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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Mar 09. 2024

가슴의 아픈 상처가 아무는 시간

[연재] 42. 이혼 18일 차 

42. 이혼 18일 차, 가슴의 아픈 상처가 아무는 시간 


         

2014년 3월 18일 화요일 맑음 


  그가 궁극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물건은 빨간 스포츠카 한 대와 엽총 한 자루, 그의 행적을 찍을 카메라와 트렁크에 가득한 5만 원권 지폐뿐이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혹 필요하다면 한국에 있을 때 쉴만한 차고 있는 별장 정도가 될 터인데 아마, 도봉산이 될 것이었다.  

    

  도봉산 입구의 토지는 안전가옥 형태로, 1층은 차고를 겸한 커뮤니티 홀로 건축될 것이었다. 물론, 토지는 부동산경매 낙찰로 확보되어 있고, 스포츠카와 카메라도 있으니 이곳저곳 남아있는 부동산만 처분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 후에는 바람처럼 구름처럼 이 세상을 떠돌다 어느 날 한 점의 불꽃이 되어 다 타고 재만 남기고 싶었다.      


  그 궁극의 꿈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그의 애마는 포효했다. 첫 번째 출장지는 인천시 계양구 효성동이었다. ‘빌라를 건축하겠다’라며 토지매입 자금을 빌려 간 건축업자는 6개월 이상 시간을 보냈기에 “준공 시 10억 원을 지급하라”라는 약정서를 요구했고, 시공사를 만나 그 사실을 알리기로 했다.   

   

  그들은 동네에 있는 건물의 3층에 시행사 사무실을 차렸는데 회장실, 사장실 등 그럴듯하게 꾸며놓았다. 땅은 한 삽도 못 팠으면서!     


  그들과 함께 시공할 건설사를 방문했다. 건설사 또한 그만 그만한 사무실이었고 얼마나 담배를 피워대는지 천정에 아예 환풍시설이 되어있었다. 그가 보기에 ‘적당한 땅 주인 만나 대충 건물을 짓는 회사’로 보였다.      


  잠시 후, 시공사 대표로부터 “우리가 대물로 빌라 (35세대 중) 17개를 가져가는 조건으로 공사를 한다고 해도 김 사장 대출금을 다 변제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즉 수익성이 안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이 건물을 지을 사람은 김 사장입니다. 왜냐하면, 대출금을 자본으로 인정하면 자기 자본 비율이 25%를 넘어가기 때문이지요. 자기 자본 비율이 25%를 넘어가면 한국투자저축은행에서 PF대출을 해 줍니다. 시공사는 현금공사를 하는 셈이므로 공사비는 대략 평당 300만 원까지 낮출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대충 4, 5억은 남겠지요. 물론 전량 분양이 된다는 전제하에서 입니다. 분양가격은 시행사가 생각하는 1억 6천이 아닌 1억 4천만 원정도로 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즉, 그는 빌라 업자로부터 설명을 들을 때는 ‘시공사가 건물을 건축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시공사 대표는 완전히 뒤로 발을 뺀 것이었다. 그러니 그가 “한마디로 정리하면, 우리는(건설사) 대물로 받고 공사를 할 수 없다. 그런 뜻이죠?”라고 되물으며 확인했다. 왜냐하면, 빌라 건축업자들이 시공사 대표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으로 빌라 건축의 공은 그에게 넘어왔다. 그러니 채무자인 빌라 업자 들는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삼계탕이나 드시고 가시죠?”     


  시행사 회장이라는, 비만한 사내가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라며 밥을 사겠다고 나섰다. 함께 간 베드로는 저 멀리서 애꿎은 담배만 빨아대더니 따라붙었다. 그렇게 일행은 삼계탕을 맛스럽게 먹었으나 명의를 빌려준 염 ㅇㅇ만은 제대로 식사하지 못했다. 토지 명의자인 염ㅇㅇ은 땅을 팔아서 빚을 청산해도 개인적으로 채무가 남을 것이 분명했고, 그렇다고 주도적으로 건물을 지을 수도 없는, 자신이 어떤 구렁텅이에 빠진 것인지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마친 그와 베드로는 다시 벤츠 SLK 로드스터를 타고 서울북부지방법원으로 향했다. 재판은 4시였으므로 2시간이나 시간이 남았기에 다방에 앉아 시간을 죽이기로 했다. 

     

  “날씨가 좋다고 문 닫고 놀러 가긴 그러니 환풍기나 좀 돌려주시죠?”    

 

  담배 연기로 실내 공기가 탁하기에, 차 주문을 받으러 온 늙은 마담에게 말했다. 건너편의 베드로가 “하이고 사장님, 그 멘트 좋은데요. 나도 써먹어야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혼잣말로 연습했다. 메뉴는 베르도는 음료수를, 그는 맥주였다.     


  “오늘 재판 증인 잊지 않았지?”


   그가 증인으로 참석해야 할 법률사무소 이 사무장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네. 경기도 광주에서 일을 보고 바로 법원으로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늦었다. 법정 직원이 어쭙잖게 위엄 섞인 말투로 “재판이 4시인데 증인이 늦으면 어떡합니까? 많이는 못 기다립니다.”라고 말했다. 누가 들으면 자기가 판사인 줄 알겠다. 그 시간에 증인은 별내를 지나고 있었다.     

 

  앞서 진행되는 재판은 “친엄마로 알고 살았는데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이~”라며 엄마와 다투는 사건이었다. 노모를 정신 병원에 입원시켰고, 삼촌들은 각서를 받았고, 식당 주방장은 증인을 서고... 그렇고 그런 사건이라 판사도 정신이 혼미한 듯했다. 그러니 당연히 재판이 길어졌는데 덕분이 이 사무장이 무사히 증인석에 설 수 있었다.      


  파렴치한 원고는 예전의 등산복을 버리고 회색 재킷을 입었다. 피고인 그가 증인석의 증인에게 질문했다.     


  “증인의 직업은 무엇인가요?”

  “네. 법무법인 ㅇㅇ의 사무장입니다.”

  “증인은 원고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어떻게 만나게 되었습니까?”

  “근저당설정 서류 자필서명을 받으러 가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가 일어서서 원고에게 서류를 보여주며 “을제 12 호증의 근저당설정 서명은 원고의 서명이 맞습니까?”라고 물었다. 원고가 “네. 맞습니다.”라고 인정했다. 그러자 판사를 올려다보며 “판사님. 이상입니다.”라고 말하며 증인 심문을 마쳤다.      


  이에 판사가 원고를 보며 “원고는 증인에게 물어볼 말이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원고가 “나아 난, 모 오르으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는데, 음성이 심하게 떨렸다. 다시 판사가 말했다.   

  

  “원고가 많이 불리해요. 피고와 조정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원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피고인 그에게 물었다.  

    

  “채무가 얼마나 남았습니까?”

  “원금 전액 및 이자가 연체 39%로 연체 중이며 경매가 중지되어 있습니다.”

  “네? 그럼 1억 원이 넘어가겠네요. 알겠습니다. 4월 12일 선고하겠습니다.”     


  판결은 ‘원고 패’로 나올 것이고, 원고는 집을 경매 처분당할 것이다. 그것이 원고가 어제 살아온 것에 대한 오늘의 ‘답’이었다.      


  아지트로 돌아온 그 일행, 베드로가 있으니 일행이다. 일행은 [늘 푸른 목장] 식당으로 이동했다. 갈빗살을 안주 삼아 소주 두 병을 비울 즈음 070으로 시작되는 번호의 전화가 왔다.     


  “아빠. 어디세요?”

  “어이, 우리 아들. 잘 있었어?”     


  그가 살갑게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아들은 “(부대) 줄다리기에 이겨서 또 포상휴가 나와.”라고 휴가 사실을 알렸다. 이에, 그가 “2박 3일? 그래. 이번에는 빌딩에 와서 일 좀 해라. 그래도 휴가 나와 아버지 일을 도와줬다는 뿌듯함도 가지고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지하에 친구들은 불러서 놀면 되는 거고. 안 그래?”라며 말꼬리를 올렸다. 아들이 “하루는 그렇게 할게요.”라고 수긍했다.     


  아들과 통화를 마치고 아지트로 와서도 술잔은 계속 기울어졌다. 그리고는 마주 앉은 베드로에게 “인천(빌라 건축)은 우리가 짖죠?”라고 말하자, “그럽시다. ㅇㅇ하우스로 지읍시다. 출입구엔 자동 조명등이 쭈욱 들어오게 합시다. 멋지게.”라고 맞장구쳤다. 그렇게 마무리되는가 싶었지만,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흐린 기억 속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통화가 연결되었다. “하이고, 바쁘신 분이 어쩐 일이십니까?”라는 가녀린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가 “나, 가슴이 많이 아프다. 오늘 한 번 봐야겠다!”라고 말했다. 여인이 대답했다.     


  “난 더 아파. 항암치료도 받고 있고!”     


  치정으로 부동산 매매를 해야 했던 ㅇㅇ의 빌라 소유자다. 몇 년이 흘렀는데도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았기에 통화가 되었다.      


  “ㅇㅇ 이마트로 갑시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목적지를 말했다. 그렇게 도착한 주상복합 건물 꼭대기의 [하늘 포차]에서 만났다. 짧은 머리에 털조끼를 입었는데, 옆에는 ‘대학을 졸업했다’라는 딸아이가 자리했다. 그가 오만 원권 한 장을 용돈으로 건넸을 때였다.      


  “어? 사장님 맞네!”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사케 무사] 프랜차이즈 정ㅇㅇ부장과 김ㅇㅇ부장이 다가왔다. 정말 귀하게, 말도 안 되게 만났고, 모녀를 가리키며 능청스럽게 “여기는 내 친구. 서로 인사해.”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늘 돈이 궁했다. 그래서 “돈 버는 것”을 노래했는데 유방암까지 투병 중이었다. 슬픈 만남을 뒤로하고 아지트로 오는 택시에서 생각했다.     

 

  “가슴의 아픈 상처가 아물려면 시간이 필요한가 보구나. 이런 웃기는 시간을 보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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