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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영 May 21. 2019

꼬리곰탕 국물만큼 진한 친구

사진 출차: 위키피디아

내가 사는 핀란드에서는 고기가 저렴한 편이다. 한국과 고기의 질이나 맛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단위 가격만 놓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장바구니에서 고기가 차지하는 가격 비중이 적다. 때문에 고기반찬을 자주 먹게 된다. 외국에서는 한국처럼 다양한 밑반찬을 늘어놓고 먹기가 어려워서 주로 고기를 볶거나 찜을 해서 상 한가운데 떡하니 차려놔야 빈약한 상차림을 메울 수 있기 때문에 고기 요리를 자주 하는 이유도 있다.


이곳에서는 고기 중에서도 특히 뼈에 붙은 고기가 싸다. 갈비 부위가 1kg에 8~9유로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소고기든 돼지고기든 그  정도 가격이다. 아무래도 식문화의 차이가 있다 보니 이곳에서는 구워 먹는 살코기 종류를 선호하기 때문에 뼈 부위는 저렴한 모양이다. 살코기는 대개 덩어리로 팔거나 스테이크용으로 두툼하게 썰어서 파는데 부위가 그리 다양하지는 않다. 한국만큼 고기를 정형하는 방법이 세분화돼있지 않아서다. 안창살, 살치살, 항정살, 갈매기살 등등 불판 위에서 '굽는다'는 조리법은 같지만 그 식감이나 맛이 전혀 다른 것을 아는 한국 사람들에게 어느 마트에선가 우리가 먹던 그와 비슷한 고기를 판다는 정보는 참 반가운 소식이다. 여러 마트를 돌아다니며 감자탕에 넣을 등뼈나 소갈비, 사골 등등을 구해 참 많이도 해 먹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맛있게 먹었던 게 소꼬리 요리다. 소꼬리도 9유로, 한화로 1만 3천 원 안짝이면 1kg 정도를 살 수 있다. 아이까지 세 식구가 2.5kg이면 실컷 먹고도 남는다. 한국에서는 비싸서 자주 못 먹는데 여기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니 왠지 자주 해 먹어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먹기까지 참 손이 많이 간다. 어쩐지 한국의 소꼬리보다 기름기도 많이 붙어있고 손질을 대강 해서 파는 느낌이라 요리하기 전 잔 손이 많이 간다.


일단 찬물에 소꼬리를 담가놓고 수시로 물을 갈아준다. 핏물을 뺀 꼬리는 뜨거운 물에 데쳤다가 기름과 불순물이 올라오면 찬물에 샤워를 시킨다. 그때 덕지덕지 붙은 지방도 함께 제거해 준다. 소꼬리나 갈비나 떼어버리는 기름이 절반은 되는 것 같다. 소꼬리찜을 할 때는 아이도 함께 먹을 것이니 웬만하면 양념에는 설탕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배와 사과, 양파를 갈아 넣는다. 서양 배는 한국 배와 달리 갈아도 수분이 많지 않아서 면 보자기에 즙만 거를 것 없이 건더기 채 전부 넣어버린다.


요즘은 전기압력밥솥에 찜 기능이 있어 밥솥에 넣고 40~50분만 돌리면 불 조절할 것도 없이 꼬리찜이 금방 완성된다. 하지만 역시 냄비에 넣고 불 조절을 해가며 조리는 것이 간이 깊게 배어 맛이 더 좋다. 매운 것을 좋아하는 나는 내 몫만 따로 덜어내 고춧가루나 매운 고추를 넣고 한소끔 더 끓여낸다. 가족이 둘러앉아 뼈에 붙은 쫀득한 고기를 살살 발라 먹으면 아무 날 아닌데도 잔칫집 같은 분위기가 난다. 소꼬리찜을 하는 날에는 몇 시간 동안 달인 간장 냄새가 아파트 전체에 퍼지기 때문에 혹시나 이웃에게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기운이 떨어진다 싶을 때는 물을 한가득 넣고 몇 날 며칠 꼬리곰탕을 고아댄다. 보통 꼬리곰탕은 국물을 맑은 정도로만 끓여내지만 고기를 발라 먹고 남은 뼈를 버리기 아까운 생각이 들어 뽀얀 젖빛이 돌 때까지 푹푹 끓인다. 한국 식당에서는 많아 봐야 뚝배기 한 그릇에 두세 조각밖에 들어가지 않아서 비싼 가격에 비해 늘 아쉬움이 남지만, 이곳에서는 양이 찰 때까지 그릇에 고기를 덜어다 먹는다. 소꼬리로 요리할 때면 남편은 늘 든든하다며 배를 두드린다. 세 살밖에 안 된 아이는 아직 맹숭맹숭한 허연 국물의 맛을 모르지만 몸에 좋다니 한 입이라도 더 먹이게 된다. 나에게 소꼬리 요리는 가족에 대한 정성 가득 담은 애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1년 전쯤 유산을 했다. 첫째가 세 살이 됐을 때 동생이 태어나면 거부감 없이 잘 받아들일 것 같아 남편과 시기를 조절해가면서 둘째 계획을 세울 때였다. 요즘에는 난임 부부도 많다는데,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아기가 금방 찾아와 줬다. 그런데 그렇게 임신한 둘째 아이가 허망하게 가버렸다. 임신 초기에 가족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비행기에서 잠을 못 자는 아이와의 9시간의 비행은 고역이었다. 그래서인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피가 비치기 시작했다. 도착하고 나서도 시차 적응을 못하는 아이의 잠투정을 받아주느라 피곤해서 그런지 출혈은 멈추질 않았다. 병원에서도 워낙 임신 초기이기 때문에 초음파를 해도 보이지 않으니 기다리자고만 했다. 걱정할 가족들을 생각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불안함을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고 있어야만 했다. 혹시나 아이를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 가슴속에 납덩이가 들어앉은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다시 9시간의 비행 끝에 핀란드로 돌아왔다. 출혈은 더 심해지기만 했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아이는 그렇게 핏덩어리가 돼서 흘러가 버렸다.


유산 소식을 들은 가족과 친구들 모두 위로의 말을 전했지만 아무것도 와 닿지 않았다. 아직 배도 불러오기 전이라 뱃속의 아이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믿기지 않았다. 마침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에 한동안은 나도 함께 다니며 아이가 적응하도록 도와줘야 해서 슬픔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었다. 유산도 산후조리처럼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데, 아이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핀란드의 겨울을 점퍼도 입지 못하고 뛰어다녀야 했다.


나의 소식을 들은 L의 가족은 우리 식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이곳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한인 가족이기에 언제든 수시로 만나는 그런 사람들이다. L은 나를 보자마자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주었다. 나는 여태껏 그랬듯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런 내게 L은 커다란 냄비 하나를 들이밀었다. 끼니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먹으라고, 다른 식구들은 주지 말고 나만 먹으라며 꼬리곰탕 한 솥을 끓여놓은 것이다. 그것을 받아 들고 나니 그제야 내 마음속에 눌러왔던 감정의 응어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차마 눈물을 보일 수 없어 화장실로 달려가 눈물을 훔쳤다.


괜찮은 줄 알았지만 사실 나는 정말이지 괜찮지가 않았다. 그저 넋 놓고 슬퍼할 겨를이 없었을 뿐이다. 누구 하나 나의 슬픔을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출혈이 시작됐을 때부터 눌러온 불안함은 아이를 잃고 나서는 죄책감과 한스러움으로 남았다. 나를 걱정해 주는 말들은 오히려 엄마가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아이를 잃었다는 비난의 화살인 것만 같았다. 제때 털어내지 못한 감정의 응어리는 알 수 없는 울렁증과 두통을 불러왔다.


격려와 위로의 말은 누구나 해줄 수 있다. 가끔 진심이 아닌데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도리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듣는 사람도 그것을 안다. 그러나 진심이 담긴 행동으로 남을 위하는 것은 다르다. 그 마음을 전하는 사람에게도 그 행동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꼬리곰탕이 담긴 그릇을 받아 드니 온종일 고기를 손질하고, 끓이고, 뜨거운 불 앞에서 기름기를 연신 걷어냈을 L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졌다. 나에 대한 걱정과 애정이 그 곰탕 안에 진하게 녹아 있었다.


타향살이를 하니 한국의 피붙이와는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것이 고작이다. 함께 있었다면 내가 힘든 일을 겪을 때 손을 잡아주고 눈물을 닦아줄 사람들이 저 멀리 7000km나 떨어져 있다. 핀란드에서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나와 남편 단 둘뿐이다. L 가족의 상황도 우리와 마찬가지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가족의 의미는 확대된다. 혈연으로 엮이지 않았더라도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끼리 모여 똘똘 뭉쳐 살면서 의기투합하고 힘들 때 위로가 돼 줄 수 있으면 가족이라 생각하고 의지하며 산다. 우리의 이웃과 나눠야 하는 정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다행히 그 이후로 나는 임신에 성공했고 둘째 딸을 무사히 출산해 이제 100일이 갓 지났다. 그러는 동안 L의 가족과 몇 번의 명절을 같이 보냈다. L의 가족은 우리를 초대해 함께 명절 음식을 만들어 먹고 내 아이의 세뱃돈까지 준비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우리 손에 귤 한 박스를 들려줬다. 마치 명절날 오랜만에 방문한 큰집에 간 것처럼 내 두 손과 마음이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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