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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영 Aug 23. 2019

시어머니의 김치찌개

"네가 김치찌개 맛있다고 해서 했다. 많이 먹어라잉~"


시어머니의 김치찌개가 제일 맛있다고 말한 게 잘못이었던 모양이다. 핀란드에서는 양가 부모님께서 오실 때마다 한가득 가져다주시는 김치로 연명을 하고 있다. 그게 떨어지면 마트에서 비실비실한 배추를 사다가 겉절이를 하거나 오이를 사다가 깍두기를 담가 먹는다. 김치의 맛을 좌우하는 주재료인 유럽 배추가 실하지 않은 것도 있고, 웬만한 요리는 뚝딱 만들어내도 김치를 만드는 데는 타고난 손맛과 깊이 있는 내공이 필요하기에 5년 차 주부의 실력으로는 제대로 된 김치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핀란드에서는 부모님이 가져다주신 김치로 찌개를 만들거나 그를 활용한 다른 요리를 만드는 것이 매우 아까운 일이다. 잘못 익혀서 그냥 먹기에는 쓴 김치가 아니라면 말이다.


오랜만에 한국에 가니 정겨운 밑반찬들이 한 상 가득 늘어져 있다. 시어머니께 역시 어머니 김치가 가장 맛있다며 핀란드에서는 김치가 아까워 찌개를 못 만들어 먹는다고 이야기했더니, 며칠 친정에 머무르고 시댁으로 가니 어머니께서는 김치찌개를 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참으로 섭섭하기 그지없는 김치찌개였다. 어머니의 아들이자 우리 집의 사위인 내 남편은 처가에서 장어구이를 배부르게 먹고 온 뒤라서 그렇기도 했다. 그리고 냉동실에 얼려놓은 떡갈비를 아이 반찬으로 주라며 딱 한 장만 구워주신 것도 그랬다. 두 살짜리 큰아이와 뱃속에 이제 막 자리 잡은 아기와 함께 장시간 비행을 하고 오느라 피곤이 풀리지 않았는데, "아이 고기 많이 먹여라, 아이 고기반찬 좀 더 줘라"라고 하시는 말씀이 어찌나 골을 때리던지. 결혼 초반에는 시댁에서 설거지하는 내 옆을 얼쩡거리던 남편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TV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것을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시어머니 김치가 맛있다는 소리가 빈말을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가족들과 먹는 밥상에서 정말 김치찌개를 먹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오랜만에 봤더라도 며느리는 챙겨 먹이거나 대접해야 할 존재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나와 아이만 한국을 방문했을 때 시어머니의 생신을 맞이했다. 평소 자주 뵙지 못하니 이럴 때라도 무언가를 해드리자 싶어 미역국과 소갈비를 해서는 시댁을 찾았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음식을 해서 간다고 하니 친구분들께 오늘 며느리가 생일 음식을 해온다며 자랑을 하신 모양이었다. 요즘 그런 며느리 없다고 친구들이 부러워하더라며 내게 고마움을 표시하셨다. 음식을 해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식구들과 맛있게 먹고 있는 그때 갑자기 손아래 시누이가 예비 신랑과 함께 집으로 오는 길이라며 연락이 왔다. 시어머니께서는 식사를 다 마치기도 전에 일어나셔서는 갑자기 새 그릇들을 마구 내놓으셨다. 식구들끼리 편하게 먹을 때 쓰는 짝 안 맞는 반찬 그릇들은 모두 물러가고 요즘 혼수로도 하지 않을 법한 도자기 접시들이 나타났다. 예비 사위가 온다니 상차림에 신경이 쓰이신 모양이다. 사위는 흉 보이지 않게 잘 해 먹여야 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이제 식구라서 편하신가 보다 하고 넘길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결혼하고 나면 내가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이 마치 순리인 양 정해져 있는 게 있다. 결혼 후 나는 시부모님 아들을 내조하는 아내이자 손주들을 잘 키워야하는 엄마라는 역할과 도리 외에 다른 기대를 받거나 다른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여자여서 느끼는 불합리함이나 남자여서 당연시되는 부담감 모두 마찬가지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커오면서 주입되었던 '여자라서', '남자니까'라는 역할에 더해져 결혼 후에는 '며느리라서', '가장이기에', '엄마니까', '아빠라서' 등 여러 문화와 전통이라는 것들이 재단해 놓은 것에 자신을 구겨 맞추게 된다. 그 길을 잘 따라가면 엽렵한 며느리가 되고 어른들이 보기 원하는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지만, 반면에 내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많은 투쟁 속에서 불화를 감수하고 쟁취해야 한다. 그런 문제들이 대부분 나는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나만 순종하면 모두가 편해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아니다. 서로가 받은 마음의 상처와 섭섭함이 그 뒤를 따르고 착한 며느리가 되고 싶은 내 마음과 동시에 그저 착하지만은 않은 나의 본성이 뒤엉켜 마음속이 더 어지러워진다. 애정과 자존심, 권위와 도리, 전통과 현대의 가치관, 효, 독립, 돈 등이 얽히다 보면 서로 누구 하나의 의견이 틀린 것이 없고 모두 존중받아야 할 가치이기도 하기 때문에 나만 잘났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거창한 말은 집어치우고, 진짜 문제는 이것이다. 시부모님은 내 부모와 같이 않다는 것이다. 어쩐지 양가 부모님이 같은 말씀을 하셔도 내 부모에게는 툴툴대며 대들기 쉽고, 부모님도 내게 "나쁜 지지배!"라는 쏘아붙임으로 웬만한 문제를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시부모님에게는 거절이나 거부의 의사 표현이 편하게 되지 않으니 앞에서는 그러겠다고 대답해 놓고서는 뒤돌아서서 마음속으로 꽁한 감정이 남아있기 일쑤다. 그러고는 혼자서 그 '어머니는 내게 무슨 의미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를 되뇌며 예전에 하셨던 말씀도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가 남편에게 화풀이하거나 괜히 애먼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는 일이 다반사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내가 결혼 생활에서 주어진 엄마와 며느리, 그리고 아내의 역할에 회의감이 들거나 가끔 터져 나오는 고부간의 온도 차에 대해 서운함을 토로해도, 지나고 보면 내가 시어른들께 느끼는 서운함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이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외국에 사는 아들 내외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건강 문제나 집안일, 경제적인 사정들을 감추는 어른들의 마음 말이다. 그런 것들을 뒤늦게 알고 내가 소홀했다는 것을 알면 나의 서운함은 알량한 투정으로 전락해 버리고 후회가 몰려온다. 내 철없음에 대한 깨달음은 바로 결혼으로 엮인 시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얻어진 것이다. 감정이 요동치는 대로 아무 말이나 내뱉었던 내 부모와의 관계에서는 알면서도 깊이 헤아리기 어려웠는데 말이다. 어른을 대하고 내 의사를 표시하는 것, 묵은 감정을 쌓아두지 않고 일찍 털어내는 것, 순간의 내 감정보다 나를 감내하고 있을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는 것들이 그렇다. 바로 어머니께서 나를 대하는 그 모습처럼 말이다.


지난 여름, 시댁 식구들과 여행을 함께 했다. 시부모님과 남편의 두 형제가 핀란드에서 모였다. 손위 시누이나 손아래 시누이, 우리 가족 모두 자기 새끼들을 챙기느라 바빴다. 아버님, 어머님은 작년과 달리 체력적으로 힘들어하셨고 더 노인이 되셨다. 다 알면서도 우리가 어쩔 도리가 없으니 그저 아무 탈 없이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그저 자식들과 손주들을 곁에 두고 한 데서 먹고 자고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셨다. 어머니는 이번에 오시면서도 외국에 사는 우리들을 먹이기 위해 직접 농사지어 키운 작물들로 만든 반찬들을 한가득 가지고 오셨다. 김치를 해주신다고 배추까지 절여 오셨다. 이번에는 배추 농사가 잘 안돼 잎이 다 떴다며 아쉬워하셨지만 그래도 무농약으로 키운 것이니 속이 빈 유럽 배추보다는 나을 것 같아 가지고 오셨단다. 한국에서 핀란드까지 9시간 비행을 하고 오시는 동안 반찬이 새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고 오셨으면서 우리 집에 들어오시자마자 쉴 새도 없이 김치를 버무리셨다.


어머니께서 버무린 김치에는 '워매, 내 강아지', '워매, 내 새끼'하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함께 버무려져 그 정겨움이 더해졌다. 자식들 모두 장성해 가정을 꾸리고 남부럽지 않게 사회생활을 하는데도 그 '내 새끼'라는 말에는 보기만 해도 짠한 자식들을 평생 보듬고 먹이고픈 어미 새의 마음이 담겨 있다. 시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내 엄마를 대할 때와는 다른 연민의 감정이 느껴진다. 내 엄마에게는 자신의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날개가 꺾인 여자에 대해 느끼는 연민이라면, 시어머니에게는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우고자 본인 몸은 사리지 않고 허리가 휘도록 뒷바라지한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랄까. 그리고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남편의 고집스럽고 무뚝뚝한 성격이 시아버지를 보며 이해가 됐고, 또 그런 아버님과 보조를 맞추는 어머님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보이며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 순간 갑자기 어머니를 안아드리고 싶어 슬쩍 팔을 올렸다. 어머니는 내 손을 두드리시며 "네가 좋은 직장 그만두고 외국에서 고생하는 거 다 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저 그것으로 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이번에 핀란드에 오실 때도 김치 양념을 만들어 가져오셨다. 냉동실에 얼려 놓고 배추든 무든 오이든 김칫거리가 생길 때마다 녹여서 버무려 먹으라고 하셨다. 보기 좋게 붉은 빛이 나는 어머니의 김치 양념은 혀 끝에서 오래도록 감칠맛이 맴돌았다. 어머니의 양념이 떨어질 때면 내가 어쭙잖게 액젓도 넣고 과일도 갈아 넣어가면서 어머니의 김치 양념 맛을 더듬어 따라 해 보지만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그런 맛이다. 김장철 어머니와 마주 앉아 함께 김치 양념을 버무리는 날이 언제 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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