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생이라는 주어진 시간을 소진하는 인간들이 단 한번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만나게 되는 사건이다. 죽음을 만나는 즉시 우리의 생은 끝이 나기 때문에 우리는 탄생과 죽음의 사이에 주어진 생이라는 시간을 버텨나가며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순간들로 채워나가고자 애쓴다. 이것이 대부분의 우리가 생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 죽음은 생보다 간절하다. 그들은 주어진 생의 시간을 견디며 죽음의 방문을 기다리지 못하고 생을 박차고 나가 죽음에게 손을 내민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나의 눈에 띄던 두 선배 H와 I가 있었다. 내가 그 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우연히 듣게 된 같은 전공수업에서였다. 그 수업은 당시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젊은 교수님이 진행하셨는데 그가 인기가 높았던 이유는 젊은 나이가 의심스러울 만큼의 탁월한 실력과 문학에 대한 빼어난 해설 때문이었다. 나 역시 그 교수님의 엄청난 실력에 감탄하며 그를 깊이 존경했다. 그 누구도 그의 실력을 넘보거나 지식으로 그에게 도전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수님이 시에 대한 분석을 하시며 시인의 의도와 자신의 감상을 말씀하시고 있는데 갑자기 내 뒤에서 ‘저는 교수님과 의견이 다릅니다’라는 남학생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어떻게 감히 교수님에게 이견이 있을 수 있지 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가 내놓을 이견이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일까 몹시 궁금해하며 뒤를 돌아다보았다. 평범한 외모의 한 남학생이 손을 들고 있었다. 만면에 자신감이 넘치는 그렇지만 약간의 장난기가 섞인 기묘한 미소를 띠고 있던 그는 바로 H선배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는 나보다 겨우 한 살밖에 많지 않았다. 하지만 교수님과 마찬가지로 H선배는 모든 면에서 나를 압도하는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나는 H선배가 교수님과 대등하게 토론을 하는 모습을 본 후 그의 지성과 배짱에 반해버렸다. 얼마나 H선배의 강렬한 첫인상에 마음을 빼앗겼던지 그의 평범한 얼굴이 잘생겨 보이는 지경에 이를 정도였다. 그렇다고 H선배를 남자로 좋아하거나 반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어떻게든 H선배와 무척이나 친해지고 싶었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내가 갖고 싶으나 갖지 못한 지식이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무턱대고 돌진하여 친분을 맺고 그들로부터 배움이나 교훈을 직접 얻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그러니 당시 20대 초반의 그야말로 혈기만 왕성하던 나는 내가 가진 모든 똘기와 낯 두꺼움으로 무장한 채 H선배의 곁에 맴돌며 그와 친해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곁에는 언제나 단짝인 I선배가 있었기 때문에 남자에게 미친 듯이 구애하는 정신 나간 여자라는 민망하고 억울한 모양새는 피할 수가 있었다.
“오빠, 점심 먹었어요? 같이 먹을래요?”
“응, 난 이미 먹어서 배부르다. 너 많이 먹어.”
“그럼 커피 마실래요?”
“나 커피 안 마셔. 너 많이 마시렴.”
이런 식으로 H선배는 나를 피하고 피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그들의 곁에 맴돌며 티 나게 나를 불편해하는 그들의 점심식탁에 굳이 동석을 하기도 했고, 수업시간에는 어떻게든 그들의 주위에 자리를 잡고자 노력했다. 도서관에서 마주칠까 뻔질나게 도서관을 들락거렸고, 수업이 끝나면 강의실 주변이나 교문 근처를 배회하며 그들과의 우연한 만남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어슬렁거리며 눈치를 보던 나에게 H선배가 다가와 같이 맥주를 마시러 가자고 제안했다. 술은 못 마시지만 그 말을 했다간 다시없을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 잽싸게 그러겠다고 했고 두 선배와 동행하여 학교 앞 술집에 가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두 번 다시 어슬렁거릴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그들과 한 무리가 될 수 있었다.
매일이 새롭던 그날들이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역시 두 선배의 수준은 남달랐고 나는 그들이 하는 대화를 거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감탄하기 바빴다. 영문학 번역의 권위자가 누구라는 둥, 누구 번역은 어떤 오점을 가지고 있다는 둥, 어떤 브랜드의 스피커가 어떻게 좋다는 등 두 선배가 나누는 대화의 소재는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광범위했으며 심오했다. 나름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나의 삶이 얼마나 착각으로 빚어진 허구였는지를 그때만큼 적나라하게 피부 속까지 깨달았던 적이 있었을까. 두 선배 앞에서 특히 H선배 앞의 나는 한 살 어린 후배가 아니라 50살쯤 어린 딸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니 나는 항상 두 선배와 만나면 무엇이든 물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고, 어쩌다 그들이 묻는 질문에는 엉뚱한 대답을 내놓기만 했다. 그럼 어떠랴. 망신을 당해도 놀림을 당해도 나는 두 선배와 함께 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그들을 향한 특히 H선배를 향한 벼락같은 존경심에서 그들과 함께하게 되었지만 한 학기가 흐르면서 나는 그들의 츤데레 같은 면모와 촌철살인의 유머감각까지 그들이 보여준 모든 개성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들 자체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두 선배들과 한 학기 동안 심지어 방학 때 듣는 계절 학기까지 거의 삼총사처럼 붙어 다니던 나는 2주 정도 선배들을 보지 못한 채 새 학기를 맞이했다. 나와 선배들은 전공수업 대부분을 같은 것으로 신청했기 때문에 첫날의 수업 역시 그들과 함께 듣게 되어있었다. 학교에 도착하면서 강의실에서 날 반기고 놀릴 선배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연락도 안 하고 자기들끼리 강의실에 간 선배들을 혼내 주리라 생각하며 힘차게 강의실에 뛰어들었는데 분위기가 너무나 이상했다. 앞에 서계신 예의 그 유명한 교수님의 가라앉은 얼굴과 침통한 표정의 학생들, 거기에 내가 들어가자 얼굴이 와락 일그러지는 I선배까지.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I선배의 옆자리에 앉으며 속삭이듯 물었다.
“오빠, 무슨 일이야? 분위기가 왜 이래?”
“너 중앙 현관으로 안 왔니?”
“응, 나 좀 늦어서 옆 계단으로 올라왔어. 무슨 일 있어?”
I선배가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교수님께서 말씀을 시작하셨다. 자신이 너무 사랑하던 제자이자 친구였던 녀석이 황망하게 떠나버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순간 내 머리에 뜨거운 물이 퍼지는 기분이 들고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이것은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려고 할 때마다 내 몸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나는 I선배를 쳐다봤고 선배는 내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짐작이 맞다는 듯이. 교수님은 친구에게 바치는 시라며 에밀리 디킨슨의 시 한 편을 낭독하기 시작하셨지만 나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머리가 빙빙 돌면서 귀에서는 소리가 나는 것도 같았다. 강의실의 무거운 공기 때문에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나는 그 상태로 잠시 앉아 있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왔다. 중앙 현관에 가서 내 눈으로 직접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만 같았다.
강의실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괜찮던 내 다리가 계단을 내려가려고 하자 심하게 후들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난간을 붙잡고 숨을 간신히 내쉬어 가며 마침내 다다른 중앙 현관. 더 발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한복판에 걸린 H선배의 미소 가득한 사진과 함께 분향소가 눈에 들어왔다. 한쪽에서는 검은 양복을 입고 가슴에 하얀 리본을 단 사람들이 드나드는 학생들에게 하얀 리본을 나눠주고 있었다.
정말 H선배였다. 두 주 전만 해도 나와 웃으며 밥을 먹던 그 사람. 나한테 앞뒷면이 똑같다고 놀려대던 그 사람. 내가 고민이 있을 때마다 어떻게 알고 찾아와 긴 말없이 ‘힘내 짜샤’라며 어깨를 툭 쳐주고 지나가던 사람. 나보다 겨우 한 살 많은 주제에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너도 커보면 안다’며 나에게 훈수를 둬서 나를 어이없게 만들던 사람. 교수님과 토론으로도 안 지던 사람. 모르는 것이 없어 보였던 사람. 세상 그 무엇도 자신의 발밑에 꿀릴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사람. 나의 H선배는 교수님의 말마따나 그렇게나 조급하고 너무나도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버렸다. 나는 그제 서야 선배의 사진 앞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믿을 수가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선배의 사진을 치기 시작했다. 왜 죽었냐고. 오빠가 왜 죽냐고. 언제 나를 뒤따라왔는지 I선배가 나를 붙잡았다. I선배의 얼굴도 눈물로 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부둥켜안고 한참을 엉엉 울었다. H선배도 우리를 보고 함께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삼총사였으니까.
누군가는 자신이 죽기로 마음먹은 이유를 본인 입으로 밝히기도 하지만 당시의 우리는 H선배가 왜 죽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느 호수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는데 당시 선배가 술을 마셨다는 정도만 전해 들었다. 나는 이유를 모르고 H선배를 떠나보냈으니 다른 곳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죽은 이유를 모르니 그의 선택에 공감을 해줄 수도 없었다. 그런 내가 슬픔과 분노를 표출할 곳은 오롯이 H선배뿐이었다. 내 시시껄렁한 이야기, 내 코딱지만 한 고민에 대해서는 늘 관심을 갖고 들어줬으면서 정작 자신이 어떤 소용돌이에 휘말려 힘들었는지는 한 번도 이야기해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 나아가 나는 선배와의 관계에서 늘 미성숙하고 이기적이기만 했던 나를 자책했다. 당시의 나는 완벽하고 거대해 보이기만 했던 H선배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을 못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나에게는 애석하게도 H선배와의 둘만의 추억의 물품이나 사진 한 장이 남아있지 않았다. H선배가 그렇게 빨리 나의 곁을 떠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거니와 우리는 거의 항상 셋이 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내 곁에는 여전히 I선배가 있었기에 둘만 남은 나와 I선배는 남은 반년 동안 우리만의 방식으로 H선배를 추모하고 애도하며 그를 추억하려고 애썼다. 셋이 다니던 식당이나 술집을 찾아가고 셋이 먹던 음식을 찾아먹고, 셋이 듣던 음악을 들으며 H선배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우리는 슬플 땐 울었고, 우리를 두고 먼저 간 H선배를 욕하기도 했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 이것도 못 먹고 가서 아쉬울 거라고 H선배를 놀리기도 했다. 나는 내 생애에 처음 찾아온 상실과 그로 인한 고통과 슬픔의 기간을 그렇게 I선배와 함께 무사히 넘겼다. I선배마저 없었다면 나의 고통과 슬픔이 얼마나 갔을지 그 고통과 슬픔을 어떻게 삼켰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H선배가 죽고 나서 거의 두 달 동안 나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불을 끄고 눕기만 하면 침대발치에 H선배가 서있는 것 같아 밤새 불을 끌 수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H선배가 나왔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자 H선배가 울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괜찮아, 짜샤’라며 어깨를 툭 치고 사라졌다. 나는 가지 말라고 그를 계속 불러댔지만 그는 한번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를 부르다 눈을 뜬 나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나는 눈을 뜨고도 한참을 울었다. 그가 그리워서 울었고, 짧디 짧았던 그의 눈부셨던 청춘이 불쌍해서 울었고, 잠 못 자고 매일 울기만 하는 바보 같은 후배를 챙기려고 꿈속까지 찾아와 준 그의 따뜻한 마음이 뼛속까지 느껴져서 엉엉 울었다. 신기한 것은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침대발치에 아른거리는 듯했던 선배의 모습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음속에 뭉쳐져 있던 무언가가 가슴을 짓눌렀던 답답함도 사라졌다.
사람이 죽기 전에는 어떤 예감이라는 것이 있는 걸까? 선배들과 나는 술집에 가도 과음을 한다거나 노래방을 가는 법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가 죽기 전 계절학기가 끝난 날 우리는 종강을 기념하며 간단하게 술을 마시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노래방에 갔었다. H선배는 모든 면에서 할아버지 같은 면모를 과시했었는데 노래 취향 역시 그랬다는 걸 그날 알게 되었다. 그날 그는 우리 앞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라며 ‘별이 진다네’를 불렀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이상 불렀던 것 같다. 나는 무슨 이런 재미없는 노래를 끝없이 부르느냐, 오빠는 진짜 몇 살이냐며 그를 마구 놀려댔었는데, 진지하게 경청도 못해준 그날 그의 그 노래가 세월을 뚫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가장 강력한 추억의 끈이 되어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그날 무슨 생각으로 그 노래를 그렇게나 진지하게 불렀던 걸까? 자신이 하늘의 별이 될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 아니 별이 되고 싶었던 걸까? 그가 없으니 이 질문의 답은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지만, 그가 그날 불러준 그 노래가 있어 나는 그가 그리울 때마다 그를 불러낼 수 있게 되었다.
선배를 잃고 난 후 무수히 많은 세월이 나를 지나쳐갔다. 여전히 그를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아려오지만 지금은 그를 추억하는 일에 눈물이 아닌 미소가 함께 한다. 그의 부재를 기억하는 일은 그가 존재했음을 잊지 않는 일이기에 나는 그에 대한 기억을 내가 살아있는 한 기어이 붙들어두고자 한다. 선배를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어떤 이는 별이 되어서 우리의 곁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