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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영 Sep 06. 2019

마음을 녹이는 연어 수프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 바이러스에 감염돼 한동안 고생을 했다. 출산 직후 여성들이 흔히 겪는 질환이라고는 하는데 영 불쾌하고 성가시기 그지없었다. 이미 병원에 한 번 다녀와 항생제 처방을 받고 일주일 동안 약을 먹었는데도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했다. 또 병원에 전화를 걸어 예약 시간을 잡고 의사를 만나 검사를 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반복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몸보다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그동안 핀란드에 살면서 병원에만 가면 작지만 마음을 찌르는 일들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사설 병원에 가서 친절한 10분의 진료 서비스를 받을까 했지만 뻔한 처방전 한 장을 받는데 10만 원이 넘는 돈을 쓰기가 아까워 이번에도 보건소행을 택했다. 핀란드에 4년을 살면서 병원에 갈 때마다 아직도 이 나라의 의료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긴장감이 떠나지를 않는다. 공공 의료기관이든 사설 병원이든 사전 예약을 해야 하고 전문 용어를 영어로 대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감이 크다. 어쨌든 특별히 급한 일이 아니면 공공의료기관을 이용하는데, 내가 다니는 동네 보건소의 상담원은 예약 전화부터 늘 나를 곤란하게 한다.


이번에도 상담원은 분명 영어를 할 줄 알면서도 내게 핀란드어를 사용하기를 강요했다. 이런 일을 처음 겪는 것도 아니다. 목소리와 말투를 들어보니 이전에도 나와 연결된 상담원인 듯했다. 내가 핀란드어를 조금 알아듣기는 하지만 말하는 것은 자신이 없다고 하니,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시도해 보라"며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핀란드어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핀란드어 실력은 사회보장번호를 대는 것을 끝으로 바닥을 보였다. 불편한 증상을 설명해 보라고 하는데 6개월 핀란드어 수업을 들은 내 실력으로는 도전 불가한 과제였다. 내가 몸이 불편해서 병원을 찾는 마당에 이런 설움까지 당해야 하나 싶어 에라 모르겠다 영어로 내 하고 싶은 말만 해대니 상담원은 한숨을 푹 쉬고는 비어있는 시간이 딱 하나 있으니 그때 오라는 말을 남기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더 가관인 것은 병원을 찾은 뒤였다. 의사는 전혀 영어로 대화할 뜻이 없는 의지의 핀란드인이었다. 동네 마트만 가도 점원이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핀란드에서 대학까지 나와 의사 면허를 가진 전문직이 영어를 못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의사가 나를 굉장히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분명 나의 말을 다 알아들으면서도 핀란드어를 고집하며 '내가 영어를 안 하겠다는데 네가 어쩔 도리냐'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앞에 있는 사람과 의사소통 노력조차 할 의지가 없는 차가운 눈빛이었다. 어쩐지 나를 조롱하는 듯한 옅은 미소까지 띠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니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이대로 나가버리면 다시 예약을 잡으 똑같은 일을 겪을 생각을 하니 기분 나빠도 이 자리에서 해치워버리 게 차라리 나을 성싶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의사에게 흔들어 보였다. 번역기 애플리케이션을 켜놓고 대화 모드로 해놓으니 나의 말이 즉시 핀란드어로 번역이 됐다. 의사는 그것을 보더니 꽤 놀란 듯 했다. 번역기 성능이 좋아서 놀란 것인지, 내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기죽은 채로 돌아가지 않은 것에 실망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도 의사의 말을 얼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람을 앞에 두고 서로 기계에다가 이야기를 하는 꼴이라니. 대화는 하고 있었지만, 소통이 되지 않았다.


항생제 처방전이나 받아 가려고 했는데 의사는 내가 감염된 바이러스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아야겠으니 랩에 가서 검사를 하라고 했다. 메트로를 타고 랩을 찾아가는 사이에 갓난아기는 유모차에서 울어대고 아이를 달래기 위해 수유실을 찾아 헤매느라 시간을 놓쳐 검사마저도 허탕을 쳤다. 몸이 불편한 데다가 감정도 상하고 일도 어그러졌는데 배까지 고프니 맥이 빠지고 갑자기 서러웠다. 뭔가 그럴듯한 멋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지 않으면 오늘 하루가 너무나도 억울할 것만 같았다. 포근하게 마음을 달래 줄 따끈한 연어 수프가 생각났다.


핀란드에 처음 왔을 때는 이곳의 음식이 그렇게 입에 안 맞을 수가 없었다. 핀란드에 오자마자 바로 임신을 하고 입덧을 한 터라 현지식에 적응할 새도 없었다.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한식이 전부이고 양식은 시판 소스를 부어서 만드는 파스타만 겨우 흉내내는 수준이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젓갈 냄새가 나는 시어머니 표 전라도 김치가 늘 차 있다. 아마 우리 식구들의 옷에서는 발효된 김치 냄새와 된장 냄새가 진동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전혀 못 느끼지만 남편의 사무실 동료나 아이의 어린이집 선생님은 강렬하게 느끼는 냄새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연어 수프가 가끔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비릿한 연어와 투박한 감자에 묵직하고 느끼한 크림을 넣은 핀란드 전통 음식이다. 만드는 방법은 그 서민적인 모양새만큼 간단하다. 버터 한 큰술을 팬에 넣고 서양 대파라고 불리는 릭을 넣어 달달 볶는다. 릭의 향이 올라오면 감자나 당근과 같은 야채를 넣고 볶다가 물을 넣고 팔팔 끓인다. 여기에 깍둑 썬 연어살과 크림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피시 스톡을 넣으면 더 좋다. 마지막으로는 잘게 썬 딜을 넣어 향을 더하면 끝인데 이게 꼭 들어가야 제대로 된 핀란드식 연어 수프의 맛이 난다. 처음에는 허옇게 크림을 풀어놓은 국물에 연어의 기름기까지 올라와 보기만 해도 느끼하더니 이제 날이 쌀쌀해지면 짭조름하게 간이 된 연어 수프가 생각난다. 감자와 연어살이 듬뿍 들어간 수프 한 그릇에 빵 두세 조각을 곁들여 먹으면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된다.


그렇게 입에 맞지 않던 음식이 이제는 가끔 먹고 싶은 걸 보면 핀란드에 많이 적응했다 싶다가도, 반면에 해가 지날수록 이전에는 몰랐던 문제들에 많이 부딪힌다. 특히 언어의 장벽이 그렇다.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외국인에게 보이는 친절함과 환대는 이주 초반에나 적용된다. 이제 이주 5년 차가 되니 병원이나 공공기관에 가서  영어로 도움을 요청하면 '핀란드에서 아이까지 낳고 살면서 우리말을 못해?'라는 싸늘한 시선을 느낀다. 이곳도 점점 이민자와 난민이 늘어가면서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시선도 조금씩 날카로워지고 있는 듯하다.


"Lohikeitto, kiitos!(로히께이또, 끼이또스!-연어 수프 주세요!)"


'Salmon soup, please'라고 영어로 주문해도 될 텐데 이럴 때는 쓸데없이 핀란드어가 불쑥 튀어나오고는 한다. 점원이 내가 핀란드어를 하는 줄 알고 더 필요한 것은 없냐는 둥 긴 말을 이어가는데 이미 핀란드어로 대화를 시작했으니 어떻게든 대화를 마무리 지어보려고 버부적댔다. 아니나 다를까 점원이 내게 무언가를 물어봤다. 1.50 유로만 추가하면 커피도 마실 수 있는데 그렇게 하겠냐는 것 같았다.


"Sorry?"


대강은 알아들었으나 자신 있게 답을 할 수가 없어 다시 영어가 튀어나왔다. 점원은 환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연어 수프를 말하는 네 발음이 너무 좋아서 핀란드어를 할 수 있는 줄 알았어!" 그러면서 괜히 미안했는지 나의 독특한 안경 디자인을 언급하며 아주 마음에 든다는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주고받았다.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 '로히께이또'라는 단어가 아니었다면 계산대를 사이에 두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영어만으로 살아가기는 어렵지만, 핀란드에서는 영어만으로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핀란드어를 배우는 것은 어떤 사회적 소속감과 현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부차적인 관심일 뿐 살기 위한 필수적이라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마음도 핀란드어 공부를 멀리하는 핑계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언젠가 핀란드에서 만난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입으로 가는 것을 가장 먼저 해보는 게 좋다고 말이다. 바로 음식과 언어 말이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가 점원의 미소가 담긴 연어 수프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나니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린 듯했다. 그렇게 입에 맞지 않던 음식에 익숙해지는 데 4년이 걸렸으니 나도 이곳에서 꽤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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