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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묘 Oct 04. 2022

요금을 싸게 불러 혹했다.

인도 뱅갈루루

적어도 아직까지 우리는 살아 있지 않은가!
<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벵갈루루 기차역 앞에 큰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육교에 올라 그 위를 가로질렀다. 

모두 계단 계단 계단. 그런데 가운데를 막아 놓았다. 

육교에서 내려와 도로를 건너려니 차가 쉬지 않고 지나간다.

여기가 인도 맞군요.


호객꾼을 쫓아 가 반나절 숙소를 구했다. 와이파이는 안되지만 깨끗했다. 

우선 씻었다. 머리 감으며 아, 좋다! 좋다! 를 외쳤고. 

물이 잘 나와서 어제 입었던 냄새나는 옷도 빨았다. 

한숨 잤다. 모두 계획대로였다. 


MG로드로 가는 에어컨 버스를 탔다. 

버스는 좋았지만 느렸고 생각보다 비쌌다.

길이 차로 가득해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모든 차와 릭샤들이 빵빵거렸다. 

한참을 걸려 도착한 MG로드. 

그러나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시티 뱅크를 겨우 찾았지만 내 카드로는 출금이 되지 않았고.

오래 기다려 상담하고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신경을 쓰고 시간을 쓰고 지쳐갔다. 

다른 은행에도 가보았지만 통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고생 끝에 ICIC 은행에서 만 육천 원을 주고 환전했다. 

루피를 받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왜 이렇게 느린 것인가 지켜보았다. 

컴퓨터를 앞에 두고 손글씨로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틈틈이 수다를 떨었고, 오는 손님마다 아는 척했고. 

전화를 했고, 또 다른데 신경 쓰느라 시간을 끌었다. 

손님은 나뿐이었는데도 말이다. 

내가 준 400 달러를 상자에 고이 넣고 열쇠로 잠갔다. 

입구에 있는 근사한 나선형 계단을 통해 2층으로 가져가더니 소식이 없었다. 

버스와 마찬가지로 속이 터질 뿐이었다. 

이렇게 하루가 다 가버렸다.


돌아가려고 오토릭샤를 탔다. 요금을 싸게 불러 혹했다. 

릭샤는 갑자기 깜깜한 왜진 길로 들어섰다. 

상품을 팔려고 가게에 데려가는 듯했다. 

어떻게 벗어나야 하나? 

평범한 건물 앞에 릭샤를 세우고 반 계단을 내려갔다.

삐끼가 가게 불을 켜는 사이, 난 입구에만 발을 들이고 섰다. 

그림 액자가 많았다. 갤러리인 듯. 

난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사정하고는 도망치 듯 나왔다. 

바보인가? 삐끼에게 걸리다니. 

인적 드문 길을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왔다. 

차가 씽씽 다니는 큰 거리를 찾았을 때 조금 마음이 놓였다.

다른 릭샤에 올라서도 걱정이 되었다.

해가 져 어둑어둑해지자 도시가 낯설게만 느껴졌으니까. 

버스로 이동할 때 보지 못했던 큰 광장이 나왔고, 거대한 건물들이 지나갔고. 

가는 길이 맞나 의심했다. 

오토 릭샤에서 뛰어내릴까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그리 빠르지 않으니 도전해볼 만하다고. 

다행히 기차역 근처에 내려주었다. 

역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구걸하는 사람들. 무언가 먹는 사람들. 어딘가 다친 사람들. 

육교를 건너니 숙소 주위로 시장이 생겼다. 

가게들마다 물건이 넘쳐 길까지 막고 있었다. 

불빛이 번쩍번쩍했고 시끄러웠고. 어딜 가나 인파가 대단했다.

아침 풍경과 저녁 풍경이 너무 달라 또 헤맸다.  


함피 호스펫으로 가는 기차를 타러 출발.

거대한 역에 들어서니 또 설국열차가 떠올랐다. 

섞이고 흩어지는 복잡한 철길 위에 기차가 가득했다. 

길고 긴 기차는 앞 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또 수많은 인파. 이곳은 과거인가? 미래인가? 

봉준호 감독이 인도에 와서 열차와 바퀴벌레 식량을 모델로 삼았나?

철로 돌 틈마다 쥐와 커다란 바퀴벌레가 있었다. 

바닥에 앉은 사람들 엉덩이 밑으로, 누워 있는 사람들 등 뒤로 왔다 갔다 했다. 

걸음 사이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녀석들도 많았다. 

내 짐 쪽으로 올까 봐 가방 속을 파고들까 봐 눈을 떼지 못했다. 

휴지통 주위는 물론이고 사람이 앉는 자리마다 굶주린 녀석들이 몰려들었다.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어 짐을 들고 섰다. 

그러나 이미 내 가방 안에 혹은 발밑에 있을 수도.

기차 안에도 넘치게 많으니까.


슬리퍼 기차에 올랐다. 옆 칸이 소란스러웠다. 

오픈! 오픈 잇! 소리가 들려왔다. 

1AC 일등석은 독립된 방으로, 안에 2개의 침대가 있고 문을 잠글 수 있었다. 

커튼으로만 가릴 수 있는 내가 앉은 2AC와는 달랐고.

그런데 한 사람이 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주지 않았다. 

예약한 사람이 들어가지 못해 계속 오픈! 오픈 잇! 을 외쳤다. 

처음에는 아주머니 혼자 외치다가 승무원까지 와서 두드리고 외쳤다. 

손님들도 나서서 두드렸고. 

나중에는 승무원이 플리즈. 플리즈~ 부탁했다.

출발 전 30분 동안 싸웠다. 문을 안 열어주다니.

그 소음 속에서 난 잠에 빠져들었다. 너무 잘 자는구나. 

벵갈루루에서 사기꾼 다섯은 만났고, 

역에서 쥐와 벌레들을 피해 내내 짐을 들고 버티고 서 기차를 기다려서. 

기차는 나름 깨끗했다. 침대도 넓었다. 화장실도 괜찮았다.

이렇게 인도는 어떻게든 되더라. 인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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