조카가 왔기 때문에 새로 산 깨끗한 카시미론이불을 내놓은 걸 모를 리 없다. 당시 카시미론이불이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도 안다. 너도 나도 작은 계를 해서 무거운 솜이불에서 그 이불로 바꾸던 시절이었다. 하나라도 마련하면 자랑이 늘어지던 카시미론이불. 작은엄마는 그걸 덮어주고 싶었으리라. 몇 번이고 이불을 들썩여보았다. 무게감을 전혀 느낄 수 없이 가볍다. 폭삭하고 따뜻한 이불이었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았다. 안 그래도 자리 덧을 하는 예민한 아이인데, 평소와 다른 이불이니 잠이 올 리 만무하다. 얼마나 뒤척이고 뒤척였는지. 읍의 밤은 우리 집이 있는 산골의 밤과 달랐다. 밖엔 전깃불이 환했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상점 문 닫는 쇳소리도 들렸다. 어느 상점 뒷방 하나를 세내 살던 삼촌네 집은 협소하고 시끄러웠다. 옆에도 방이 몇 개 있어 사람들이 연신 대문을 삐거덕 대며 드나들었다.
잠이 오지 않는 외지의 밤, 가볍디가벼운 카시미론이불을 못마땅해하며 잠을 청했다. 어깨를 누르는 묵직한 느낌의 솜이불은 처음엔 찬 기운이 돌지만 금세 따뜻해지곤 했다. 카시미론이불은 처음부터 따뜻하고 폭신했다. 하지만 무게감이 전혀 없어 덮었는지 안 덮었는지 모를 정도다. 난 그것에 익숙하지 못했다. 삼촌이 덮고 잠든 솜이불과 바꾸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 가까이 왔을 때쯤, 난 잠이 들었던 듯하다.
결혼할 때, 산밭에서 키워 딴 목화로 솜이불을 만들어주었다. 카시미론이불도 샀다. 객지로 떠돌며 솜이불보다 가볍고 따뜻한 카시미론이불을 사용했던지라 나는 어느새 거기에 익숙해 있었다. 솜이불 필요 없다고 했는데, 할머니와 어머니는 무슨 소리냐며 동네 아주머니들을 불러 혼수이불을 꿰맸다. 당시 혼수이불 꿰맬 땐 잔칫집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곤 했다, 어느 집이나. 안방 가득 그 이불 하나 만드는데 온 동네 아낙네들이 다 모여 덕담을 주고받았다.
결혼해 살면서 주로 카시미론이불을 사용했다. 그때는 이미 솜이불이 사양길에 있었다. 결혼하는 사람들도 솜이불보다 가볍고 따뜻한 이불을 혼수로 해갈 때였다. 산골이어서 그랬을까. 할머니는 나와 여동생이 스무 살쯤 되면서부터 산밭에 목화를 심었다. 해마다 조금씩. 그 목화솜을 따서 손질해 모아 내 혼수이불을 만들었고, 여동생 혼수이불을 만들었다.
“그 솜이 얼마나 좋은 건지 알제? 할미 정성도. 아무리 신식 이불 좋다 해도 목화솜 둔 이불만 못 혀.” 할머니는 도시에선 솜이불을 버리더라는 말을 어디서 들으셨는지, 친정에 가면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셨다. 사실 그랬다. 도시에 나와 살면서 솜이불 사용할 일이 없었다. 보일러 들어오는 따뜻한 방은 카시미론이불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가끔, 아주 가끔 솜이불을 꺼내보긴 했으나 크고 무거워 다시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다.
그 솜이불을 몇 번이나 덮었을까. 무겁기 한량없고 홑청 손질을 해야 사용할 수 있는 솜이불을. 그래도 버릴 수 없었다. 지금도 장롱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언젠가 어머니가 그 이불을 나누어 두 개로 만들어 놓고 가셨다. 그래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 여동생에게 해준 솜이불까지 내게로 와서 장롱을 차지하고 있다. 동생이 버린다기에 가져왔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평소 하셨던 말이 내 의식 속에 잠재돼 있어서 그럴까. 내 것도 동생 것도 차마 버릴 수 없었다. 자갈 많은 산밭에 그 목화 심고 가꾸고 솜 따서 손질했을 할머니 정성과 마을 아주머니들의 덕담을 외면할 수 없다. 식량 마련이 급해 한꺼번에 많이 심지 못하고, 해마다 조금씩 심어 따 모은 목화솜. 자라는 손녀들 혼수이불 만들어 주려는 일념 하나로, 콩 한 이랑 팥 한 이랑 못 심은 걸 아까워하지 않고 키운 건데, 어떻게 버릴 수 있겠는가.
나는 이성적이지 못하다. 실용성을 볼 때 그 솜이불은 불필요하므로 버려야 할 물건인 게 맞다. 지금 어느 집에서 솜이불을 사용할까. 아마 거의 없을 거다. 지금 나도 아주 포근하고 따뜻한 극세사이불을 사용한다. 가끔 갓 풀 먹여 시친 이불 홑청의 가슬가슬한 감촉이 그리울 때 있다. 특히 달빛이 창문으로 스며드는 겨울밤에. 하지만 장롱 깊숙이 넣어둔 솜이불을 꺼내진 않는다.
눈은 계속 내린다. 싸라기눈이다. 엊그제 본 파랗게 올라오는 조팝나무 새싹이 염려된다. 카시미론이불처럼 가볍게 새싹을 덮어주는 데서 눈이 그쳤으면 싶다. 어린싹이 다치지 않도록. 눈 내리는 날, 화롯불에 고구마를 구워 주던 할머니가 그립다. 햇살 좋은 날 솜이불을 꺼내 손질해 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