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묘 Dec 06. 2022

샤워기만 있으니
세수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미얀마 양곤

고독이라는 값을 치르고 얻은 자유이므로.
- 어슐러 K. 르 귄


텅 빈 집에 안녕~ 하고 나왔다.

탁묘 간 야옹이들도 잘 있어~ 하고 출발했다.

완행버스를 타고 영종도 구석구석을 가로질러 공항에 도착했다.

면세점 사인회와 라운지 투어까지 했는데 시간이 남았다. 

배부르게 먹었으니 비행기에서 잠잘 일만 남았다.

짐 싸느라 늦게 잤더니 꽤 졸리는구나. 

여행이 예전만큼 설레지 않는다. 외롭고 무료하고.

그런데 더 외로운 섬이 되기 위해 떠나다니. 참 이걸 어쩐다.


방은 후텁지근했다. 

방과 방이 얇은 나무 합판으로 가려져 있고

위 50센티 정도가 뚫려 있어 차가운 공기가 전해지는데.

거실 에어컨을 아무리 세게 틀어도 바람이 방까지 오지 못했다. 

가림막이 소리는 막지 못하면서 공기는 막고 있기 때문이리라.

옆 방에서 이불을 끌어올리고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고스란히 다 들려왔다.

공동 화장실 때문에 한숨이 나왔다.

쭈그리고 앉아서 볼일을 보고 변기에 물을 부어 흘려보내야 하는 구조다.

변기 옆에 샤워기만 달랑 있었고.

샤워기 밑에 내 키만 한 물 트렁크가 있었다.

어떻게 씻어야 할까 머리를 굴려야 했다.

샤워기만 있으니 세수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조르륵 물이 새듯 찬물만 나왔다.

양곤 날씨가 엄청 덥다지만

거실 에어컨으로 닭살이 돋을 정도인데 찬물이라니.

머리를 굴려 몸에 겨우 차가운 물을 적시는 정도였지만.

씻고 매트리스만 있는 침대에 누우니 개운했다.

사람은 빨리 익숙해진다.


면세 화장품 포장을 뜯으며 후회했다.

이 더운 나라에서 넥크림과 페이스 오일 두 개가 왜 필요했는지. 

향수 세 병은 과했고. 

두꺼운 화장은 할 수 없는 데 파운데이션 세트는 왜 챙겨 왔는지.

무거운 손거울은 왜 집에 놔두고 오지 않았는지.

떠나는 날 영화를 변환해 아이폰에 넣는 과정에서 

데이터 요금 4만 원이 부과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아 우울했고.

오랜 비행을 마치고 밤늦게 숙소에 들어와

안전하게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낼만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이유로 슬펐다.

양곤 공항 투명 칸막이 밖에서 

많은 미얀마 사람들이 가족을 기다리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 도시는 정이 많고 마음이 따듯한 곳이다.

그리하여 허름한 숙소에 와 적막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나는 왜 이런 삶을 사는 것일까 의문을 던졌다.

조용히 음악을 틀어 보았지만

옆방 뒤척이는 이불 소리에 잠을 방해할까 봐 음악을 껐다.

화장실 겸 샤워실 창고는 하룻밤 사이 익숙해졌다. 

머리를 감고 대충 얼굴만 씻었다.

다음엔 윗옷을 벋고 씻으리라 다짐하면서.

조식을 먹으러 320호에서 304호로 갔다.

어머나, 숙소 한국인 사장님이 젊고 잘생겼다.

결혼사진이 입구에 커다랗게 걸려 있었는데 아내가 미얀마 분이시다.

어떤 이유로 미얀마에 살게 되었고 결혼했을까 궁금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