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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Mar 23. 2024

아내가 예쁘다는 사내

[연재] 49. 이혼 25일 차

49. 이혼 25일 차. 아내가 예쁘다는 사내          



2014년 3월 25일 화요일 맑음      


  블라인드 틈새로 아침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점심때가 다 되어 1억 원짜리 수표 한 장을 챙겨 신한은행으로 향했다. [야촌주택] 계좌로 무통장입금을 하고 영수증은 사진으로 남겨 두었다. 안양 빌딩 골조공사는 전 소장의 아버지라는 말에 그가 황급히 무통장 입금했다.     


  인천 효성동 빌라 건축을 위한 대출은 한투의 자금을 빌리려 했으나 조 과장은 ‘오후 2시에서 3시쯤 가겠습니다.’라는 연락을 했고, 그 시간에 베드로와 투자일정을 조율했다.    

 

  “사장님, 효성동(빌라)은 우리가 짓는 것으로 하시죠?”     


  베드로의 제안에 그가 말했다.     


  “한투에서 대출이 된다면 가도록 하지요. 그게 안 된다면 날리는(경매 진행) 것으로 하겠습니다.”   

  

  인생은 매 순간이 전투다. 효성동 빌라 건축 부지 부실대출에 대해 긴 장고를 했고 결국 오늘 정리를 했다.      


  “사장님, 제가 사실 약간은 뭐라 할까, 신기 같은 것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말에 “인간은 오감이라고 하지만 마지막 영의 감각인 육감이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요.”라고 대답하자 “가슴이 답답해서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이게 뭔 일일까 생각해 봤더니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아침 7시경 임(시행사)과 염(토지명의자 겸 채무자)에게 통화를 해서 어느 정도 정리를 했거든요.”라고 말했다. 


  이에 그가 “이 사건은 우리가 너무 감정적으로 개입해서 본질을 흐리게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일단 우리 쪽에서 건축 견적과 건축자금에 대해 한투에서 된다고 하면 끌고 가고 안된다면 날리는 것으로 정리를 하시죠?”라고 말했다. 이에 베드로도 “맞습니다. 사장님!”라고 맞장구쳤다.      


  한국투자저축은행. 그가 부동산경매로 이름을 날리던 그 시절 최고의 대출 은행이 이곳이었다. 경매로 낙찰을 받은 부동산의 잔금대출을 이용했는데 금리가 낮아서가 아니다. 그저 돈을 잘 빌려주기 때문이었다. 


  금리는 리먼 브라더스 파산 때 최고에 달했는데 그때 금리는 연 11%였다. 이 살인적인 고금리에도 그는 이자를 틀림없이 납입했으며 모든 채무를 청산했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동산을 법원에서 경매로 매각했을 때 조 과장이 배당금을 받으러 왔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 조 과장이 찾아왔다.    

 

  “야, 이게 몇 년 만이야?”


   전화로 통화는 했지만 대면은 정말 몇 년 만이었다. 조 과장도 법원에서 바들바들 떨던 남자가 아니라 관록이 붙은 수컷의 냄새를 풍겼다.      


  “사장님, 이 건물이 사장님 것이세요? 같이 하신 분은 어떻게 되셨어요?”

  “임 부장? 지금 창원에서 제조업을 창업했는데 100억대의 부자가 되었지.”   

  

  그가 임 부장의 근황을 알려 주며 설계도를 펼치며 “조 과장, 이게 말이야. 성공하면 열두 개(12억)가 남아. 그런데 공사비로 서른두 개(32억)가 필요해 어떻게 대출이 될까?”라고 말했다. 


   “서른 개가 넘어 좀 무겁긴 한데요. 사장님을 알잖아요.”
   “그렇지. 내가 한투의 최고의 채무자였잖아. 그러니 나에게 돈을 빌려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그랬다. 그는 한투의 자금을 쓰면서 연체는 고사하고 원금까지 고스란히 변제했고, 마지막 투자물건 배당기일 날 그가 조 과장에게 물었었다.     


  “조 과장, 한투의 채무자 중 내가 최고지?”     


  그때 조 과장이 말했다.     


  “네. 정말 멋지세요.” 


   오늘도 그는 조 과장에게 말했다.      


  “그때 법인 대표 중 가장 자산이 많은 사람이 나였잖아. 이번 건설 건도 잘 될 거야. 우린 트루 프랜드잖어.”     


  “예. 알겠습니다. 공동투자 약정서와 설계도는 가져갈게요. 당사자간에 합의가 되면 연락 주십시오.”  

   

  조 과장은 시공과 분양을 하는 팀에게 전화해서 그가 시공해야 할 곳의 분양가를 물어보았다. 분양팀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지만 그렇다고 판을 깰 정도의 반응은 아니었다. 한투의 대출조건은 ‘준공 시까지 마이너스 통장 개념으로 연 12%이며, 준공 후에는 6%로 낮아집니다.’였다. 

     

  “임ㅇㅇ 과장에게 전화해 볼까요?”     


  조 과장이 전화를 걸어 한투 본사에서 근무하는 임 과장에게 전화했다.     


  “XXX 사장님이 대박 났네.”     


  전화를 건네받은 그가 “한 달 후에 전용 룸살롱이 생기니 놀러 와.”라고 말했고 사실(지하 드럼연습실)을 말하려는 조 과장에게 “꿈은 깨지 않는 거야.”라며 협박했다. 그렇게 조 과장을 보내고 [야촌주택] 전 소장과 통화를 했다.     


  “(인천 빌라공사) 견적 가져와 봐!”     


  장 부장에게도 같은 도면을 보냈지만 “견적은 좀 기다려봐라.”라고 언질을 줬다. 왜냐하면, 그가 어느새 ‘프로가 아닌 사람과는 일하지 않겠다’라는 원칙을 어기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빌딩 지하실은 서너 명의 인부들이 투입되어 전등을 살리거나 조명을 위해 배선을 설치했고 바닥 미장 작업도 했다. 1층 식당 누수도 인테리어 담당자가 와서 내일 확인하기로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그 힘의 원천은 ‘돈’이었다.     


  오후가 되어 몹시 피로했기에 잠시 눈을 붙였다가 전화벨 소리에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 정도 잠든 것 같았다. 공동 주방으로 내려가 밥을 한 공기 퍼 와서 김치로 식사하던 중이었다.      


  “사장님. 공사 견적이 문제가 있습니다.”     


  전 소장의 전화에 “술 한잔하실래요?”라고 물으며 먹던 공깃밥을 밀고 1층 식당으로 내려가 삼겹살에 소주를 주문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전화를 걸어 “근처에 계시면 오시죠?”라고 말했다.    

  

  이렇게 하여 베드로와 전 소장이 처음으로 대면했고, 설계도면 확보를 위해 ‘아침 7시 30분에 빌딩에서 만납시다’라는 약속이 정해졌다. 이 과정에서 인천 빌라건축 설계비는 ‘한 푼도 지급되지 않았다’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 “내 명함을 주면서, 이제부터는 내가 다 한다고 하세요”라며 정리를 하고 “이제부터는 배려가 없는 점령군입니다. 그러니 앞만 보고 달립시다.”라고 두 사람을 독려했다.     


  이에 전 소장이 “우리 아버지가 주택건설을 망하고 제 이름으로 하고 있습니다. 효성동을 저에게 주신다면 골조팀을 그대로 이동시켜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간절한 마음에 그도 공사를 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견적 똘똘하게 넣어 봐.”라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고 “아내가 명품 백 같은 것은 원하지도 않습니다”라고 말을 하기에 “그 백은 준공되면 내가 사줄게”라고 말하자 “아닙니다.”라고 극구 말렸다. 이에 그가 말했다.     


  “아니야. 우리 남편이 고생해서 안양의 건물을 지어주자 건축주가 ‘명품 백을 선물했어’라는 스토리도 괜찮아.”


  전 소장은 “제 월급이 250입니다. 딸 셋을 키우느라 열심히 삽니다.”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그 마음이 이뻐서 명품 백을 선물하기로 했다. 이런 것이 선물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질 때 행복하듯이. 또 이 약속으로 인해 전 소장은 최선을 다해서 일할 것이고 그것은 결국 그의 이득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때였다. 전 소장이 “제 아내 이뻐요.”라고 말했다. 뜬금없는 소리에 “내 아내는 봤나?”라고 물었더니 “사진으로 봤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내 아내가 더 이쁘지 않아?”라고 물었더니 “아닙니다. 제 아내가 더 이쁩니다.”라고 지지 않았다.     


  “그거야 연식이 그런 거지. 그땐 내 아내도 훨씬 이뻤지.”     


  아내. 이렇게 아내란 말을 내뱉는 그에게 아내가 있던가? 하이힐을 신고, 화려한 옷을 입고 수컷들에게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지금의 아내가 아내인가? 부부란 성적 매력을 서로에게만 보이고 남에겐 감추는 것이다.      


  아내도 당연히 과거에는 하이힐을 신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부터 성적 매력을 발산하며 외출을 했다. 아내가 없는 그가 아내라는 단어를 스스로 쏟아 냈는데 그것은 서글픈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술자리는 소주 3병 맥주 4병으로 길어졌고 그가 5만 원 지폐 한 장을 전 소장에게 주었다.     


  “이거 대리비야. 날마다 주는 것 아니다.”     


  전 소장은 끝까지 그를 빌딩 옥탑방으로 올려 보냈다. 오늘 보니 그는 참으로 성실하고 꿈이 소박한 남자였다. 어쨌거나 전 소장 덕분에 노래방을 전전할 그가 옥탑방에서 일기를 썼다. 하지만 곧, 옆 건물 노래방으로 가서 하염없는 서비스를 받으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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