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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롱 Oct 19. 2020

일을 못하면 언행이라도 똑바로 하라고 말했다.

칭찬해줄 게 없는데 어떻게 칭찬하겠어요? (2탄)

그런데 저 한 마디는 해야겠어요.

나는 참다 참다 결국 운을 떼었다.

이 말은 꼭 해야겠어요. 이런 식으로 선 넘는 건 아닌 거니까 잘못된 거라고 말해야겠어요.

팀장님은 "아직 어리고 술 취해서 그런 건데 뭘..."이라며 분위기를 애써 붙잡으려 하셨지만, 나는 그 말에 더 화가 나서 덧붙였다.

Ashley 선임이 어린가요? 고작 저보다 한 살 어리고 여기 있는 Bethany 선임과 동갑인걸요. 술 취하면 이해 받을 수 있는 행동인가요? 그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이해 받을 수 있는 행동이죠? 전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않고 넘어가는 우리의 문화가 우리 모두를 하향 평준화(downgrade)한다고 생각해요.

분위기는 숙연해졌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누구도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않았고, 누구도 Ashley가 잘못했다거나 Ashley를 공개적으로 지적한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자리는 마무리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생각했다.

나는 왜 Ashley의 행동이 불편했을까, 내가 볼 땐 모두가 불편해하던 상황이었는데 왜 아무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았을까, 왜 선배들은, 직책자들은 잘못된 것을 지적하지 않는 걸까? 내가 문화적으로 더 민감한(sensitive)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과민 반응한 것일까?

조직과 문화에 기반한 생각은 점점 깊이가 더해져 개인적인 고민으로까지 이어졌다. 

내가 역시 유별난 것일까? 다들 바보라서 입 다물고 있던 건 아닐 텐데, 왜 모두가 묵인하고 넘어가는 것을 나는 콕 찝어 문제 삼아야 했을까? 불편해서 불편하다고, 문제를 문제라고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내가 잘못한 걸까? 모두에게 별 문제 안 되는 것을 왜 나는 문제 삼아 트러블 메이커가 되는 것일까? 왜 어딜 가도 난 문제의 중심에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은 내 콤플렉스에 기인한다. 나는 늘 '보다 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둥글둥글한 성격이 무조건 좋은 성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워낙 어릴 적부터 눈에 띈다, 유별나다 소리를 들어서 자주 부모님에게 꾸중을 들었다. 때문에 '좋은 게 좋은 것,' '무난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논리로 유연하게 넘어갈 수 있는 성격이 되어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압박 받는 듯 하다. 곧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여전히 부모님은 너무 곧아서 바른 말만 하는 것이 걱정이라며, 적당히 참고 타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넷플릭스의 '규칙 없음'이라는 책을 읽고 인재 밀도에 대해 회사에 이야기한 적 있다.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둘째 치더라도 적어도 인재가 되려면 맥락을 파악해 사리 분별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내가 본 Ashley는 인재가 되기 위한 최소 조건도 갖추지 못 했고, Ashley 같은 동료라면 함께 일할 때 신뢰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언니, 보구밍~ 보구밍~ 너무 보고 시퍼쪄요~
우리 언니가 동년배 중에 최고 예쁘다, 완전 인정? 인정!"


Ashley는 와인을 핑계 삼아 팀장님과 파트장님을 '언니'라 불렀고, 도저히 입에 올리기 부끄러운 애교들로 이 자리가 회사 회식 자리인지, 친구들과의 술자리인지 헷갈리게 했다. 20대 신입 사원이 40대 팀장님과, 내년이면 불혹(不惑)인 파트장님께 언니라고 부르는 것까지는 백 번 양보해서 이해한다 해도 한 시간 넘게 '예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나를 참을 수 없이 불편하게 했다. 회사에서 예쁘다는 칭찬은 한두 번일 때 호의로 받아들일 수 있다.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칭찬은 외모 외에도 엄청나게 많고, 요즘은 회사에서 예쁘다는 말도 성희롱이 될 수 있다고 교육하는 세상이다. 심지어 우리 회사 남자 수석님들은 내가 머리 염색을 하고 와도 아는 척도 안 하시는데, 그 이유를 물으면 "혹시 그것도 기분 나빠할까 봐. 성희롱일 수 있으니."라고 말씀하신다. 이 정도는 너무 과하다 싶으면서도 Ashley처럼 끊임 없이 '외모'를 주제로, 아무리 칭찬이라 한들 마치 평가하듯 이야기하는 것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미스 코리아 선발 대회에 나간 것도 아닌데 왜 파트장님은 외모 평가를 받아야 하며, Ashley는 무슨 권리로 심사 위원이 되는 건지 불쾌했다. 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여성들은 '예쁘다'는 칭찬을 듣지 못 함으로써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휴, 귀엽다, 귀여워! 진짜 졸귀~"


이 이상으로 나빠질 수 없을 것 같은 상황도 Ashley가 40대 유부남 행동 하나하나를 '귀엽다'고 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거북해졌다. 만약 반대로 술자리에서 40대 유부남이 20대 신입 사원 행동을 귀엽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술자리에서 남성이 여성 직장 동료, 특히 나이가 10살 넘게 어린 여성 후배를 귀엽다고 수십 차례 말하는 것은 조직적으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과연 Ashley의 행동은 윤리적으로 허용되는 수준이었을까? 무례했던 것은 아닌가?


나의 불편함은 이런 생각들이 바탕이 되었다. 더군다나 Ashley의 술주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입사한 이래로 이런 언행이 여러 번 반복되는 모습을 보며, 이것은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습관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 팀이 좋고 편해서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보려 해도, 다른 팀과의 회식 자리에서, 또 처음 보는 팀장님 앞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Ashley는 성숙하지 못한 사람, 무례한 사람으로 보인다. 이렇게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이 결여된 사람을 어떻게 믿고 동료라 부를 수 있겠는가.


어떻게 너네 회사 사람들은 Ashley에 대해 한 마디도 안 할 수가 있어?
그게 더 큰 문제 아니야?

내가 이런 일이 있었다고 주변 친구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모두의 반응은 동일했다. 어떻게 그런 "또라이"가 대기업에 입사했을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그저 웃고 넘길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친구들과 생각을 나누고 충분한 고민을 거친 뒤, 나는 나의 불편한 감정을 보다 적극적이고 명확하게 표현하기로 결정했다. 어쩌면 문제 제기하는 내가 예민하고 유별난 걸 수도 있지만, 유별나다는 것이 'weird'가 아니라 'special'한 것일 수도 있지 않는가. 나는 이번에도 역시 부모님의 바람과는 반대로 유한 성격의 소유자는 못 될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나만의 강렬한 색깔을 가진 사람이며, 이와 같은 경험들을 통해 다른 색깔들과 잘 섞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갈 뿐이다. 팀장님께 면담을 요청했고, 그 날 밤 와인 바에서 내 불편함을 표현함으로써 분위기를 망친 것이 잘못이라면 따끔히 혼날 것이고, Ashley가 잘못한 것이 맞다면 팀장님께 마땅한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팀장님과 따로 시간을 마련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늘 그래왔듯 모두가 이런 불편함을 느끼고 알면서도 묵인할 것 같았다.


나는 인성 좋고 가치관이 올바른 인재들로 가득한 팀, 회사에서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 고로 오늘도 나는 유별나지만 특별한 사람이기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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