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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영 Oct 21. 2019

폭탄주와 망각의 인간관계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한국에 불어닥친 12월의 칼바람은 겨울 왕국인 핀란드보다도 더 매서웠다. 높은 빌딩 숲 사이로 바람이 빠르게 몰아치는 현상 때문에 추위가 더 날카롭게 느껴졌다. 대학 동기를 만나기로 했는데 퇴근이 조금 늦어진다는 연락을 받고서는 신도림역 개찰구 앞에서 몸을 떨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기자 시절 자주 만나고 교류했던 판사가 내 앞을 쓱 하고 빠르게 지나쳤다. 하얀 피부를 가진 그 판사의 얼굴은 추위 때문인지 얼음장처럼 얼어붙어서 투명할 정도로 하얗게 보였다. 붐비는 지하철역에서 인파에 밀려 워낙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어서 못 보고 지나칠 법도 한데 까만 코트를 턱 밑까지 여미고 새하얀 얼굴을 해서는 걸어가는 모습이 유독 눈에 띄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핀란드로 이주한 지 거의 3년 만에 마주치는 것이었다. 얼른 불러 세워 반갑게 인사를 할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곧이어 이제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도 아니고 연락한 지도 꽤 됐는데 그 판사의 입장에서는 나를 반가워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랜만의 이른 퇴근인 것 같은데 괜히 바쁜 걸음을 나 때문에 멈춰 세우기가 미안해 결국 그 사람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만 바라봤다.


친구를 기다리며 그곳에 가만히 서서 그동안 내가 쌓은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해봤다. 20대 후반에 만 3년을 기자로 일하면서 과분한 ‘기자님’이라는 호칭을 달고 다녔다. 처음 입사해 수습 기간을 거칠 때 한 선배가 ‘판검사와 어울린다고 네가 판검사가 된 것 마냥 행동하고 다니지 말라’는 직업적 가이드라인을 준 적이 있다. 그때는 그 말을 유념하며 잘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지난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도 많았다. 취재기자로서 법조계 언저리에 있으면서 그 조직에 대해 꽤 알은체하고 다녔다. 아무래도 내가 상대하는 취재원들이 나보다 스무 살 정도는 많은 데다가 법조라는 곳이 시시각각 진행되는 사건을 파악하고 확인해야 하고, 또 그러려면 취재원에게 들이대기도 해야 하는 곳이라 두꺼운 얼굴로 다닐 필요가 있기도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 깡통인 것을 티 내서는 안 됐고 어느 정도 이 조직이 돌아가는 사정을 아는 시늉을 해야 했다. 그래서 취재원과 술자리가 있다고 하면 빠지지 않고 달려갔다. 가능한 많은 사람을,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인맥을 넓히고 이것저것을 주워듣고 거기서 얻은 정보로 기사도 써야 했으니 말이다. 몇 번의 인사 뒤에는 관계를 다지기 위해서 '식사 한번 하시죠'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뒤따라 나왔고 어쩐지 법조는 술자리가 많았다.


기자로 일하기 전에는 취할 정도로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친구들 모두 술과는 거리가 멀고 나도 술 자체를 즐기지 않아서 술을 마시는 날에는 특별하게 기분을 내보자고 마음을 먹어야 했다. 그래 봤자 친구들과 호프집에서 안주를 잔뜩 시켜 놓고 맥주 한두 잔을 마시고 나오는 게 전부였다. 그랬던 내가 취재기자가 돼서 처음 배운 것이 폭탄주를 만드는 것과 술자리에서의 병권과 관련한 주도였다. 난생처음 맥주잔 두 잔이 든 작은 쟁반을 받아 들고서는 어쩔 줄 몰라 했다가 선배에게 폭탄주 만드는 것도 모르냐며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래도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쉬웠다. 나는 그동안 술을 잘 마시지 않아 건강했던 덕분인지 술자리에서 꽤 버텼다. 입사 동기들보다 내가 튈 수 있는 부분도 그 점이어서 더 열심히 마시기도 했다.


그 점이 선배의 눈에 들었던 모양이다. 야근을 마치고 광역 버스를 타고 집에 갈 때면 가끔가다 선배가 전화해 "어디니~?"하고 은근하게 물어올 때가 있었다. 자신이 있는 술자리에 합석하라는 뜻이었다. "네! 아직 기자실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는 버스가 올림픽대로를 타기 직전 간신히 내려 택시를 잡아타고 서초동으로 돌아가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렇게 선배가 나를 불러내는 날은 내가 평소에 만나기 쉽지 않은 취재원과 함께 있다는 뜻이고, 나에게 그 사람을 소개해준다는 뜻이었기에 오히려 내 쪽에서 반가운 술자리였다. 물론 밤늦게 시작된 술자리에서 아무리 마셔도 그다음 날에는 서로 점잖은 얼굴로 마주 앉아 '기자님', '부장님' 하며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야 했다. 그런 사람들을 내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은 술자리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저 그 술자리를 시작으로 실낱같은 인연의 끈을 이어 보고자 했다.


많이 마셨고 오래 마셨다. 나중에는 내가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나를 마셨다. 사람을 만나려고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을 마시려고 사람을 만나는 것 같기도 했다. 술에 딸려 나오는 화려한 음식들과 내 앞에 앉은 상대의 지위가 나를 더 취하게 했다. 병권을 잡고 내가 잔을 건네는 상대를 지목하거나 지목받았을 때, 일어나서 껍데기 말을 늘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상대방을 적당히 띄워주면서 재치 있는 농담을 몇 마디 곁들이는 것도 날이 갈수록 익숙해졌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자연스러워질수록 사람 만나는 것이 쉬워졌다고 할까 가벼워졌다고 할까, 어쨌든 그랬다. 내 몸이 술에 젖어가면서 기억이 흐려지고 몸이 상할수록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점점 피곤해졌다. 만남의 진중함도 알코올처럼 금방 휘발됐다. 우리가 함께 술을 마시고 같이 취하고 다음 날 아픈 속을 달래며 다시 만나야 인간관계가 끈끈해지는 것이라는 그릇된 직장 문화에 너무나도 젖어있었다. 그리고 몸이 지칠 때쯤에는 그것을 다시 바로 잡을 수도 없었다.


가끔 기자 시절 사람들을 만났을 때 정리해뒀던 정보보고를 다시 보고는 한다. 기자들은 취재원을 만난 후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시시콜콜하게 메모하고 기삿거리나 주요하게 쓸 정보가 될만한 것을 선배에게 보고하기도 한다. 그 정보보고에는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름과 소속, 나이, 연수원 기수, 특징, 취미, 버릇, 친분 있는 인간관계, 그 자리에서 나눴던 대화 내용 등등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그런데 이제는 이름만 봐서는 그이가 누구였는지 얼굴이 떠오르지도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이 사람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이런 일도 있었나 싶어 이 기록이 과연 내가 쓴 것이 맞나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마찬가지로 머릿속에 얼굴만 떠오르고 아무리 이름을 기억해 내려고 머리를 쥐어짜 봐도 생각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내가 만난 사람들도 아마 나를 그런 식으로 기억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폭탄주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라도 변명과 위안을 삼고 싶다. 그렇게 옷깃을 스친 수많은 인연 중 대부분은 한때의 인연으로 남아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아직까지 인생의 선배 같은 소중한 사람들도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술자리의 유흥 관계로 맺어지거나 친해지기 위해 어떤 특별한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됐다. 함께 술도 많이 마셨지만, 술로만 시간을 보내는 그런 사이는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것을 배우려고 했고 부족하지만 내 생각을 그들과 공유했다. 그들도 성심성의껏 피드백을 줬다. 나와 파장이 맞는 사람들이어서 그랬는지, 그들 앞에서는 제법 솔직하게 부족함을 인정했다. 그것을 조금 더 빨리 깨닫고 나만의 관계를 쌓아나갔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면 내가 추운 겨울날 신도림역에서 그냥 보낸 그 사람을 자신 있게 불러 반갑게 인사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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