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길게 느껴지는 힘든 4월이다. 올해 맡은 중3학년의 아이들의 남다른 면모에 더해 동료교사의 폐해까지 더해져 나를 무겁게 짓눌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의 몸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생전 처음 알레르기성 결막염이라는 병이 생겨 거의 2주 동안 안과치료를 받는 차에 원인 불명의 두드러기까지 온몸에 돋아나서 피부과치료까지 받고 있으니 이만하면 고생에 한해서는 심신에 완벽한 패키지를 장착한 꼴이다.
이렇게 누더기가 된 심신을 이끌고 한 달 전에 미리 잡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약속장소로 나갔다. 금요일 저녁의 서울모처. 나의 약속은 2017년 고등학교 재직당시 우리 반 반장이었던 제자를 만나 저녁을 먹는 것이었다. 어느덧 27살의 청년이 된 나의 제자. 당시에는 똑똑하고 성실했으며 너무 예의를 갖춰 나를 대해서 조금은 차갑게 느껴졌던 이 친구. 그러나 대입 진학과정에서 서로 흉금을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관계는 이 친구가 대학은 들어간 후 더욱 끈끈해지기 시작했다. 가끔 연락을 하고 드물게 얼굴도 보고, 서로의 생일이나 혹은 스승의 날에 선물도 주고받으며 지내기를 벌써 8년. 이제 이 친구는 기간제 과학교사가 되어 경기도 모처에 있는 중학교에서 중1학년의 담임교사가 되어 있다.
이 친구가 진학했던 학교는 교원대학교였다. 고3 때 이미 이 친구의 성향에서 교사의 자질을 보았기에 서로 의논하여 교원대로 진학을 했지만, 이 친구는 대학을 다니며 교직에 대한 생각이 바뀐 적이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온통 교사들로 가득한 자신의 학교 선배들이 들려주는 학교현장의 힘든 현실 때문이었다. 쏟아지는 학부모 민원, 요즘 아이들의 극단적 이기주의와 부족한 인성교육에서 오는 예절에 대한 결핍된 인식, 거기에 더해 수십 년간 동결되어 있는 데다 삭감까지 더해진 교사의 월급과 연금현실등이 미래의 교사를 꿈꿨던 이 친구를 마구 흔들어댄 것이었다. 나 역시 이 친구에게 선배교사로서 내가 겪은 일들을 이야기해 주며 교사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소명의식을 가져야 하는 직업이라고 말해주었다. 하고 싶어서 해도 힘든 일 투성이라고 말이다. 이 친구는 고민 끝에 졸업을 하면서 공기업에 취직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기간제 자리를 의뢰받았고 마침 생활비도 필요한 데다 학교현실도 궁금해서 뛰어들었는데 막상 해보니 자기에게 맡는 일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임용시험을 준비하며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제지간이자 동료지간이 된 우리는 약속을 하던 한 달 전 이미 무엇을 할지 결정해 두었다. 한 달에 한번 지급되는 소액의 담임비용을 털어서 한우를 먹기로 한 것이다. 한우로 사치를 부리며 함께 학교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로 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힘겹게 한 달을 버티다 마침내 만나게 된 것이다. 이미 네이버로 검색하여 맛집을 정해둔 우리는 발걸음도 가볍게 식당으로 들어섰다. 준비가 생명인 교사 답게 메뉴마저 미리 알아봐 두었으니 주문까지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설렘과 기대가 순식간에 사라진 시간 역시 5분도 걸리지 않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드디어 숯불과 고기판이 등장하고 고기가 얹혀 있는 쟁반이 나왔다. 엥. 이게 뭐지? 한우 한 마리라는 메뉴를 시켰는데 나온 고기는 달랑 10점 정도로 보였다. 그것도 1/3은 차돌박이였다. 우리는 고기를 불 판에 올리면서도 더 나오지 않겠냐며 애써 침착해 보려고했으나 모든 고기를 다 올리고 고기가 익어가자 바로 비정한 현실을 깨닫고 말았다. 이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한 줌 같은 고기를 입에 넣으며 화가 나기보다는 어이없어서, 한우를 잘 사 먹지 않아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의 순박함에 우리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빨리 먹고 2차를 가자고 서로를 위로했다. 다 먹는 데에 10분이나 걸렸을까? 우리는 그렇게 무려 7만 원어치의 한우 한 마리를 개눈 감추듯 해치우고 자리를 떠났다.
배고픈 교사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가? 교사는 다른 건 다 참아도 당 떨어지고 배고픈 건 못 참는다. 애들과 온종일 기싸움을 벌여야 하는 것이 직업인 우리들은 상시 입에 먹을 걸 달고 살며 위장이 비지 않게 관리한다. 우리의 꽉 찬 위장만이 우리의 심신을 안정시켜 순간순간 울컥하며 튀어 오르는 각종 감정들을 붙잡아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우 한 마리(가게에서 주장하는!)를 애피타이저로 해치운 우리는 더욱 몰려오는 허기를 없애러 결국은 근처의 돼지 고깃집으로 향했다. 무한리필 되는 구이용 야채와 딱 맞게 익은 김치에 더해 신선한 생고기를 배 터지게 즐기며 우리가 지불한 액수는 52,000원! 계산을 하며 액수를 보던 우리는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마무리로 커피를 마시며 나는 공중에 분해된 우리의 7만 원 이야기를 했다. 한 달 내내 아이들과 씨름하며 받은 담임비용이 너무 허무하게 날아가 버렸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제자가 그러더라.
"샘, 7만 원을 썼지만 그 대신 7만 원짜리 이야기가 생긴 거네요. 앞으로 두고두고 할 이야깃거리가 생겼어요."
맞네. 그런 거였다. 앞으로 우리 둘에게는 두고두고 이야기할 7만 원어치의 추억이 생긴 거였다. 내 앞에 앉아 씩 웃으며 차분하게 말하는 제자의 모습을 보며 잠시 뭉클했다. 어쩌면 감동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지만 이제 나의 제자는 나 못지 않은 어른이 되어있다는 깨달음이 한순간에 파고들었기 때문에, 어쩌면 그는 나보다 더 생각 깊은 좋은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음 번 만남에는 또 다른 추억이 더해지겠지만, 새로운 추억이 쌓이기 전에 우리는 이야기하겠지. 오늘의 이 추억, 7만 원어치의 추억을 말이다. 발상의 전환을 하게 해 준 고마운 제자, 나의 동료, 잘 지내다 봅시다. 반가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