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바늘을 만났다. 뒷산으로 접어드는 둔덕에서였다. 도깨비바늘을 보고 한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어릴 적에 뒷산이나 개울에서 놀다 오면 바짓가랑이에 도깨비바늘이 즐비하게 들러붙어 있곤 했다. 꼭 이맘때. 하늘을 보았다. 전형적인 우리나라 가을하늘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우리들의 놀이터는 개울과 뒷산이었다. 우르르르 몇 아이들이 몰려가면 무조건 따라갔다. 뒷산에는 김씨 문중의 묘지가 거지반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묫등이 놀이기구나 마찬가지였다. 한 아이가 맨 위 묫등에서 굴러 내리기 시작하면 너도 나도 데굴데굴 구르며 아래까지 내려왔다. 그리곤 다시 또 위로 올라가기를 몇 차례, 싫증이 나면 묘 앞에 세워진 문인석이나 장명등에 올라가 놀았다. 소심했던 나는 구르기는커녕 문인석에도 올라가지 못했다.
멀리 신작로에 가끔 버스 지나가는 게 보였다. 생각해 보면 그 신작로를 보며 나는 도시로 나가는 꿈을 꾸었던 듯하다. 산골아이인 내게 도시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공간으로 보였을까. 아니면 아무런 변화 없는 산골에선 무엇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열일곱 살에 객지로 나왔을 때 두려움을 그다지 느끼지 않았던 게, 뒷산 언덕에서 보았던 신작로와 버스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이제 든다. 한동안 그렇게 서 있다 보면 아이들은 하나 둘 마을로 내려가고 혼자만 남았다.
낮게 엎드린 초가지붕에서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가끔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설핏 기운 저녁 해는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 버리고, 나는 천천히 산에서 내려왔다. 김씨 문중 묘소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오솔길은 신비로웠다. 빨갛고 작은 구슬을 조롱조롱 단 여뀌가 피었고 누렇게 변해가는 달개비 잎사귀는 지나는 사람들 발에 밟혔다. 억새가 하얀 꽃대를 저녁바람에 흔들었고 참새들이 떼 지어 날았다.
사립문에 들어서자마자 훅 끼쳐오는 된장찌개 냄새는 갑자기 허기를 몰고 왔다. 봉당에 올라설 때야 바짓가랑이에 주르르 붙어 있는 도깨비바늘을 발견했다. 어떤 날은 허벅지까지 붙어 있었다. 그야말로 도깨비처럼 언제 그렇게 많이 들러붙었는지. 하나하나 떼어내도 방에 들어가면 할머니가 뒤에 붙은 걸 떼어주셨다. 그냥 앉으면 엉덩이를 따끔하게 찌르고 마는 도깨비바늘, 반세기도 훨씬 넘어 오늘날에 만나다니. 불청객이었던 도깨비바늘이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앞개울도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봄에는 다슬기를 잡았고 여름에는 멱을 감았다. 가을과 겨울에는 개울에 지천인 돌멩이로 방을 만들거나 개울이 얼면 얼음을 지쳤다. 편편한 돌멩이를 주워서 펴고 나지막하게 돌담을 쌓았다. 가을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쬘 때 내가 만든 방에 앉아 있으면 안온할 뿐 아니라 나만의 공간이라는 소유감이 마음을 뿌듯하게 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 것을 가지고 싶은 욕망을 키웠던 걸까. 다음날 가보면 내가 돌로 만든 방은 어느새 군데군데 허물어지고 옆에 다른 방이 만들어져 있곤 했다. 누군가가 또 그렇게 자기만의 방을 만들었던 것이다.
신기한 것은 그래도 서운하거나 속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돌은 개울에 있는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었으니까.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게 아니기 때문이었을까. 돌로 만든 방을 두고 우리는 다투지 않았다. 다시 또 돌을 깔아 방바닥 만들고 담 쌓아 방을 만들었다. 햇볕 받아 찬기가 없는 돌에 누워 푸른 하늘을 보았고, 누군가 먼저 동요를 부르면 모두 따라 불렀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불장난을 했다. 얼음을 지치다 추워도 불을 피웠다. 불장난처럼 재밌는 게 있을까. 여름 장마에 떠내려 와 큰 돌멩이에 척 걸려 있는 나무토막, 널려 있는 개똥쑥대와 말라가는 풀 등을 모아 불을 피웠다. 발갛게 타오르는 불에 손과 몸을 쬐며 무엇 때문인지 우리는 히히히 웃었다. 콧물이 흘러내린 자죽이 선명한 사내아이가 나를 보며 허연 이를 드러내고 더 크게 웃었다. 내 소설 속의 ‘진절머리 진철이’만큼이나 나는 그 애가 싫었다.
그렇게 놀다 집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개울둑에서 바짓가랑이에 덕지덕지 붙은 도깨비바늘을 떼어냈다. 뒤에 붙은 것은 서로 떼어주기도 했다. 사내아이가 떼어주려고 다가오면 진저리를 치며 피했다. 아이들은 더 크게 웃고 나는 상희를 향해 엉덩이를 돌려댔다. 상희가 흐흐 웃으며 도깨비바늘을 떼어주었고 사내아이는 머쓱한 표정으로 물러나면서도 또 웃었다. 그렇게 웃고 떠들고 뛰고 달리며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면, 언제나처럼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허기를 불러왔다.
도깨비바늘, 우리 마을에만 유독 많았던 걸까.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것을 만나다니. 그때는 뒷산이나 개울 어디든 지천으로 널린 게 도깨비바늘이었는데. 지금도 고향 뒷산과 개울엔 그러할까. 김씨네 문중 묫등에서 구르고 문인석 위에 올라가던 동무들, 앞개울에서 돌로 방을 만들고 불놀이를 하던 그 동무들은 모두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도깨비바늘을 서로 떼어주던 그 고사리손이 지금은 투박한 손이 되어 살아가고 있으리라. 그립다, 그리울 뿐이다. 날 보고 웃던 코흘리개 사내아이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