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신소영 Nov 15. 2019

큰외삼촌의 마지막 호박볶음

엄마는 다섯 남매 중 넷째였지만 집안에 일이 생길 때는 제일 먼저 나서거나 총대를 매는 역할,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역할을 맡았다. 외할머니를 모시는 문제에서도 그랬고 아픈 큰외삼촌의 병간호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에서도 그랬다.


내가 고등학생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가 큰외삼촌이 사시는 충청도에 혼자 다녀오셨다. 아마 외삼촌이 내려와 보라고 먼저 연락을 했던 게 아닐까. 몇 달만에 만난 외삼촌은 눈을 뜨고 봐줄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었다. 그저 몸이 안 좋다 생각하고 방치한 병이 몇 개월 사이에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고 했다. 간암 말기. 외숙모도 안 계셨고, 나가사는 오빠들이 큰외삼촌의 상태를 챙길 리 만무했다. 


큰외삼촌은 우리 집에서 1시간도 안 되는 거리의 암 전문 병원에 입원하셨다. 자연스럽게 병간호도 우리 엄마가 맡게 됐다. 병원과의 거리, 무슨 일이 생기면 나 몰라라 하지 못하는 엄마의 성격이 맞물리면서 그렇게 됐다. 큰외삼촌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당연히 그렇게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바들바들 약한 몸의 큰 이모가 병간호를 할 수도, 미국에 있는 작은 외삼촌이 할 일도, 50이 넘어도 막내인 막내 이모에게 바랄 일이 아니었다.


엄마는 일을 하면서 이틀에 한 번씩은 병원에 가서 큰외삼촌을 들여다봤다. 주말이나 일을 쉬는 날은 밤새 병원을 지켰다. 엄마는 예순이 가까운 오빠의 소변을 받아냈고 똥기저귀를 치웠다. 큰외삼촌의 두 아들도 안 하는 일이었다. 워낙 말기에 발견한 터라 큰외삼촌의 몸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였다. 그저 하루하루 떠나는 순간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기운이 없어 말을 할 수도 없었고 당연히 식사도 못하셨다. 식사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그래도 엄마는 살뜰히 반찬을 만들어 병원으로 날랐다.


병원에 계신 외삼촌을 본 것은 딱 한 번 뿐이었다. 엄마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 말고는 별로 내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다만 그날 엄마를 도와 만들었던 호박볶음만은 이상하게 머릿속에 박혀 있다. 엄마는 퇴근을 하고 와서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로 음식을 만들었다. 일에 지친 얼굴은 땀에 절어 있었지만 외삼촌이 기다린다는 생각에 다른 것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엄마는 음식을 씹을 기운도 없는 외삼촌을 위해 애호박을 가늘게 채 썰었다. 호박에 양파와 잘게 찢은 느타리버섯을 넣고 달달 볶았다. 그리고 아주 약하게 소금 간을 했다. 중증 환자에게 간이 된 음식은 좋지 않다지만, 그래도 수액으로만 연명하는 것보다 무어라도 목으로 넘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온 엄마는 반찬통을 그대로 들고 돌아왔다. 외삼촌이 손대 못 댄 모양이었다. 엄마는 그래도 외삼촌이 호박볶음을 그렇게 맛있게 드셨다며 그것을 반찬으로 몇 술 식사를 하셨다고 했다. 입맛도 없는 사람이 그간 맛없는 병원밥을 삼키느라 얼마나 힘들었겠냐며 안타까워하면서 말이다. 엄마의 병간호는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외삼촌이 병원으로 오신 뒤 한 달이나 버티셨나 모르겠다. 엄마는 외삼촌이 돌아가시기 전 날 병실에 못 보던 기계들이 들어왔다고 했다. 아마 의료진들은 외삼촌의 마지막 순간이 왔음을 알고 준비를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엄마도 그것을 눈치챘다.


엄마는 큰오빠를 위한 호박볶음을 만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 집에서 모시고 있던 외할머니에게 큰 아들의 죽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어디 멀리 외국으로 일하러 나갔다고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삶이란 것이 참 기구하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삶을 정리해야 하는 오빠도, 자식을 앞세워야 하는 엄마도.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아니면 먹고살기도 힘든데 오빠의 병수발까지 해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을지도. 제발 이 반찬에 밥 한 술이라도 넘겼으면 하는 간절함이 가장 컸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엄마 앞에서 큰외삼촌 이야기를 꺼내기가 영 어렵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탓일까. 떠나는 외삼촌 스스로도 본인의 삶을 정리할 시간도 기운도 없었듯이, 주변인들에게도 그 사실을 받아들일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밥상 위에 호박볶음이 올라왔다. 호박을 반달 모양으로 썰고 기름에 볶다가 양파, 버섯을 넣는다. 마늘과 새우젓은 대체 불가의 빼놓을 수 없는 재료다. 고춧가루도 톡톡. 기름에 볶아진 새우젓의 감칠맛은 누가 알아낸 것일까. 쌀밥에 호박볶음을 넣고 고추장 조금, 참기름을 한 바퀴 두른 뒤 비벼 먹는다. 호박볶음만 보면 큰외삼촌의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큰외삼촌의 마지막 만찬이었고 엄마의 정성이었다. 식탁 맞은편에 앉은 엄마의 얼굴을 본다. 엄마는 아무 말이 없지만 속으로는 큰오빠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이전 08화 훔쳐먹은 피라미 회의 맛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당신, 오늘도 잘 먹고 있나요?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