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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Mar 15. 2024

방 여인과 캔싱턴 리조트 M.T

[연재] 46. 이혼 22일 차

46. 이혼 22일 차, 방 여인과 캔싱턴 리조트 M.T          



2014년 3월 22일 토요일 맑음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라고 한다. 

  누군가를 만나고,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새롭게 살아간다. 오늘은 방송대 미디어 영상학과 학생회 학우들과 M.T를 가는 날이다. 학과에서는 전체 M.T를 추진했으나 자금 등의 문제로 불발되었고. 일부 학우들만 친목을 도모하자며 진행하게 되었다. 어제 가져온 랭글러 루비콘을 꼼꼼하게 세차한 이유이기도 했다.     


  “아저씨 내 짐 어디에 있어요. 제가 너무 늦었죠?”     


  306호 입주자 ‘Y대 동문 B 선생’으로 이제부터 방 여인으로 부르겠다. 보름쯤 연락이 없다가 나타났다. 그는 ‘아마 벌금 때문에 단기 징역을 산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 어디 갔다 왔어요? 짐은 베란다에 보관해 두었어요.”라고 말하며 베란다 문을 열어 보였다. 벽 한쪽엔 비닐봉지에 담아놓은 방 여인의 짐들이 쌓여 있었다.      


  “방을 한 달만 더 써야 하는데......”

  “안됩니다.”     


  그는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리고 열쇠도 회수하며 “짐은 방을 구하면 가져가도 됩니다. 그러나 입주를 허락할 수 없습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에, 방 여인은 공동주방의 식기와 포크 등을 챙기는 듯했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랭글러 루비콘의 시동키를 돌렸고 김밥 두 줄을 산 다음 고대 앞으로 향했다.      


  방송대 부회장 공ㅇㅇ씨의 집은 제기동이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들어갔더니 허ㅇㅇ 학우와 같이 있었다. 두 사람을 태우고 충주를 향해 달렸다. 다른 한 팀은 정ㅇㅇ 상근부장 등 4명의 학우로, 양재동에서 출발 경부고속도로에 올랐다.    

  

  휴게소에 들러서 카페인도 공급하며 충주시 양성면 캔싱턴 리조트에 도착했다. 앙성면은 전형적인 농촌인데 탄산수 온천으로 한때 호황을 누린 듯 영업을 중지한 목욕탕이 횡덩그렁하니 서 있었고 길가의 식당들도 영업하지 않은 지 오래된 듯했다.    

  

  “배고프면 짜증 나요. 식당으로 가야죠?”     


  공ㅇㅇ 학우의 말에 식당을 찾아 두 어 바퀴를 돌았으나 들어갈 만한 식당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허수아비’라는 카페를 발견하고 ‘돈가스나 먹자’라는 생각에 들어갔다. 내부는 허수아비는 없는 라이브 레스토랑 분위기였는데 무대의 음향장비와 악기들이 상당했다. 주인이 음악을 하는 것 같았는데 역시 “딴따라 출신입니다. 다음 달에 이대로 캄보디아로 갑니다.”라며 자리 잡고 호황기 시절과 캄보디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때, 주인장은 밭일하고 온 듯 장화를 신고 있었는데 ‘부동산(중개업소)도 하고 있다’라고 했다. 이에 그도 “저도 부동산 경매를 하는데”라고 말하며 검은 루이뷔통 장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건넸다.  

    

  음식은 훌륭했다. 아주머니가 “제가 레스토랑을 했습니다”라고 말한 내공이었는데, “카페도 처음에 운영하다 힘들어 세를 줬었다가 다시 운영하고 있어요”라는 말에는 힘겨움이 묻어났다. 그렇게 식사 후 마트를 들려 모두의 피와 살이 될 음식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카트에 담았다.    

 

  캔싱턴 리조트로 돌아오니 나머지 일행이 반겼다. 이 리조트도 온천수 호황일 때 만들어진 듯 조망은 꽝이었다. 일행은 둥그렇게 앉아서 특별한 주제 없이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고 술상은 종이 박스를 엎어 만들었다. 이렇게 시작된 술자리는 당진의 백ㅇㅇ 학우의 조개 공수까지 이어졌는데 ‘대전에 약속이 있다’라며 식사하고 바로 떠나 아쉬움을 남겼다.      


  그렇게 남은 일행은 고기를 굽고 조개를 삶아 안주를 만들어서 마시고 떠들었는데, 이ㅇㅇ 학우의 공연장 대여사업은 그의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공연장 대여사업이란 보증금 3천만 원에 월 150만 원짜리 30평 지하 공간을 인디밴드 공연장으로 대여를 하는 사업이었다. 친구 3명이 동업을 했는데 자기가 가장 많이 투자했고, 작년 12월까지 계속 적자가 났다고 했다. 그래서 손을 뗐지만 ‘(공연장 대여료로) 받아야 할 금액이 4천만 원 정도 된다’라고 하기에 “나하고 채권 회수하자?”라고 하거나 “나도 공연장 음향시설이 필요하니 중고로 팔아라”라고 꼬드겼다.           

  이에, 학우들 또한 “4천만 원짜리 차용증 써라. 우리도 같이 바로 회수하러 간다”라고 뽐뿌를 했다. 그러는 속에 ‘택배로 기증받았다’라는 양주를 개봉할 때는 대박이었다. 코르크를 뽑을 수 없어서 1층 프런트까지 내려갔으나 선물을 받은 후 3년이나 지났기에 코르크는 건조해 부서졌다. 결국, 따개로 구멍을 내고 술을 따랐다. 

     

  “18년을 기준으로 그 이하는 맥주를 섞는 폭탄주, 그 이상은 스트레이트여. 그러니까 이 술은 스트레이트.”     


  그의 제안에 병을 돌려가며 향을 맡았다. 그리고 일 잔을! 술자리는 즐거운 수다와 함께 계속되었고 그 속에서 학생회의 차기 프로그램 제안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그러니 올해 미디어영상학과도 꽤나 시끄러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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