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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Mar 12. 2024

'Y대 동문 B 선생'이라는 그녀

[연재] 44. 이혼 20일 차

44. 이혼 20일 차, ‘Y대 동문 B 선생’이라는 그녀          



2014년 3월 20일 목요일 흐리고 오후에 비      


  매일경제신문의 점괘처럼 그는 비어있는 곳간에 행운을 채우듯 달콤하고 부드러운 섹스를 했는데 여자도 익숙한 남자의 손길과 몸을 거부하지 않았다. 황홀한 시간이 지나고 막 팔베개를 할 즈음 도서실에 간 딸이 돌아왔다. 두 사람은 급히 잠을 자는 척했다. 딸이 조용히 안방 문을 닫아 주었다.      


  그는 사정한 후에는 세상이 물에 떠내려가도 모를 정도로 잠에 빠졌으나 지독한 불면증으로 인해 이번에는 그러질 못했다. 이는,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함에도 아침이 되자 또 한 번의 폭풍우가 지나갔다.      

  “아들이 언제 올지 모르니 옷을 입어야 해.”     


  군대 생활을 하는 아들이 “3박 4일의 휴가를 받았어요.”라고 했기에 여자는 옷을 입었으나 그는 알몸으로 다시 잠들었고, 아들 또한 오지 않았다.     


  “서치라이트 교육이 있어요. 항공기 식별을 하는 교육인데, 그걸 받아야 해서 9월에나 휴가를 갈 수 있어요.”     


  오후부터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보슬비가 내렸고 며칠째 보이지 않던 입주자가 “제가 감기 증세가 있으니 온도를 올려주세요”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고시텔의 보일러는 개별 온도설정이 아닌 전체 층을 하나의 배관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온도를 올리면 모든 방이 더워진다. 그러함도 온도를 올리고, 피곤에 지친 영혼과 육체를 보상하기 위해 가까운 [새마을 시장]으로 가서 족발과 코리아 라이스 와인 두 병을 사 돌아왔다. 코리아 라이스 와인은 별거 아니다. 서민들은 라이스 와인을 ‘막걸리’라고 부르더라.     


  와인, 그래! ‘보일러 온도를 올려달라’는 입주자는 와인을 즐겼다. 공동주방에서 혼자 식사를 할 때에도, 마치 피렌체 마을 어느 농갓집 뜨락에서 기울어진 식탁에 하얀 식탁보를 덮고 우아하게 식사를 하던 그런 아우라를 풍겼다. 청소하려고 주방에 들은 그가 그 광경을 보고 “그녀는 분명히 외국 유학 물을 먹었을 것”이라고 단정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입주자는 자신을 “Y대 동문 B 선생입니다”라고 말했다. 누가 묻지 않아도 늘 그렇게 수식어를 붙이듯이 말했는데, 이를테면 ‘조국의 영원한 태양이시며, 민족 불멸의 횃불이시고,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불굴의 독립투쟁을 이끄신 민족의 태양’ 어쩌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거나 ‘Y대 동문 B 선생’이라는 그녀가 전화를 걸어와 ‘그곳에 입주하려고 합니다. 월 방값이 얼마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음, 조선족인가?’라고 생각했다. 음성을 통해 추리되는 나이는 50은 넘었을 것이었고,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며, 자신감도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월세를 말하자 “방값이 너무 비싸요.”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그녀가 전화했는데 빈방이 몇 개 남지 않았을 때였다.      


  “조용한 406호를 계약하고 싶어요.”

  “그렇다면 계약금 20만 원을 보내세요. 계좌번호는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계약금을 입금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입주날짜가 되어도 입주하지 않았고 보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녀가 전화를 걸어와 “제가 돈이 나올 곳이 있는데 아직 나오지 않았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라고 말했다. 물론, 관대한 그는 또 보름을 기다려줬다. 빈방이 하나도 남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다시 그녀가 전화를 걸어와 “돈이 안 되어 못 들어갑니다. 돈을 돌려주세요.”라고 말했다. 이에 그가 말했다.      

  “여보세요. 입주하겠다고 하고서 한 달도 더 지났습니다. 그동안 입주를 받지 못한 손해가 50만 원입니다. 그런데 20만 원을 돌려달라고요?”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야! 총무! 너 나 B 선생이야! 다른 사람에게 방을 주게 되었으면 나에게 연락하고 주면 되는데 연락도 안 했으면서, 그 돈을 못 준다고? 그런 이야기는 없었잖아?”     


  이거 뭐, ‘세탁기에 아이 넣고 돌리면 좆됩니다’라는 친절한 위험 문구를 쓰라는 소리로 들린다.    

  

  “야아~ 김 총무! 이런 쌍년을 봤나. 그래, 고시원 총무라 우습냐? 씨발 계약을 했으면 계약을 지키면 되는 거고, 아니면 계약금은 몰수되는 것 상식으로 아는 것 아니냐? 그리고 내가 총무라고 우습게 보이나 본데. 나, 이 건물 건물주다. 이게 어디서 반말 찍찍 지껄여. 너 쌍년 이리 와. 확 쑤셔 불라니까.”   

  

  우리의 고시원 김 총무. 경매계의 전설! 낙찰받은 집에서 버티며 나가지 않으면 가차 없이 끌어내던 ‘저승사자’가 본색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녀도 만만치 않았다. 이에 김 총무가 “계좌번호 불러. 당신도 귀책사유가 있으니 내가 10만 원은 보낸다.”라고 정리하려 하자 그녀가 “뭐, 그렇게는 안 되지.”라고 말했다.   

  

  “야! 그럼 소송해. 이런~”     


  그렇게 두 찌질이는 귀한 전파를 낭비하며 한국어가 구사할 수 있는 살벌 쌀쌀한 단어들을 주고받았고 결국 우아한(?) 그녀가 손을 들었다.      


  “그래, 입주한다!”     


  그러자 김 총무가 다짐을 받듯이 “그날 입주 안 하면 보증금 몰수입니다. 아시겠어요?”라고 되물었다. 그녀가 “입주하면 될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이에, “아니, 그러니까 입주 안 하면 보증금 몰수라고요. 대답하시라고요.”라고 확답을 요구하자 “입주하면 될 거 아니야.”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당연히 열받은 김 총무가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다. 그러함에도 잉여력이 짱짱인 김 총무는 계속, 끊임없이, 전화해 댔다. 그녀는 김 총무의 심성을 잘 못 건드린 거였다.     


  “그래, 알았어. 입주 안 하면 몰수해!”


   그녀는 약속대로 고시텔에 입주했고 김 총무는 ‘최고의 시설에서 행복을 느껴보라’라는 마음으로 그간의 앙금은 잊었다. 아니, 김 총무란 인간은 ‘오늘을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살기에 어제의 일을 기억하지 않는다.     

 

  ‘보증금 20만 원이 아까워서 입주하긴 했으나 곧 나갈 것이다.’     


  김 총무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녀가 “저기, 독일에서 돈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있어서 아들에게 선물은 해 줘야 하니 이번 달에 40만 원을 받고, 얼마 있다가 10만 원 받으세요.”라고 제안했다. 이에 김 총무는 “아들을 설득하는 게 쉬울까요? 나를 설득하는 게 쉬울까요? 나 같으면 ‘아들아, 다음 달에 크리스마스 선물해 줄게’라고 할 겁니다. 아시겠어요?”라고 대답했다.    

 

  결국, 그녀는 첫 달은 50만 원을 입금했다. 그러나 그다음 달엔 40만 원을 입금했고 “독일에서 입금하기로 했는데~”라는 레퍼토리를 읊었다. 그리고 그다음 달에도 그랬다. 임대보증금 20만 원과 체납 임대료 20만 원이 같아졌다.      


  게다가 어느 날부터 그녀는 보이지 않았고 방문 앞엔 그가 붙이는 우편물이 늘어났는데 ‘송파 복지관’, ‘송파경찰서’ 등등의 우편물이었다.      


  ‘이거 혹시......’     


  김 총무는 더럭 겁이 났다. 그렇지 않아도 홀로 사는 이들의 외로움을 알고 있는지라 관심 있게 지켜보는데 그녀도 나쁜 선택을 한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베란다를 통해 창문을 열었다. 다행히 창문은 잠기지 않았다.      


 그가 창문을 서서히 열었다. 책상 위에는 와인 병과 맥주 캔, 벽에는 글을 쓴 종이, 한쪽엔 책과 짐들이 엉켜 있을 뿐 우려하던 상황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입주 계약서에 명시한 대로 ‘강제집행’을 하기로 했다.      

  그들이 작성한 입주계약서 2조 4항은 “기간 갱신의 의사표시 없이 만료일을 무단경과 한 경우 입실계약은 해지되며, 입실자의 물건은 3일간의 보관 기간을 거쳐 임의로 정리 처분할 수 있다(비용 발생 시 손해배상 청구인정). 이에 대해 당사자는 민, 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그러함에도 혹여 발생할 문제를 염려해 창문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끊김 없이 동영상을 촬영하고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주로 서류, 책, 다 마신 와인 병, 메모지 등등이었다. 이 또한 카메라로 꼼꼼히 촬영하고 청소하느라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물론, 김 총무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김 총무는 [부동산경매비법]을 쓴 저자로 100여 채가 넘는 아파트, 빌라, 상가, 토지를 낙찰받고 팔았던 자다. 지금의 빌딩 또한 경매로 낙찰받고 2, 3층을 고시텔로 리모델링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니 부당하게 점유하고 사는 사람을 끌어내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는데 이번 사건은 그렇지 않았다. 가진 것 없는 단출한 살림살이의 그녀에게 어떤 사연이 생겨서 작은 보금자리에 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김 총무를 슬프게 했다. [ㅇㅇ하우스]는 슬픈 사람들이 아닌, 내일을 꿈꾸는 행복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간이 되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다.     

 

  비가 내렸다. 그것이 김 총무의 마음을 더 을씨년스럽게 했고 고된 일과의 자축과 현실의 고단함까지 버무린 술잔을 기울이기에 충분했는데,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눈이 자꾸 침침해서 목포 병원에 갔더니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봉사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광주 병원으로 가는 길이다.”      


  어머니의 전화에 아주 정신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한글을 읽지 못하는 어머니가 병원 행정에 대해 ‘답답해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ㅇㅇ아 나다. 어디냐?”

  “나? 시장에 나왔지.”

  “네가 ㅇㅇ의 딸로 좋은 일 좀 해라. 우리 엄마가 광주로 오고 계신다. 상무지구 안과에 간다고 하니 의사를 만나봐라. 내일 내려가마!”     


  광주에 사는 동창생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하고 다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광주에 도착하면 택시기사에게 병원 이름 보여줘. 병원에 도착하면 내 친구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라고 말하고 동창생에게 “엄마 010-2779-**** 병원 서구 치평동 ㅇㅇ 안과”라고 문자를 보냈다.      


  이에 동창생은 마치 딸처럼 어머니를 잘 모셨고 의사와도 직접 전화 연결해 주었다. 의사가 “어머님은 시신경 두 개가 떨어졌습니다. 수술해야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그가 “레이저로 합니까?”라고 되물었다.      


  “아닙니다. 일반 수술로 해야 합니다.”     


  수술일정은 내일로 잡혔다. 그가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하고 긴급한 사업 일정을 모두 미뤘다. 이에 어머니는 “어, 아들. 그냥 니, 아빠랑 갈 테니까 바쁘면 오지 마라.”라고 말했다. 그러함에도 “그래도 가봐야죠.”라고 말하자 “오면 든든하긴 한데~”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아버지가 가신다니 옷 챙겨서 손잡고 가세요.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되어 광주 일정은 취소되고 미뤄졌던 일정은 계획대로 진행하게 되었는데, 신협 출자금 출자가 그것이었다.      


  베드로의 의견을 수용해서 동네에서 우뚝 서 보기로 했기에 1천만 원짜리 수표 3장을 들고 가서 계좌를 개설하며 여직원에게 “직원 중에 김ㅇㅇ씨 계신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여직원이 “네. 우리 과장님이신데, 아세요?”라고 되물었다. 이에, “조금 압니다.”라고 대답하자 “근데요, 손님. 출자하려면 주소가 이곳으로 되어있어야 하는데 맞으세요?”라고 되물었다.    

 

  “주소? 아닌데. 그럼 못 만들어?”

  “네! 연고가 있어야 해요. 직장이라든지~”

  “직장은 이곳이 맞지. 자, 여기~


  그가 ‘ㅇㅇ하우스’라고 적힌 녹색의 명함을 내밀었다. 그리고 1만 원으로 출자금을 입금하고 3천만 원을 예금했다. 베드로가 “잘하셨습니다. 동네에서 부자 소리를 듣고 그 내용이 멀리 퍼져나가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김 과장이 걸어올 때도 이때였다. 김 과장이 “선생님,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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