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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Mar 07. 2024

한국여자들은 말(욕심)이 너무 많아!

[연재] 40. 이혼 16일 차

40. 이혼 16일 차, “한국여자들은 말(욕심)이 너무 많아!”      

    


2014년 3월 16일 일요일 맑음      


  싸스.

  -정식 명칭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重症急性呼吸器症候群)이며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의 약자. 변종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신종 호흡기 전염병.

2002년 11월부터 중국 광둥[廣東]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하여 동남아시아와 유럽, 북아메리카로 빠르게 확산된 호흡기 계통 전염병으로, 발열·기침·호흡곤란·폐렴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침·콧물·가래 등 이미 감염된 환자의 분비물에 오염된 물건을 통해서 전파되며 아직까지는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    


 

  작은 [중국식당]을 운영하는 59세 김 씨는 3명의 자녀가 있다. 아내와는 몇 년 전 이혼했는데 “통장계좌까지 압류해 현금을 탈탈 털어갔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 그에겐 작은 [중국식당]이 전부다. 식당은 주방에서 일할 한국 사람이 없기에 북경댁이라는 아주머니가 일한다. 오늘은 북경댁의 딸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일자리를 찾아오는 날이며, [중국식당] 김 씨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자녀들도 오는 날이다.   

  

  김 씨가 보고 싶은 손자, 손녀들은 죄다 학원에 다니느라 못 왔고 아들 부부와 딸 부부만 참석했다. 막내아들은 [중국식당]에서 빈둥거리며 놀며, 큰아들은 을지로에서 도기(변기 판매) 유통사업을 하고 사위는 중소기업의 만년 과장이다.      


  큰아들은 사업을 더 크게 확장해 볼 생각에 아버지에게 “중국집을 팔아 같이 사업을 합시다.”라고 말하고, 딸은 “한국은 아이를 가르치기 너무 힘들어 미국에 가야겠어요. 그러니 아버지가 좀 도와주세요.”라며 남편을 무능한 사람으로 몰아세우며 “골프장에 가봐. 공기 좋고 넓은 곳에서 남자들이랑 대화하면 얼마나 좋은데”라며 골프 자랑을 늘어놓는다. 또,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밀린 카드값이 3천만 원이 넘었다.     


  “저 부부들은 왜 사이가 나빠요?”     


  북경댁의 딸이 엄마인 북경댁에게 묻자 “한국여자들은 말이 너무 많아. 그래서 남자들이 싫어해. 사장님 사모님도 말이 너무 많아서 헤어진 것 같아. 한국에서는 말을 너무 많이 하면 안 돼!”라고 타이르듯 말했다.     


  [중국식당] 김 씨도 “한국여자들 모두 버렸어. 하나도 쓸만한 사람이 없어. 자기 분수를 모르고 높은 곳만 쳐다본단 말이야. 그러니 어디에 쓰겠어. 식당에서도 사람을 구하지 못해 죄다 중국사람들을 쓰잖아. 너희도 똑같아. 뭐 유학? 너희들 머리가 나빠 애들이 공부 못하는 생각은 왜 못하니?”라고 딸에게도 쏘아붙였다. 이때였다.     


  “여기가 북성루죠? 국립보건원에서 나왔습니다.”   

  

  이들이 모인 자리에 국립보건원 직원이 찾아왔다.     

 

  “북경발 727 항공기를 타고 오신 장만옥 씨 계시죠?”     


  장만옥은 북경댁의 딸이다. 국립보건원 직원이 “장만옥 씨 뒷자리에 탄 50대 아주머니가 샤스로 의심되어 입원치료 중입니다. 그래서 함께 타고 왔던 사람들을 당분간 격리해야 해 왔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도 같이 호흡하고 식사를 하셨으니 지금부터 집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생일을 앞두고 아버지를 찾아왔던 자녀들이 집으로 가지 못하고 보건당국의 다음 조치가 있을 때까지 중국집에만 있어야 했다.    

  

  밤이 되어 부부들은 방으로 들어갔고 김 씨도 슬그머니 북경댁의 방으로 들어간다. 물을 마시러 나온 딸이 그 광경을 보고 오빠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재혼하면 이 재산이 저 중국 여자에게 넘어가. 그러니 막아야지?”    

 

  이들은 오직 아버지의 재산이 탐이 나서 숨겨둔 돈 찾기에 나선다. 김 씨는 통장압류까지 당하며 아내에게 현금을 탈탈 털린 후유증으로 은행거래를 하지 않기 때문에 집안 어딘가에 돈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침 밥상 앞에서 딸은 노골적으로 아버지 재혼을 막는다. 그러자 김 씨가 “그렇지 않아도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어서 오라고 했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라.”라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양복을 멋스럽게 입고 나와 말했다.      


  “나는 너희들을 키우고 교육시켰다. 부모로서 할 만큼 했고 여기 중국집은 내 재산이니 너희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또 있다. 내 나이가 이제 환갑이다. 나도 새 인생을 살아야 하므로 여기 북경댁과 재혼을 할 것이다. 결혼식은 번잡스러워서 안 할 것이니 기념사진이나 찍으려고 너희들을 불렀다. 막내야, 카메라 가져와라.”     


  [사스家족]은 연극이다. 혜화동 소극장 [천공의 성]에서 있었는데 극단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극예술연구회’다. 출연한 배우 중 큰아들역을 맡은 허헌 학우가 초대장을 줘서 관람을 갔다.      


  토요일에 갈까 했는데 일정이 있어서 못하고 나른한 일요일을 무의미하게 보낼 것 같아 캐논 5D Mark3 카메라에 50mm 단렌즈를 끼우고 빌딩을 나섰다. 그리고는 봄날의 기분을 내 보려고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점에 들어갔는데 너무 큰 용량을 주문했다. 처음 들어간 것이었기에 그것이 1인분인 줄 알았다. 시린 이빨을 참으며 한 그릇을 다 먹었다.      


  공연 티켓에 약도가 그려져 있다. 수년 전 이곳에도 낙찰받은 아파트가 하나 있었다. 1년이 지나도 팔리지 않아 전세를 줬었고 결국엔 팔았는데 그때 [부동산중개업소]마다 매물을 내놓느라 다녔기에 지리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 바퀴나 동네를 돌았어도 극장을 찾지 못했다. 약도의 지도가 잘못된 탓이었다.      


  소극장 [천공의 성]은 지하에 있었는데 관객이 만원이다. 겨우 자리를 하나 만들어 끼어 앉았다. 그렇게 맞이한 공연의 시나리오와 연기자들의 연기는 수준급이었다. 문화란 필연적으로 시간적인 노력을 동반한다. 이들도 공연을 위해 많은 시간을 연습하고 연습했을 것이다. 초대권으로 보기엔 민망할 정도로 좋은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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