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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Mar 11. 2024

여자의 비어있는 공간

[연재] 43. 이혼 19일 차

43. 이혼 19일 차, 여자의 비어있는 공간    


      

2014년 3월 19일 수요일 흐림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그가 샤워하고 빨간 바지와 마린 셔츠를 입고 어제의 일을 반성하고 있을 때 베드로가 전화해 물었다. 이에, “네.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괜찮으면 사장님은 술을 드셔도 됩니다. 사장님은 술을 드셔야 스트레스를 푸시나 봅니다.”라고 말했다.    

 

  부실채권이 되어가는 인천 빌라 건축 대상 토지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장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 부장! 너 저번 분양한 빌라 얼마에 지었데?”

  “형님. 평당 300만 원이면 됩니다.”     


  장 부장이 분양했던 빌라가 상당히 잘 지어졌기에 전화를 했었다. 대화 끝에 장 부장이 말했다.     

 

  “형님, (토지를) 차라리 파시죠?”     


  그 말에 근저당설정 서류를 찾아 토지목록을 만들어 메일로 보냈고 가격은 18억 원을 제시했다. 그러자 장 부장이 “형님. 수수료는 5천 (만원) 정도 주는 거죠?”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뭐, 이럴 때는 ‘다 주지 않아도 준다고 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대답했다. 

    

  “당연하지.”     


  채무자 박 사장도 굳이 ‘만나겠다’라고 전화를 했다. 그는 고시텔 공동주방에 김치를 넣어두면서 남은 밥 한 덩어리를 먹은 후였다. 그래서 “빈손으로 올 수 없으니 콜라나 사 오세요.”라고 말했더니 잠시 후 베드로와 함께 왔는데, 이미 커피숍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라고 말했다.   

  

  “은행 작업을 했습니다. (토지 담보대출) 18억은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앞순위 은행 11억 갚고 사장님 돈은 4억 갚고 매도자 아주머니 2억 주고 나머지는 소유권 이전비로 사용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박 사장의 말에 노트북으로 쓰던 일기를 저장하고 덮으며 말했다.  

   

  “뭔 말이야? 정리가 안 된다. 자, 내가 4억을 받고 근저당을 풀어줘야 하잖아? 그러면 18억 대출받은 은행이 21억 설정하는데 그 뒤로 줄을 서야 하잖아?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런 후 방으로 들어가더니 몽블랑 만년필을 가지고 나와 노트에 도표를 그리며 “자, 보자고. 3일 후에 돈이 나온다. 그러면 21일. 18억이 나와. 거기서 은행 11억 갚어. 7억 남네? 내 원금도 부족하잖아. 지금까지 갚아야 할 금액은 여기 채권 계산표를 보라고? 그러니 원금은 갚고 나머지 이자를 후 순위로 설정을 하는 것은 몰라도 이건 아니지. 땅을 판 아주머니는 제일 뒤로 가야 하는 거야. 알아?”라고 말했다. 그러니 박 사장은 삐져서 일어나 나갔다.      


  베드로가 고시텔 공동주방에서 물을 가져와 라면을 끓이며 “저 새끼, 말은 마음을 비웠다면서 마음을 비우지 않았다니까요. 하여간 어린놈이 말장난을!”이라며 사라진 박 사장의 뒤통수에 돌직구를 날렸다.   

   

  “그리고 사장님. 여분의 돈이 좀 있으십니까? 있으면 신협에 조합원 출자를 하고 인사를 좀 해 놓으시죠? 그래도 동네에 왔으니까 그런 작업해 놓으면 나쁠 것 없잖아요.”     


  베드로의 조언에 “그리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두 사람이 라면을 다 먹을 즈음 [무빙디자인] 최 실장과 한 소장이 도착했다. 오늘 방문하게 한 이유는 지하실 인테리어 콘셉트가 조금 더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는 무대 중간에 커튼을 달 것과 거울 조명 및 싸이키, 그리고 스위치 위치를 설명했다. 이에 최 실장이 “그러면 계약서는 월요일 날 쓰시죠? 금액은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다.     


  “계약 시 2천 주고 완성 시 5백 하지 뭐.”

  “네.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이렇게 계속 사장님과는 뵙게 되네요?”

  “좋은 거 아닙니까? 그렇게 하다 보면 또 다른 일도 생기고 그러는 거지요.”    

 

  그렇게 정리하고 잠시 잠을 청하려고 침대에 누웠다가 한 소장의 전화에 일어났다. “내일 계세요? 방문하겠습니다.”라고 묻기에, 지하실 열쇠도 줘야 하고 인테리어에 공사에 대해 세세하게 이야기해야 하므로 기다려주기로 했다.      


  저녁에는 방송대 스터디에 참석했다. [대중영화의 이해] 발제를 맡은 ㅇㅇ이 “일이 너무 힘들어서 스터디를 못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모부의 한의원에서 일하다 보니 노동강도가 매우 센 것이 문제였다.      

  이에 “일에 너무 매몰되면 자신의 스펙을 쌓을 시간이 없어. 그러니 잘 생각해 봐.”라고 조언하고 함께 동영상 강의를 청취한 후, 교과서의 내용을 간단하게 발표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반면, [생명과 환경] 발제를 맡은 류 군은 스물여섯의 나이답게 철저하게 준비를 해 발표를 했다. 발표내용 중 필요한 보충설명, 예를 들어 척박함과 황폐화의 뜻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스터디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장모님 병문안을 하려고 여자에게 전화했다. 첫 번째 전화는 받지 않더니 두 번째 전화는 연결되었다.      


  “나, 이마트 에브리데이 앞인데 다시 병원으로 갈게.”     


  여자가 명랑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으나, 그는 사무적으로 통화를 하고 사당역에 내린 후 711호 병실을 찾았다. 6인용 병실엔 75세라고 적힌 명찰 아래 왼쪽 팔을 지지대에 걸고 있는 장모가 있고 보조 침대에는 간병인이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아파서 죽을 뻔했네.”     


  근육을 이어주는 수술이라는데 ‘굉장한 통증을 수반한다’라고 했다. 그러함에도 입원은 2박 3일에 불과하고 ‘40일 정도 회복기를 거친다’라는 여자의 설명이다.      


  “피곤할 텐데 어서, 들어가 쉬게.”     


  장모의 말에 인사하고 병원을 나섰다. 여자가 “저녁은 식구들하고 [해물탕] 식당에서 먹었어. 그때 전화했었나 봐.”라고 말했지만,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순댓국 있는데?”     


  여자의 말에 순댓국에 소주나 한잔하려고 했으나 술이 없었다. J&B 양주를 두어 잔 마셨다. 그사이 딸도 귀가해서 순댓국에 밥을 말아먹었다.      


  거실 응접 테이블에는 우편물이 가득했다. 인터넷 통신, 세콤 요금 등 고지서는 챙겼다. 왜냐하면, 이런 요금들도 곧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금고에 넣어 두었던 수표와 현금도 꺼냈다. 신협 출자금 및 지하실 공사비로 지급될 예정이다.     


  [매일경제신문]의 ‘오늘의 운세’는 “비어있던 곳간에 행복을 채워주자”였는데 ‘지하실에 행복을 채워주자’라고 해석했다가, 여자의 비어있는 공간에 행복을 채워주는 밤이 될 것이라는 점괘라고 생각했다. 식사를 마친 딸이 초콜릿 하나를 내밀고 독서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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