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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영 Oct 08. 2019

훔쳐먹은 피라미 회의 맛

"여기 어망에 피라미 세 마리 있었는데. 못 보셨어요?"


"아뇨~ 우리 여기 왔을 땐 아무것도 없던데. 누가 훔쳐 먹었나 봐~~"


아빠는 백록담 계곡 둑 위에 쪼그리고 앉아 젊은 남자를 내려다보며 능청을 피웠다. 젊은 남자는 아빠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지만 증거가 없으니 그냥 눈을 흘기다가 빈 어망을 들고 돌아갈 뿐이었다. 엄마는 남의 것에는 왜 손을 대냐며 아빠의 옆구리를 꼬집어 댔다. 애한테 좋은 것 가르친다며 야단을 햇다. 아빠는 특유의 장난기 어린 얼굴로 뭐가 어떻냐며 키득거렸다. 아빠는 나한테 "야, 맛있었지! 어릴 땐 다 이렇게 서리해서 먹었어. 이게 최고 맛있어!"라고 말하며 서리를 하고서도 당당한 발걸음으로 민박집으로 향했다.


아마 10대가 되기도 전에 있었던 일 같다. 그때는 여름이면 꼭 계곡으로 휴가를 갔다. 깨끗한 백록담 계곡에서 수영을 하고 차가운 계곡물에 넣어놓은 수박도 깨 먹고 부르스타에 삼겹살을 구워 먹고 라면도 끓여 먹으며 놀았다. 요즘에는 계곡이나 산에서 취사가 불가능하지만 90년대 초반에는 모두들 그렇게 피서를 즐겼다. 그런 재미로 가는 것이었다. 나는 한참을 물속에서 놀다가 갑자기 으슬으슬 추워 기진맥진한 상태로 둑에 걸터앉았다. 아빠는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이리 와보라며 나를 끌고 계곡 하류의 둑으로 데려갔다. 투명한 비닐 어망에는 피라미 세 마리가 갇혀있었다.


"이거 잡아먹자!"


"남의 건데 왜 먹어! 안 돼!"


"괜찮아, 아무도 없는데 뭘 그래!"


아빠는 둑에서 훌쩍 뛰어내려 어망에 손을 쑥 집어넣더니 아빠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피라미 세 마리를 서리해왔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먹어?"


아무리 작아도 아직 펄쩍펄쩍 뛰며 살아있는 것을 어떻게 먹을지 상상이 안 됐다. 설마 이 작은 걸 회를 떠먹나 싶었다.


"가만있어봐!"


아빠는 피라미 세 마리를 코펠 그릇에 담아 가서는 우리가 쳐놓은 텐트로 돌아갔다. 우리가 남의 어망에 손을 대는 것을 누가 보지는 않았을까 싶어 뒤통수가 따끔거려 얼른 증거를 인멸해 버리고 싶은데 아빠는 그 와중에도 대충 먹어 치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빠는 그 새 숨이 넘어간 피라미를 배만 따서는 내장을 빼고 물에 흔들어 씻었다. 그리고 양념통에서 고추장을 조금 덜어내서 설탕과 식초, 참기름을 넣고 초장을 만들었다. 마늘도 조금 다져 넣고 청양고추도 잘게 썰어 넣었다. 손가락만 한 물고기 세 마리를 해치우기 위한 정성스러운 작업이었다. 아빠는 손질한 피라미 꼬리를 잡고 초장을 듬뿍 찍더니 머리까지 달린 피라미를 통째로 입안에 넣었다. 아빠는 내게도 먹어보라며 벌겋게 초장이 묻은 피라미를 들이밀었는데, 어쩐지 아무리 작아도 머리까지 달려있는 물고기가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보니 아무렇지 않게 입에 넣을 수가 없었다. 벌겋게 초장까지 묻어있으니 꼭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 같기도 했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고 머뭇거리자 아빠는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게 있는 줄 아냐며 내 입에 피라미 회를 밀어 넣었다.


그렇게 맛있는 생선회는 그 이후로 먹어본 적이 없다. 물고기가 워낙 작아서 그런지 머리를 통째로 씹어도 입안에서 크게 거슬리는 게 없었다. 오히려 머리와 뼈를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올라왔다. 매콤하고 새콤한 수제 초장을 듬뿍 찍으니 그 맛이 일품이었다. 엄마는 쪼그려 앉아 연신 맛있다며 입을 오물거리는 우리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휴가와서 괜히 싸움이나 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아빠는 마지막 남은 피라미 한 마리를 내 입에 넣어주고는 아쉬운지 생마늘을 초장에 듬뿍 찍어 먹었다. 그렇게 증거인멸을 한 뒤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멀찍이 가서 다른 일을 하면 좋으련만 아빠는 다시 범죄의 현장으로 가서 어슬렁거렸다. 혹시 다른 어망에 잡힌 피라미가 없나 둘러보는 것 같았다. 안 먹으면 안 먹었지 그 맛을 본 뒤에는 딱 한 마리로 끝내야 하는 게 자못 아쉬웠을 것이다.


어망 주인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아빠를 의심했다. 당연했다. 누가 봐도 피라미 서리를 하러 돌아다니는 사람 같았다. 범인은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는데 아빠는 범죄의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범인의 냄새를 심하게 풍기고 다녔다. 그게 바로 전형적인 아빠의 모습이다. 황당한 일을 저지르면서 민망함은 다른 사람의 몫으로 돌렸다. 그 민망함을 느끼며 골치 아픈 뒤처리를 하는 사람은 대개 엄마였다. 그러면서도 늘 당당해서 큰소리를 떵떵 치기 일쑤였고 앞뒤도 맞지 않는 말꼬리 잡기로 다른 사람의 진을 빼놨다. 그게 아니면 능구렁이같이 다른 사람을 살살 약 올리며 혼자만 다른 세상 사람처럼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주특기였다. 중요한 일에도 그랬다. 가정을 이끌어 가는 것은 엄마의 몫이었다. 나와 동생의 학비, 대출금,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엄마를 달달 볶아 문제를 해결하게 만들지 정작 자신이 나서 직접 해결하는 법이 없었다. 이런 괴팍하고 심술 맞은 모습이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집안사람들만 괴롭히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아빠의 성격처럼, 아빠를 대하는 나의 마음도 복잡다. 어릴 때는 아빠가 마냥 두려웠다. 본인 기분에 따라 다른 사람을 좌지우지 흔들어댔고 그 감정의 기복을 다른 사람은 이해할 길이 없어 그저 마냥 당하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아빠의 기분이 어떨지 살피고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조용히 기죽어서 지내는 게 일상이었다. 사춘기가 지나고 조금 커서는 나도 아빠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아빠와는 가만히 앉아 이성적으로 대화가 되지 않고 늘 자신의 억지만을 고집하고 큰소리를 치니 나도 언젠가는 아빠의 말도 안 되는 성격을 이기고 내가 옳다는 것을, 아빠 때문에 다른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게끔 만들고 싶었다. 나 역시 밖에서는 티 내지 않으려고 하는 자존감에 관한 문제와 자격지심이 어릴 적 아빠 눈치를 보고 주눅 들어서 살았던 환경 때문인 것만 같아 그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 그 분노와 미움의 감정은 꽤 오래가서 20대가 훌쩍 넘어서도 아빠에게 일부러 들이받고 대들고 했다. 그래서 아빠와 큰딸인 나 사이에는 늘 긴장감이 흘렀다. 지금은, 모르겠다. 두려움도 미움도 원망도 별로 남아있지 않다. 나에게는 아직도 아빠가 괴팍하게 굴었던 아주 어릴 적의 기억들이 살아있고 커서는 아빠에게 들이받고 맞고 했던 그때의 기억이 그대로 남아있기는 하지만 무덤덤하게 그런 일도 있었지 할 뿐이다. 꼭 남의 일처럼 말이다.


 이런 감정을 나조차도 확실하게 무엇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아마도 나는 아빠를 나와 부모 자식의 연을 맺고 있는 아빠라는 존재가 아닌 자신만의 인생을 사는 개별적인 한 사람으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같다. 한국전쟁이 한참일 때 태어나 어머니를 일찍 잃어 그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아이, 학교 가서 공부하는 것보다 소를 치고 밭을 매라고 밖으로 내몰렸던 소년, 도시 노동자, 시골에서 돼지를 키우던 농장주, 식당 주인, 버스 기사 여러 일을 거치며 삶을 살아냈던 한 사람의 인생 말이다. 내가 그 인생사의 구구절절한 내용은 몰라도 아빠의 무의식 속에는 부족한 사랑을 받고 자란 미성숙한 어린아이가 이 피곤한 삶을 살아내느라 얼마나 힘겨웠을까 짐작할 뿐이다. 그런 한 사람의 인생을 상상해 보면 나의 감정은 어느새인가 누그러져 있다. 이제는 그저 남의 어망에 든 피라미를 훔쳐먹었던 일이나, 언젠가 시골길을 걷다가 길가의 포도밭에서 포도 한 송이 훔쳐먹으며 걸었던 일, 어딜 가나 배낭 양쪽에 소주 한 병씩을 챙겨 다니며 술기운인지 흥인지, 또 사람을 약 올리는 것인지 하면서 벌어졌던 일들을 추억하며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어 낄낄거리는 웃음만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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