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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영 May 01. 2019

닭꼬치와 배고픈 연애의 기억

사진출처: travel oriented, flickr.com

퇴근길 강남역을 걷다가 어디선가 매콤한 양념이 눌어붙은 불냄새를 맡았다. 자연스럽게 침이 고여 냄새를 쫓아가니 강남대로의 인도 구석에 자리 잡은 포장마차에서 닭꼬치 굽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퇴근 시간의 만원 버스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한눈을 팔 사이 없이 부리나케 버스정류장으로 내달려야 하지만 뿌연 연기를 뿌리며 코끝을 자극하는 불냄새의 유혹을 피할 길이 없다. 한 시간이 넘는 퇴근길을 이렇게 허기진 상태로 갈 수는 없다는 핑계를 대며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섰다.


기본인 소금구이부터 달달한 바비큐 소스 맛, 고추장이 베이스가 된 약간 매콤한 맛, 입안을 마비시키면서 속만 아플 것 같은 미치게 매운맛. 나의 선택은 언제나 약간 매콤하면서도 달짝지근함을 같이 느낄 수 있는 고추장 소스다. 불이 올라오는 그릴 위해서 치익치익 연기를 뿜어내며 초벌구이 된 닭꼬치를 옆의 그릴로 옮겨 앞뒤 연신 뒤집어가며 소스를 여러 번 덧발라준다. 이때 양념이 불 위로 떨어지면서 눌어붙은 탄내를 내지만 오히려 그 향이 고기에 배이면 입안 꽉 찬 소스와 함께 코끝을 채우는 불향기까지 더해진다.


휴지로 돌돌 만 꼬치 끝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건네받으면 한입 와앙 하고 베어 물고 싶지만 열기를 머금은 진득한 양념이 입안에 달라붙을 수 있으니 일단은 참아본다. 조심스럽게 닭고기 한 덩어리를 베어 먹으면 역시 그냥 지나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입안 가득 든다. 다리 살은 연하면서도 적당히 씹히는 맛이 있다. 진한 양념이 입안을 휩쓸고 지나가면 닭다리 살의 담백한 맛이 이어온다. 고기 사이사이에 끼워진 파는 입가심하기에 괜찮다.


요즘은 닭꼬치 사이즈가 팔뚝 길이는 될 만큼 꽤 커졌는데도 이상하게 하나로는 양이 차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길거리 음식에 비해 저렴한 것도 아니라서 이것으로 배를 채울 만큼 먹기에는 돈 아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딱 하나만 더 먹었으면 좋겠다 싶지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분식의 천국이라는 곳에서 밥과 찌개를 먹는 것이 낫겠다 싶어 자리를 뜬다. 입술에 뭍은 양념을 한 번 훑고 입 안에 남은 양념의 맛을 조금 더 느껴보려고 입맛을 다시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나의 20대의 연애가 딱 이런 닭꼬치 맛이다. 달콤하면서도 쏘는 매운맛이 있고 훨훨 타는 불냄새를 풍기기도 했지만 뒤돌아서면 아쉬움이 남는 그런 맛 말이다.


K는 입이 참 짧았다. 내가 잘 먹는 것일 수도 있겠다만 나는 늘 내 양을 채워본 적이 없으니 그냥 상대가 입이 짧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K는 군것질을 좋아해서 호떡이며 닭꼬치며 풀빵이며 이런 길거리 음식들로 배를 채우기를 좋아했다. 나는 간식은 언제나 환영이지만 끼니를 그런 음식으로 때우고 싶지는 않았다. 왜 연애 초반에는 맛집도 찾아다니고 분위기 좋은 곳도 가고 그러고 싶지 않은가.


어느 날 K는 길 가다 보인 포장마차에서 닭꼬치를 먹자고 했다. 둘이 하나씩 맛있게도 먹었다. 꼬치라고는 해도 그래도 고기를 먹기는 했으나 양이 차지 않으니 오히려 식욕이 돌았고 달짝지근한 양념은 입맛을 돋웠다.


"저녁은 뭐 먹을까?"


"닭꼬치 먹으니까 배부른데, 저녁 먹을래?"


"아니, 나도 별로. 남자들은 많이 먹으니까 혹시나 배고플까 해서 물어봤어"


참 우스운 대화였다. 그 상황에서 배고픔을 느끼는 게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어쩐지 숨겨야 할 것 같았다. 숨긴 것은 뱃속의 허기만이 아니었다. 길에 서서 음식을 먹으며 길게 늘어트린 머리카락에 양념이 묻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한 손에는 휴지를 들고 입가에 묻은 양념을 닦아대느라 바빴고 조신해 보이려 애썼다. 소탈한 길거리 음식과 어울리지 않는 가식적인 모습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K에게 보여줘야 했던 예쁜 모습은 소위 여성스럽다고 하는 그까짓 내숭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었고, 처음이어서 내 감정을 처리하는 데 서투른 점이 많았다. 내키는 대로 말을 내뱉고 행동하는 것이 솔직한 것인 줄 알았다. 한참 어리다는 벼슬도 아닌 이유로 온갖 투정을 부리며 사람을 좌지우지하려고 했다. 그런 식으로 사랑을 확인하려고 했고 그게 용인되는 줄 알았다. 흔한 연애가 그렇듯 지친 쪽이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아쉬움과 미안함이 많이 남는 연애였다. 그리워서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은 아니다.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이 20대를 휩쓸고 30대가 돼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보니 세상에는 불멸의 사랑이랄 것도 없고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비극적 사랑 이야기는 비현실적이고 우습게 느껴진다. 사람이 사랑하기 위해서는 상대방보다 '때'가 더 중요하다. 자신이 성숙해진 때, 자존감이 있는 때, 다른 사람을 돌아볼 시간과 여유가 있는 때 말이다. 서로 그때가 잘 맞아떨어진 사람들의 만남은 은근하면서도 결속력 있는 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때의 연애는 뜨거워봤자 찬물을 맞으면 꺼지거나 시꺼먼 재만 남기고 불타 없어지고 만다.


아마도 K의 짧았던 입은 주머니 사정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넉넉지 않은 취업 준비생에게 연애란 길거리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면서도 배가 부른 척해야 하는 것이었고, 가진 것이라고는 어린 연인의 고약한 심보를 한정 없이 받아줄 수 있는 넓은 아량밖에 없는 때였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K와 헤어졌을 때 그의 나이쯤, 30대 초중반이 됐다. 이 나이가 되기까지 나는 짧게나마 직장도 다녀봤고 이미 결혼을 했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이 나이쯤 나를 만났던 K는 미루고 미루던 대학 졸업을 백수 상태로 맞이하고 난 뒤 고시촌으로 들어가 공부를 했다. 몇 년을 고시에 낙방한 끝에 결국 원했던 자리를 얻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그의 좌절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 나이에 마땅히 누리고 가져야 할 것들을 이루지 못해 맨땅에 헤딩을 하면서도 나를 만나왔을 것이다. 아마 나로 인해 계속된 실패와 좌절을 맛보고 늪에 빠진 것은 아닐지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립지는 않지만 가끔 K가 생각나는 이유는 아직 마음속에 남아있는 아쉬움과 미안함 때문이다. 내가 조금 더 성숙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과 철없던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그를 헐뜯으며 상처를 줄 필요는 없었는데 하는 미안함 말이다. 내가 참 그 사람의 자존감을 많이도 갉아먹었다. 나 자신도 가진 것이 없을 때라 끝도 없이 낮아져만가는 자존감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괜한 화풀이를 그에게 하곤 했다. 그저 그에게 다시는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나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아마 나는 그에게 나쁜 '때'이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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