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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Mar 21. 2024

"사장님, 정말로 이혼하실 겁니까?"

[연재] 48. 이혼 24일 차

48. 이혼 24일 차, “사장님, 정말로 이혼하실 겁니까?”         


 

2014년 3월 24일 월요일 맑음      


  보일러를 꺼 놓고 잠들었더니 조금 추웠던 모양이다. 

  몸이 약간 차가웠다. 10시가 다 되어 일어났고 은행 대출이자를 송금했다.      


  “사장님, 10시 30분에 출발하시죠?”     


  베드로의 전화를 받을 때까지도 오늘의 연기 콘셉트를 정하지 못했다. 결국, 오래된 차이나 양복을 꺼냈고 구두는 닦지 않은 부츠를 선택했다. 그렇게 베드로와 함께 도착한 곳은 부천 테크타운 아파트형 공장이었다.      


  인천 빌라 건축 토지 명의자 겸 채무자인 염 사장이 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카 오디오 제작회사로, 일전에 ‘공장에 한 번 오시라’는 말과 함께, 오디오 생산을 위한 자금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회사는 아주 작았다. 생산 라인에도 직원이 아무도 없었는데,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 출근하는 시스템인 듯했다. 그러함에도 제품 중 스마트폰 블루투스 기능으로 작동되는 오디오는 그를 깜짝 놀라게 했다. 유튜브의 노래를 바로 오디오로 나오게 하는 기능으로 염 사장이 “이게 저희 회사 특허입니다”라고 소개하며 ‘당장에라도 5억 정도 자금을 투입하면 생산 가능하다’라고 언급하기에 잠시 에인절 투자자가 되어 볼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천 빌라 건축 토지 문제를 매듭지어야 했기에 함께 인천으로 향했다.    

 

  인천 ㅇㅇ산업개발 사장실에서 ‘건설사와 맺은 계약서’를 보며 그가 말했다.      


  “이 계약서가 뭡니까?”     


  계약서에는 그의 날인이 들어갈 자리가 없을뿐더러 특약 사항 또한 어지럽게 복잡했다. 문구를 수정하려다 전면적으로 다시 설계해야 할 듯해서 포기하고 “가져가서 정리해 메일로 보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일어섰다.      


  “식사나 하고 가시죠?”     


  이미 오후 2시가 넘었다. 그도 한 끼도 먹지 않은 상태였기에 백 회장이라는 사내의 말에 [소머리국밥] 식당으로 들어갔다. 오디오회사 부사장이며 빌라 토지 명의자인 염 사장과 베드로도 함께였다.     

 

  이때였다. 그가 “(건축비) 평당 350만 원에 짓겠다면서 견적서도 없이 끌려가는 건축보다는 한투(한국투자저축은행)의 PF를 이용해 직접 짓는 것이 낫겠습니다. 제가 전화나 한번 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114로 전화를 걸어 ‘ㅇㅇ 한국투자저축은행 부탁합니다.’라고 말했고 곧 은행과 연결되었다.   

   

  “조ㅅㅂ 과장 계십니까?”     


  그의 말에 여직원이 “ㅇㅇ지점으로 발령이 났습니다”라고 말하기에 “전화번호 알 수 있을까요?”라고 부탁해 휴대폰 번호를 알아냈고 전화를 걸었다.     


  “지금 통화 가능하십니까? 나 경매계의 전설, 멘토랜드 XXX입니다. 조 과장 많이 컸네.”

  “아, 사장님. 어떻게 전화번호를 버리지 않으셨네요?”

  “한투에서 PF도 한다고 해서, 내가 건축을 하고 있거든.”     


  통화를 끝낸 그가 잠실 빌딩 주소를 문자로 보냈다. 그 광경을 본 염 사장은 충격에 빠졌다.      


  “제가 그동안 돈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업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김 사장님처럼 전화 한 통으로 은행과 약속을 잡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무슨 브로커들이 소개 소개하며 된다 안 된다 그랬거든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한국투자저축은행은 그가 멘토랜드라는 부동산 매매법인을 할 때 30억 원 정도를 빌려주었다. 게다가,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금리가 11%까지 치솟았을 때도 꿈쩍하지 않고 이자를 지급했고 청산 또한 깔끔했다. 그러니 수년이 흘러도 그를 기억하는 것이었다. 이 신용을 본 염 사장은 감격했으나 밥값은 그가 사업자용 직불카드로 결제했다.     


  “괜찮습니다. 저도 비용처리 됩니다.”     


  밥값을 내겠다고 나서는 염 사장에게 그가 말했다. 인천을 떠나 안양 건설현장으로 향했다. 전소장이 전화를 걸어와 “사장님, 오늘 결제가 될까요?”라고 독촉할 때도 이때였다.     

 

  “무슨 2층 철근 올리고 2억을 달라고 하냐? 2억이면 5층을 올릴 돈이야. 이거 너무하는 것 아냐?”     


  계약서에는 2층을 올리면 공사비 1억을 지급하기로 되어있다. 그러나 그가 약간 까다롭게 굴었다.  

    

  “사장님 열심히 하고 있잖아요. 사실은 철근 골조를 하는 업자가 제 아버지입니다. 시골에서 자재와 인부를 모두 끌고 왔거든요.”     


  전 소장의 말을 들으니 견적이 낮게 나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시골 아버지의 견적으로 현장이 시공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공사비를 며칠 늦춘다고 부자가 될 것도 아니기에 결제해 주기로 했다.     

 

  “내일 보낼 테니 걱정 말어!”     


  그러는 사이 건축현장 골목에 도착했다. 고삐리 몇 녀석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사진 찍는다. 얼굴 나오기 싫으면 알아서 해.”     


  녀석들은 ‘담배 피우는 것을 찍는다’라는 소리로 알아들었다가 이내 건물을 찍는 모습에 뭉그적거리며 자리를 벗어났다. 현장은 높이만 2층으로 올라갔을 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안양 출발했어. 곧 도착해.”     


  서울로 돌아오면서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는데, ‘김치를 담갔는데 가져갈 거야? 어쩔 거야?’라고 전화했기 때문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베드로가 “사장님, 정말로 이혼하실 겁니까? 김치도 담가 주는데~”라고 말을 걸었다.      


  이에 그가 “이제야 김치를 담그는군요. 김치를 담그면서 생각을 했겠지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동안 해 주지 못한 것들을 생각했을 겁니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는 과거에서, 이제는 영영 집에 오지 않는 남편을 생각하게 되었을 겁니다. 골프로 치면 퍼팅을 해야 했는데 아이언으로 공을 너무 멀리 때려 버린 것을 서서히 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처음에는 이렇게 티격거리다 말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24일이니 거의 한 달이 되어 갑니다. 남자가 일정한 속도로 가고 있으니 걱정이 된 거지요. 그녀는 좀 더 빨리 알았어야 합니다. 골프에 빠져 있을 때는 집안도 엉망이었지요. 요, 근래에 화장실도 청소했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듣고 있던 베드로가 “그래도 저 같으면. 이렇게 잘하려고 하는데.”라고 말을 끝내지 않았다.     


  “아내는 나를 잘 알지요. 아마 이번에는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을 겁니다. 어떻게 해도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사태는 바람을 피웠다거나, 울고 매달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녀가 변해서 한 행동을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죠. 그녀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자신의 잘못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장님, 이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아는 여자가 남자가 좋다고 하자 1억 원을 요구했습니다. 사랑하면 줘야 하는데 남자가 연락을 안 했다고 하네요.”      


  “여자는 1억 원을 백만 원으로 쪼개서 여러 번 나눠줘야 합니다. 1억 원을 한 번에 준다고 몇 년을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딱 3일 감동합니다. 그리고 사소한 일로 싸우며 헤어지지요. 그녀는 남자에게 자신을 팔아 본 겁니다. 남자들은 여자를 그렇게 비싸게 사지 않지요. 1억이면 월 3백만 원의 이자를 받습니다. 20만 원이면 한 번의 섹스를 하니 15번 할 수 있습니다. 이틀에 한 번씩 하는 돈이군요. 그래도 원금은 남았네요. 그러니 당연히 남자는 한 번에 1억 원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제가 노동운동으로 구속되었을 때 같은 감방에 제비 한 놈이 들어왔습니다. 제비가 ‘여자에게 돈을 땡기는 놈은 하수다. 나는 여자가 스스로 돈을 주도록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선물을 안겨준다.’라고 말하더군요. 핵심은 여자가 스스로 감동해서 돈을 가져오게 한다는 겁니다. 즉, 여자도 1억 원을 받고 싶다면 남자가 감동할 만큼 뭔가를 해야 하지요. 그런데 그러기엔 남자가 별로였거나 마음이 급한 겁니다. 그러니 남자가 돈을 주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장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거, 뭐야~, ㅇ양 비디오에서 어떻습니까? 남자는 ㅇ양을 막 다루지 않습니까? 즉 여자보다 높은 레벨이 되면 1억 달라고 할 때 빰 싸다귀 날려도 됩니다. 그럴 레벨 되면 1억을 달라고 하지도 못하지요. 여자가 1억을 달라고 했다는 것은 남자가 그 레벨이 안된다는 것이고요. 나라면 그런 말 못 나오게 할 겁니다. 오늘처럼 뒷자리에 태우고 다니며 나보다 나이가 많고 제조업을 하는 사장조차 굽신거리는 모습을 보게 해 줄 겁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이 남자는 인생을 걸기에 충분하다’라고 느끼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충성을 하게 될 테니까요.”     


  “하아, 그렇군요. 사장님은 그런 철학을 어떻게 아시게 되었습니까? 책입니까? 아니면~”     


  “생각입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사색을 하면 됩니다. 사실 세상은 모두 거래잖아요?. 아내를 보자고요. 말로는 ‘나는 남편을 경외해’라고 하지만 사실은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에 싫어하는 골프를 그만두지 않는 것입니다. 남편의 권위를 인정했다면 골프를 줄이거나 그만두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딱 한 가지’라며 권위에 도전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해도 남자가 싫다고 하면 포기를 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야’라고 하며 이혼을 요구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골프를 얻고 나머지 모든 것을 잃은 것입니다.”     


  대화하는 사이 자동차가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가 현관문을 여니 딸이 교복을 갈아입다가 마중을 나왔다.     


  “한 번 안아보자.”     


  예전의 아빠는 아이를 포옹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혼서류 접수 후에는 늘 그랬다. 그의 가슴이 아파서, 아이를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해서 그랬다. 아내가 시무룩한 얼굴로 [시골보쌈감자옹심이] 식당 종이 가방 4가지 김치를 담아 건넸다.      


  “베드로와 같이 왔어!”


  그냥 무뚝뚝하게 돌아서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어서 묻지도 않은 답을 하고 현관문을 닫았다.      

  무빙디자인 한 소장이 지하현장 막바지 확인을 위해 찾아왔다. 함께 지하로 내려갔는데 천정에서 물이 새는 것을 발견할 때도 이때였다. 점장을 불러 확인을 시키고 보수를 하도록 하고 한 소장에게는 “여기는 프로젝트를 쏠 거니까 흰색에 벽돌을 붙여. 노래방 화면이 나와야 하니까. 그리고 이쪽은 커튼을 하고 스크린을 걸자. 영화를 봐야 하거든. 그리고 스피커 선은 4개를 뽑고 조명 스위치는 드럼 뒤쪽으로 모아줘. 인터넷은 3곳에 소캣을 만들고 사무실은 창문에 블라인드로 가자고. 그리고 책상도 60센티로 아예 만들어.”라고 말했다. 듣고 있던 한 소장이 도면에 샤프펜슬로 그어가며 의견을 표시하며 사이키 조명, 회전 전구 등을 부착할 곳도 표시했다.      


  “오디오는 제가 염 사장에게 두 개 만들어 내라고 하겠습니다.”     


  베드로가 나서서 오디오를 협찬받아 내겠다고 했다. 마이클이 “제가 나서는 것보다 그게 더 모양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하하-”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밥을 먹고 가라는 말에 한 소장은 ‘또 가볼 곳이 있습니다.’라며 떠났고 그는 베드로와 여자가 싸 준 김치로 멋진 저녁을 먹었다. 그런 후, 콜라를 사 오며 “인천 계약서 특약을 작성하시죠?”라고 재촉하는 베드로의 말에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특약’ 사항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거 안 되겠습니다. 공사 견적서도 없이 무조건 평당 350만 원에 지어주라고 앙망하는 꼴입니다. 이런 계약은 말도 안 됩니다. 이들은 아예 집을 지을 생각이 없다고 보입니다. 견적서를 넣으라고 해야 나중에 견적서대로 지었는지 검증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베드로가 시행을 담당한 임 대표와 통화를 했다. 그러나 그는 ‘살려고 하는데 뭘 그리 압박하냐?’고 말하는 듯했다. 이에, “이 건은 처음부터 다시 하지요. 이렇게 가서는 안 됩니다. 시공사로부터 11개의 빌라를 내가 받는다는 사실, 유치권 포기, 책임준공 확약서를 받고 마무리하는 것으로 하죠? 내가 너무 감정적으로 깊이 들어갔네요.”라고 말하자 베드로도 “그러시죠. 차라리 막 사채로 가자 구요.”라고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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