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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영 May 09. 2019

성게알과 사람의 가치

출처: Heather Joan, filckr.com

늘 육식을 선호하는 나는 직장에 들어가고 나서야 해산물의 참맛을 알게 됐다. 생선회나 게, 새우, 조개 등 갑각류의 맛이야 익숙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선택지가 있다면 늘 고기를 선택할 정도로 육류를 좋아한다. 그래서 해삼, 멍게와 같이 비릿하고 씁쓸한 맛을 가진 것들은 아저씨들이 소주에 곁들이기 좋아하는 '어른의 맛'이라고 생각해 잘 손대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것들에도 묘한 맛이 있더라.


만 3년을 꼬박 다니고 그만둔 나의 직장은 서초동 법조계에 출입하는 법조전문지였다. 나는 그곳에서 기자로 일하며 주로 판사, 검사, 변호사들을 취재하고 기사를 썼다. 일도 재미있었고 만족도도 높았다. 나를 교육한 선배의 말에 의하면 '세상 구경하며 돈 버는 일'이었는데 좋아하는 글까지 쓸 수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런 것들에 비하면 신문기자, 그것도 작은 전문지에서 일하는 기자의 월급은 별로 언급할 거리도 못됐다.


그 적은 월급을 보상해 주는 게 바로 취재원들과의 만남이었다. 지금은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있어 얼마 이상의 식사 대접을 받는 것이 금지돼 있지만, 내가 일했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늘 취재원이 기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그 자리에는 호형호제만 안 했지 절친이 된 판사도 있었고, 세간의 관심을 받는 사건의 수사를 맡은 부장검사, 돈을 끌어모은다는 대형 로펌의 대표 변호사, 높으신 대법관까지 다양했다. '기자는 식사 자리에서 계산하지 않는다'라는 암묵적인 룰이 어떻게 하다가 생겨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이해한 바로는 돈이나 지위, 나이에 주눅들지 말고 당당하게 다녀야 한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것이 이제는 '접대'로 변질된 것이 아닐까 한다.


내일의 발제거리를 고민하며 하이에나처럼 기사거리를 찾는 나와 쉽게 정보를 내놓지 않으려고 껍데기 말만 늘어놓는 취재원 사이에는 언제나 호화스러운 음식이 가득했다. 가장 만만한 메뉴가 소고기였다. 가격도 나가면서 배도 부르고 안주삼아 술잔도 빨리 돌릴 수 있으니 밥값을 내는 사람 입장에서도 잘 대접했다는 느낌이 들고 받아먹은 사람도 잘 먹었다는 생각이 크게 드는 메뉴다. 전라도 출신의 한 판사는 향토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컸는데, 같은 지역 출신의 사장이 해당 지역에서 공수한 재료로 그날그날 다른 음식을 만든다는 한정식집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여성 취재원들은 대개 간단하게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양식집으로 기자들을 이끌었다. 서초동이 지겨우니 서래마을로 나들이나 가자며 데려간 곳이 알고보니 지금 방송에서 인기가 있다는 유명한 쉐프가 운영하는 곳이기도 했다.


기름진 음식이 먹고 싶은 날에는 고급 중식집으로 향했다. 기자들끼리 점심이나 먹으러 갈 때는 짜장면 짬뽕에 탕수육 하나 더 시켜 먹는 정도였지만 취재원과 가면 메뉴판에 있는 것만 알았지 시켜보지는 못했던 각종 요리가 코스로 나오고 독주는 기본이었다. 이것들뿐이겠는가. 현실의 내 주머니 사정과는 다르게 경력이 쌓일수록 입맛은 고급스러워져서 각종 제철 음식은 기본으로 챙겨 먹었고 '개 혀~?"라는 말로 대동단결하는 법조계 몸보신 마니아들과는 복날 서울 근교의 어느 곳까지 가서 보신탕도 한 그릇씩 하고 다니며 친목을 도모했다.


해산물의 참맛을 깨달은 것은 기자 일을 시작하고 2년쯤 지났을 때였다. 법원에서 일하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S 변호사와 저녁 약속이 잡혔다. 뜬금없이 사표를 내고 나갔던 분이라 그 이유에 대해 뒷말이 많았다. 부장과 나, 후배 기자가 참석한 자리에서 그 변호사는 갑작스러운 사직의 변을 늘어놓았지만, 특별히 영양가 있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저 주문한 회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역시 변호사로 활동하시니 젊은 감각의 안경으로 새로 맞추셨군요!" 하며 나름 패셔너블한 테로 바꾼 그의 안경을 칭찬했고 역시 그 역시 그걸 알아보다니 센스가 있다며 서로 공허한 껍데기 말과 함께 술잔만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문한 회가 나오기 전 서비스라며 성게알 한 접시가 나왔다. 고소하고 감칠맛이 도는 성게알의 맛에 눈을 떴을 때라 지루한 저녁 자리에 아주 반가운 음식이었다. 반짝반짝 윤기가 나는 노란빛의 도톰한 성게알은 입안에 넣으면 사르르 녹으면서도 진한 풍미가 있다. 달콤하면서도 은은하게 쌉싸름한 맛을 풍기면서 비릿한 바다향기가 코끝을 살짝 건드리고 지나간다.


그런데 그날의 성게는 어쩐지 약간 초록빛이 돌았다. 부장은 상 한가운데 놓인 성게알을 보고서는 "어째 색이 조금 이상하다, 싱싱한 거 맞아요?"라는 말을 던졌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S 변호사는 서빙하는 종업원을 향해 "야! 귀하신 분 모셨는데 이거 먹고 탈 나면 너 죽는데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갑자기 몸에 열이 오르고 귀가 화끈 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점잖고 양식있는 사람인 줄 알았던 S 변호사에 대한 그동안의 이미지가 모조리 깨졌다. 그동안 판사실의 묵직한 가죽 소파에 앉아 20대 후반인 나에게 '기자님, 기자님'하며 부르던 모습은 모두 진심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상대방의 지위에 따라 사람을 막 대할수도 있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실망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밀려왔다. 늘 사법권의 독립,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법관의 고민과 같은 것에 대해 말하던 사람이라 그 괴리감이 더 컸다.


서빙한 종업원은 40대 중후반으로 보였다. 나보다 적어도 20살은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돈을 벌기 위해 식당에 나와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일 뿐 그런 식의 취급을 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까짓 성게알이 뭐라고 아무렇지 않게 "야!"라는 하대를 당해야 하고 "죽는다"는 상스러운 표현까지 들어야 했을까. 그 소리에도 그 종업원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대접을 받을만한 '귀하신 분'도 아니었다.


그 뒤로 S 변호사와 연락하는 일은 없었다. 기삿거리를 안겨준다고 해도 인간적인 실망감을 느낀 사람과는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S 변호사와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방망이로 얻어맞듯 깨달았다. 기자 일을 하면서 그 사람의 본 모습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상대방의 지위로 그 사람을 대했다. 공명정대하게 법을 다뤄야 한다는 사람들도 사실은 저열할 수도 있고, 사람의 지적 능력이 그 사람의 인품을 담보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는 나도 어쩐지 그들의 고귀한 지위를 등에 업고 있는 것처럼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다. 그런 나의 태도는 기사에서도 드러났다. 예리하거나 깊이가 있지 못했던 것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만약 내가 기자가 아니었어도, 나는 S 변호사에게 상대할 가치가 있는 귀한 사람이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날에는 소주 한 잔에 초장을 듬뿍 찍은 쌉사래하고 비릿한 해산물의 맛이 스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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