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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Mar 08. 2024

다들 돈에 미쳤다!

[연재] 41. 이혼 17일 차

41. 이혼 17일 차, 다들 돈에 미쳤다!      


    

2014년 3월 17일 월요일 오전에 맑음 오후에 이슬비  

   

  오랜만의 숙면이다. 

  진토닉에 취해 푹 자고 일어나 시계를 보니 10시가 가까워진 시각이었다. CCTV 화면을 점검하고 딸이 전화를 걸어와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했기에 보일러도 고쳐줄 겸 아파트로 향했다.      


  신천역 사거리에서 신호대기를 하며 벤츠 SLK 로드스터 지붕을 열었다. 삼월의 하늘이 빨간색 자동차 실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렇게 아파트에 도착하자 아내가 “밥을 준비해? 어떻게 해?”라고 물었는데, 자신도 아침을 먹지 않은 상태였다.      


  “나가서 설렁탕이나 먹자.”라고 대답한 후, 가지고 간 처형의 인감도장과 가족들 사진을 장식장 위에 올려놓고 보일러의 배수압력을 높였다. 여자는 굽이 높은 군화 스타일의 구두와 스키니진을 입었고 파마도 새로 했다. 하지만 화장한 얼굴은 잔주름이 가득했다. 아내를 바라보는 그는 요즘 색깔이 진한 안경을 쓰는 것에 대해 ‘매우 유용하다’라고 생각한다.   

  

  방배동 [설렁탕] 식당에서 그는 게걸스럽게 김치를 올려 먹으며 “설렁탕은 이 맛이야.”라고 말했다. 신천의 식당들은 여기 맛만큼 못했기 때문이다. 상권이 좋은 곳의 음식점들은 깊은 맛이 없다. 기본으로 장사가 잘 되기에 그런 것이었다. 식사 후, 딸아이에게 먹일 요량으로 한 그릇을 포장한 후 시계점에 들렀다.      

  그가 처음으로 구매한 시계였다. 인터넷으로 구매하고 보니 다이얼이 너무 작았고 날짜 글씨도 작아 사용하지 않자 딸이 차고 다녔었다. 건전지가 다 되어 멈춘 것을 오늘 가지고 나왔다. 건전지 교체비용은 7천 원이었다.      


  시계점 주인장이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는 ‘사라진 50억 자산가’ 이야기가 나왔다. 자녀들이 ‘아버지의 유산만 탐했다’라는 가정부의 이야기. 사라진 자산가. 50억. 다들 돈에 미쳤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아파트로 들어섰다. 아내가 “커피 한잔하고 가야지?”라고 물었다. 그가 “커피만 마신다?”라고 말하며 거실 소파에 엉덩이를 걸치자 “그럼 고맙지.”라고 변죽을 울렸다. 그리고 곧, 응접실 테이블에 커피가 올라왔다.      


  시골에서 어머니가 전화했으나 건성으로 대답했다. 여자는, 그래. 지금부터는 아내, 아내, 그런 거 말고 ‘여자’로 통일해 부르기로 하자. 여자는 “경필이 삼촌에게 커피숍 자리 나 알아봐 달라고 해야겠다.”라고 혼잣말하듯 말했다.      


  이에 그가 “뭐 한다고 홀라당 까먹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게 돈 버는 거야.”라고 말했다. 여자가 “원금을 까먹게 되잖아.”라고 반박했다.     


  “일하면 되지. 몸으로 버는 게 제일이야. 식당에라도 나가!”

  “내가 식당 할 것도 아닌데 식당 엘 왜 다녀?”     


  이에 그는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았다. 아파트 기둥 벽을 타고 인테리어 공사 소음이 들려올 때도 이때였다. 여자가 “(위층) ㅇ이네 옆 집은 한 달이 넘도록 집수리를 하네.”라고 푸념했다. 그가 “오래되었으니 새집처럼 뜯나 보지. 한 달이 넘는다면 벽을 까고 콘크리트를 양생 할 정도의 인테리어니 대대적인 수선인가 보다.”라고 넘겨짚었다. 여자도 “하긴, 8년이 되었으니까~”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두 사람은 나란히 눈을 멀리 던지며 집안을 둘러보았다. 백색의 벽지는 노란색으로 변색되었고 싱크대 문짝도 주저앉아 닫히지 않는다.      


  “이 짐들을 팔아야 하나.”     


  여자의 말에 그가 “누가 사가냐? 안양 건축하면 그곳에 가져다 놓을 거다. 전세가 빨리 나간다면 이삿짐센터에 좀 맡겨두면 되고.”라고 말했다. 이에 여자가 “대출이 있는데 전세가 나갈까?”라고 되물었다. 그가 “대출금을 갚는다는데 안 나갈 이유가 뭐가 있겠어. 시세가 5억 5천 정도 하던데 그러면 빚이 줄어드는 거지. “왜? 전세로 살 생각 있어?”라고 물었다. 여자가 “아니, 비싸서 못 살아.”라고 말했다.     


  그럴 것이다. 비싸서 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무나, 노력 없이 이런 아파트에 살 수는 없다. 그걸 모르고 여자는 당연한 것처럼 누렸던 것이었는데, 이제는 남편이 주는 7억과 챙긴 주머닛돈 3억을 들고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물론, 이 남자는 전혀 여자를 붙잡을 생각도 없고 7억 원의 돈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는 ‘그동안 나에게 행운이 많았었어. 이제는 내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거야’라는 마음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하고 있다. 생각의 고리를 끊은 것은 여자의 말이었다.     


  “2억에 주면 살고.”     


  그가 “4억?”이라고 말꼬리를 올렸다. 여자가 “안돼. 비싸.”라고 거절했다. 그래서 “3억 5천, 어때?”라고 권했어도 “비싸. 내가 돈을 쥐고 있어야 뭘 해도 할 거 아냐.”라고 말했다. 이에, 그가 일어서며 말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방 빼. 청소 잘해 놓고 부동산에 5억 5천에 전세를 내놔.”    

 

  여자는 무엇을 해 볼 생각이 있는지, 단순히 그를 떠볼 생각인지 알 수 없으나 대화는 더는 진전되지 않았다. 여자의 묘한 표정을 뒤로하고 현관문을 닫았다.      


  “사장님, 401호 입주합니다. 화장실이 막혔어요.”     


  빌딩 4층 원룸에 한 달간 75만 원에 살 사람들이 이사했다. ‘남매가 한 달 동안 거주한다’라고 했다. 가스와 전기 계량기를 검침하고 정산해 입금해 주었고 수도요금은 2만 원을 받기하고 터치키 두 개를 주고 비밀번호를 변경하도록 해 주었다. 그사이 화장실 변기도 뚫렸는지 물이 내려갔다.


  204호 입주자는 오늘도 “지금도 담배 냄새가 나요. 머리가 아파요. 다른 것은 다 참을 수 있는데 담배는 못 참아요.”라고 전화했다. 이 입주자 덕분에 담배 냄새를 추방했는데 지금도 ‘냄새가 난다’라고 하니 더는 어쩔 수 없다. 이 여성이 나가야 한다. 204호 앞, 뒤로 모두 공실이기 때문이다. 담배 냄새가 샴페인 효과를 일으켜 정신적 문제로 발전했다고 판단되었다.      


  [소액으로 하는 부동산경매]를 쓴 이ㅇㅇ 군이 블로그 방명록에 글을 썼다. 부동산경매 멘토를 인터뷰하는 책을 출간하려고 그를 ‘인터뷰하겠다’라는 요청으로 “ㅇㅇ님도 들어갑니다”라는 내용도 있었다.     

 

  이에 그가 ‘ㅇㅇ과 그를 같은 레벨로 본 것이 짜증’이 난 것인지, 아니면 인생이 복잡해서인지 모르겠으나 “경매 판에 이름을 올려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으니 다른 사람부터 인터뷰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하지 않는다 에 한 표입니다.”라고 답글을 달았다.      


  인천의 채무자(빌라 건축업자)는 공동투자 협의서를 다시 보내왔다. 팩스로 받았는데 초안과 다르게 준공 시까지 끌고 가서 채권최고액만 지급할 의사를 보였다.      


  초안의 요구조건은 ‘4월 30일까지 상환하면 7억 3천만 원, 상환하지 못하면 준공 시 10억 원을 지급’ 받기로 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보낸 협의서에는 “10월 30일까지 상환하면 7억 3천만 원 지급하고, 못하면 준공 시 10억 원을 지급한다. 단, 6월 30일 이전에 상환이 되면 6억 5천만 원으로 한다.”라고 욕심을 드러냈다. 그는 “(토지에 건축) 삽질도 하지 않은 것들이 욕심만 낸다”라고 판단하고 처음에 제시한 조건인 4월을 6월로 두 달만 연장해 주었다.      


  협의서 날인은 내일 오전 11시에 채무자의 사무실에서 하기로 했다. 이 사건은 여기서 종결짓기로 하고 내일 사용할 인감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동 사무소로 향하는데 빗방울이 떨어질 때도 이때였다.       

   

  동사무소에서 인감증명 3통을 발급받고 술을 한잔하려다 [봉평메밀 막국수]를 먹었다. 그러나 아파트 19채를 낙찰받고 들렀던 안성의 그 국숫집보다 ‘훨씬 못하다’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오는 길에서 베드로를 만났다.      


  “파전에 막걸리 하실래요?”     


  베드로의 말에 “아닙니다. 팩스 보내고 내일 일을 신경 써야 하니 내일 하시죠.”라고 거절하며 “내일은 북부지원 재판이 있습니다”라고 기억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에 베드로가 “그럼, 내일 온종일 저와 다니시죠. 그런데, 사장님. 정말 괜찮으십니까?”라고 되물었다.      


  “왜요? 이혼했다고 울고불고해야 하나요? 난 지금. 남자가 아닌 인간으로 새 출발을 하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오늘도 아내를 만났지만 이렇게 다짐하죠. ‘너, 이번에 이혼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은 또, 오랫동안 끌어왔던 지하실 임차인 문제도 끝날 것 같았다. 연예인을 닮은 그 아가씨가 “폐업도 해야 하니 내일 올라갈게요.”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힘겨운 하루가 지나간 듯하더니 204호 입주자가 “아저씨,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어요?”라고 전화하고 얼마 후 아지트로 올라왔다.    

 

  “아저씨, 하루종일 생각했는데 얼굴은 뵙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204호 입주자 아가씨의 말을 들으며 ‘집을 나가는데 매우 요란하게 나가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더 들어보기로 했다.      


  “이 일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그렇게 잘해주는 집주인 없다. 그러니 말씀 잘 드려라’라고 하세요. 그래서 이렇게 왔어요. 저 계속 살려고요.”     


  엥? 그가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당황하며 입주자가 요청한 방값에 대해 말했다.     


  “사실 3만 원의 방값 차이가 큰 것인지, ‘협상하려는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 3만 원이라는 돈이 ‘빠듯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많이 배웠지요. 그래서 말인데 지금 방값으로 그대로 계셔도 됩니다.”     


  그러자 204호 입주자 아가씨가 “어머, 그래요? 정말 감사합니다. 전 협상하려고 한 의도는 없어요. 회사가 연봉이 작년과 동결되고 복지도 줄었어요. 직원이 1백 명인데 3년간 개발만 했으니 이해는 하지만요. 자전거도 새벽 두 시에 퇴근하기에 중고로 산 거고요, 점심도 새마을 시장에서 두부를 사서 이틀을 먹어요. 토마토가 싸면 또 조금 사서 두 알 정도 먹고요. 이렇게 힘들게 살다 보니 내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것 같아요. 사실 어디까지 떨어지려고 하는지 그게 걱정되더라고요. 그래서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어요.”라고 말하며 “저, [푸른 목장]을 일주일에 이 틀은 와서 먹었어요. 여기 이사 올 때도 단골집 근처로 왔다고 생각했거든요. 정말 잘 쏘는 내가~”라고 말을 잊지 못했다.      


  그는 204호 입주자 아가씨로부터 현실 서른두 살 청년들이 사는 고백을 처절하게 들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 들어보니 작은 문제가 있어요. 그것은 먹는 것이 부실하다는 것입니다. 조르바가 말했어요. 먹고 마시는 것이 피와 살이 된다고 말입니다. 충분하게 영양 섭취해야 건강한 생각과 활동을 합니다. 또 담배 냄새도, 그 부분에 너무 히스테리 하게 집착하는 측면이 있어요. 그런 것들은 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좀 더 느슨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외로움의 문제일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도 입주자들의 외로움에 좀 더 다가갈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소식지 발간도 그중 하나의 노력이고요.”     


  이에 204호 입주자 아가씨가 “저 정말 놀랐어요. 소식지를 회사에 가져가서 봤다니까요. 2년을 산 집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거든요. 정말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이에 그도 기분이 좋아져서 “저는 ㅇㅇ하우스를 게스트 하우스처럼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 꿈이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 지하실을 인테리어 하고 치킨데이 등을 해 볼까 합니다.”라는 계획을 말했다.     


  외로움! 그가 요즘 처절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혼자 사는 입주자들을 생각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어쩌면 그를 게스트하우스의 위대한 운영자가 되게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때였다. 204호 입주자 아가씨가 “지하실에 그런 큰 공간이 있어요? 기타도 칠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기타를 치나요? 무대도 만들 생각인데?”

  “우와- 좋아요. 제가 기타도 치거든요.”     


  부모가 교사직을 하는 공무원의 딸로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처녀는 ‘기타를 좋아한다’라고 했다. 또 “4천만 원을 모았는데 4층(원룸)에 살고 싶었거든요. 보증금을 4천만 원 내면 월세는 얼마에 하실래요?”라고 묻기도 했는데, 지금은 소비자가 판매자이고 판매자가 소비자인 시대이듯이 입주자가 소비자가 되는 형국이었다.     


  “그러면 월 35만 원만 받지.”

  “좀 깎아 주시면 안 돼요?”

  “그래? 그럼 2만 원 깎아 줄 테니 5만 원 관리비를 내던지...”     


  그렇게 되어 한 달 살기로 하고 들어온 입주자들이 이사하면 가장 먼저 방을 보여주기로 약속했다. 어쩌면 ㅇㅇ하우스가 게스트하우스로 발전하는 작은 씨앗이 태어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하 공간에서 입주자들의 모임을 개최하고 홀로 사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치료해 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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