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4월, 현 직장에서 정체기에 다다랐다고 판단하고 관심가는 기업과 포지션에 이력서를 넣어보기 시작했습니다. 흥미와 호기심 만으로 두드린 곳도 있었고, 정말 절실한 마음으로 수십 번 수정한 이력서와 자소서를 보낸 곳도 있었죠. 아직 진행중이지만, 브런치에 수많은 이직 관련 조언과 성공기가 있어 저는 아직 ING인 사람으로서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직 도전자 여러분, 우리 지치지 말아요+_+!!!
1) 링크드인 계정 만들기
먼저 제가 가고 싶은, 갈 수 있는 포지션을 고민하다 외국계의 CSR/ESG 포지션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잡고 다양한 잡포스팅과 인맥들을 연결해보기 위해 링크드인의 계정을 만들었습니다. '직업인들의 페이스북'이라 불리는 링크드인에서 그 동안 저에게 왔는데 모르고 있던 친구 요청도 몇 개 수락했습니다. (말이 그렇지 막상 대학 이후로 소식도 못 들은 분들과 재회하는 건 다소 어색하기도 하더라구요) 처음에는 프로필에 자세하게 올리지는 않았고 주로 '눈팅'을 위주로 해봤습니다. 그러다 생각보다 많은 기업이 지원자의 '링크드인' 프로필을 조회해 본다는 것을 알게 되고나서 인맥도 늘리고 프로필도 성의있게 작성하려고 노력해 보았어요. 사진은 최근 증명사진으로, 간단한 이력과 요약을 올려두었더니 조회수가 금방 오르더라고요.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간간히 헤드헌터님들께 포지션 제안이 옵니다.
2) 이력서&자소서 쓰기
대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지났기 때문에 이력서와 자소서를 다시 쓰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보통 구직 사이트에 대략적인 정보를 올려두면 헤드헌터님들께 연락이 오면서 갖고 계신 이력서 양식을 보내주시거나, 지원하고자 하는 기업에서 사용하는 양식을 몇 개 이용해보고 괜찮은 것들을 짜집기도 해보면서 만들었어요. 처음부터 1순위 포지션에 지원하지 않았고요 (연습이 필요하니까요 ^^;). 지난 12개월간 대략 2-30개의 서류를 제출한 것 같습니다.이력서는 기본으로 한/영으로 준비하고, 자소서나 포트폴리오는 정말 1순위나 반드시 필요로 하는 곳에만 그때그때 만들어서 제출했어요. 이력서도 마케팅 쪽과 미디어 쪽 등에 따라 조금씩 강조하고 싶은 이력, 순서를 바꾸고요. 개인적으로는 서류전형을 거치면서도 기업에 대해알게 되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두 달 동안 아무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면접을 보자고 하는 곳도 있었고, 1주일 내로 공손하고 품위 있게 (?) 답을 주는 곳도 있었어요. 성의없는 대답과 메일로 보낸 팔로업 요청에도 묵묵부답이었던 곳은, 걸르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소득을 꼽자면 서류를 쓰면서 지난 10년 커리어를 되돌아 보는 경험이 좋았던 것 같아요. 냉정하게 성과를 재평가하고 '내가 회사에서 뭘 기여했지?' '내가 뭘 배웠지?'를 따져보는 시간이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자연스레 일을 할 때도 '이게 나한테 하고 나면 뭔가가 남는 일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고, 없다면 관리자/동료 분들의 피드백이라도 받아보려고 하게 되었구요. 굳이 이직까지 생각이 없더라도 한번쯤 커리어 중반에 이력서를 써보는 일은 추천 드립니다.
3) 드디어 면접. 최종 합격도 있었지만...
이렇게 서류를 넣다보면, 면접을 보자고 하는 데가 생깁니다. '만약 당장 채용되면 다음 달 부터 일해야 하는데'라는 걱정이 앞서지만, 경험도 있으니 저는 보러가는 편입니다. 경력직 면접은 우선 실무 중심으로 강점과 주요 수행과제들을 어필하면, 면접관님들이 그에 대해 질문을 주시기도 하고, 실무 외에 다른 요소들을 많이 이야기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현재 있는 회사에서 왜 이직하려고 하는지, 또는 어떤 상황에서 본인의 능력이 가장 효율적으로 발휘되는 것 같은지 - 그래서 저는 진정성있게 면접에 임했습니다. 왜냐면 이젠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의 성향도 그렇고, 저의 단점도 어차피 같이 일하기 시작하면 다 알게 될테니까요. 외국계 회사 한 곳의 경우, 서류면접 이후 총 4분과 따로따로 줌 면접을 치뤘습니다. 컨트리 (한국) 매니저, 아시아 매니저, 글로벌 최종 이런 식으로 올라가는데요. 한국에 사무실이 있어도 먼저 외국에 있는 HR매니저와 1차를 보는 경우도 있었구요.
여튼 이런 과정 중에, 최종적으로 합격을 하게 된 곳이 있었습니다. 연봉도 꽤 올릴 수 있었구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최종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내가, 조금은 성에 안차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은 현 직장을 내치면서까지 가고싶은 일인가를 생각해본건데요.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 즉 내가 포기하게 되는 것이 포함되어 있잖아요. 이제 회사생활이란 '나에게 맡겨진 어떤 일을 수행하러 가는 것'만이 아닌, '그 조직 안에서 내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까지 담긴 것이라는 걸 압니다. 연차, 선후배와의 관계, 안정성 등이 모두 중요하다는 뜻인데요. 저는, 달콤한 '최종합격'이 내미는 손을 현재도피를 위해 반신반의하며 잡는 대신, 좀더 뛸 듯이 기쁜 마음으로 달려갈 수 있는 포지션과 만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정했습니다.
4) 어떤 곳에 가서 무얼 하고 싶은지 깊이 고민하기
약 12개월란의 경험을 거치며 제가 배운 것이 있어요. 스펙이나 자격증도 중요하지만,경력직 이직은 점수싸움 보단 취향싸움이라는 거에요. 저에게 잘 어울리고 맞는 '옷'을 찾아 아직도 저는 매장을 떠돌고 있는거죠...ㅠ 이직을 결심하고 이곳저곳 컨택하다보면, 러브콜을 받기도 하고 거절도 많이 받게 되는데요. 애초부터 거절은 크게 신경쓰지 않기로 했지만, 막상 최종까지 갔다가 탈락하면 너무 안타깝고 실망도 크더라고요. 무엇보다 '내가 가고싶은 곳'과 '나를 오라 하는 곳'의 교집합을 아직까지 잘 알아보지 못해서 이걸 알아가는 과정이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고무적인 것은 여러 헤드헌터님들과 인사담당자님들과 얘기해보며 저의 강점과 아쉬운 점을 알 수 있었고 제가 (인간적으로가 아니라) 사회에서 얼마나 쓸모 있을지에 대한 가치 판단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현재 비영리업계에 있다보니 영리로 점프하는 건 쉬운 과정은 아니지만, 기업의 CSR 담당자라든가 관련부서 경력을 살린 홍보 쪽에서는 먼저 제의가 오기도 하더라구요.
5) 결론 - 언젠가, 어딘가에, 내 자리는 있다.
아쉽게도 오늘 제가 발행하고자 하는 글은, '그래서 저는 결국 000에 성공적으로 이직했어요!'의 해피엔딩은 아니네요. 우선은 부서를 이동하게 되었고, 그외에 개인적인 일들이 생겨 이직을 잠시 보류하기로 했거든요. 하지만 치열하게 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이런저런 자리에 다니며 상상해보고 부딪혀본 경험은 책갈피처럼 한 켠에 고이 간직해두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있던 자리로 돌아왔지만, 그 자리가 저에게는 마치 새로운 자리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매일매일 출근하는 길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걸 되새기면서, 회사와 저는 언제든 (기회만 맞다면) 헤어질 수 있는 '썸'타는 사이가 되었달까요. 일의 건강성을 회복하게 되었고, 감사하고 만족하면서, 그리고 다른 자리도 충분히 고려하면서 회사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번외: 저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들
#폴인의 이직스터디/살롱 (유료) - (예전에는 슬랙에서 모여 이력서도 같이 나누고 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현재는 세미나로 바뀌었나봐요. 링크 걸어둘게요!)
#외국계 자소서 첨삭 (유료) - 검색엔진에 찾아보시면 대행으로 해주는 데가 많이 있는데, 혼자 끙끙 앓지 마시고 전문가에게 맡겨보세요. 실제로 이직하게 되면 아주 조금의 비용을 들여 인생을 바꾸게 되는 거잖아요.
#책 -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오프라 윈프리의 자서전인데요. 이직을 준비하며 머릿속이 뜨거울 때, 인생선배(?)님의 어루만짐을 받으며 힘냈답니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이 있다면, 나는 결코 보고 느끼는 것에 둔감해져서 문을 닫아거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하루하루가 가능성의 범위를 확장하는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원한다. 모든 단계에서 기쁨을 맛보는, 그러한 시작이 되길 원한다.[Oprah Winfrey.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