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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영 Jul 08. 2019

대를 잇는 아빠의 손만두

몇 달에 한 번씩 만두를 만드는 게 우리 집의 분기별 행사가 됐다. 건강하게 먹는 것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남편에 비해 나는 참 이것저것 다양하게 먹고 싶은 것도 많아서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 많다. 외국에 몇 년 살다 보면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도 점점 옅어진다는데 나는 그 반대인 모양이다. 만두도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내 나름대로 맛을 내려고 계속 시도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한 번 만들 때마다 이백 개 정도는 만들어서 냉동실에 얼려 놓고는 이웃과 나누거나 입이 궁금할 때 야참으로 꺼내 먹고는 한다.


요즘 해외에 있는 아시안 마켓에 가면 냉동 만두쯤은 구하기 어려운 식품도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은 고향의 맛이라는 만두부터 요즘 대기업에서 한류 세계화를 목표로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등의 다양한 속재료를 채워 만든 것, 한국에서 반짝 유행한다는 매운 만두까지 다양하게 들어와서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아시안 마켓에서 비치해 놓은 우리 만두는 중국이나 일본 만두에 비해 압도적으로 그 브랜드와 종류가 다양하다. 한류와 먹방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한국 교민들 말고도 현지인도 우리 음식을 많이 찾는 이유에서 일게다.


그런데 만두는 사 먹기가 아깝다. 기껏해야 한 팩에 10개나 남짓 들어있을까 말까 한 것들을 만원 가까이 주고 사 먹어야 하니 말이다. 나 같은 만두 귀신들은 끼니고 간식이고 만두 몇 개 집어먹는 것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는다. 뜨거운 만두를 간장에 콕 찍어 한 입에 밀어 넣고 양 볼이 가득 차도록 씹으며 속재료의 맛을 느끼고 싶은데 비싼 돈 주고 사 먹는 만두로는 그게 되질 않는다. 떡만둣국이라도 끓일라 치면 웬만하면 내 그릇이나 남편 그릇이나 만두 개수를 똑같이 넣고 싶지만 은근슬쩍 남편 그릇에 떡을 많이 넣어주고 만두 한 개쯤은 내 그릇으로 더 옮겨 담는 어린아이 같은 유치함을 발휘하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설날에 큰집에 가면 차례를 지낸 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떡만둣국을 먹었다. 큰어머니는 고기와 우족을 넣고 진하게 우려낸 사골 국물에 떡만둣국을 끓이였다. 아침상을 차리는 엄마 옆에 서서 "엄마 나는 떡 싫어, 만두만 줘 만두 많이 많이!"를 연신 주문했다.


큰엄마의 만두야 말로 백 퍼센트 집에서 빚은 손만두였다. 까다롭고 잔소리 많은 큰아버지의 입맛에 맞추려면 시골 농사에 허리가 휘고 볕에 타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큰엄마가 모든 것을 직접 하시는 수밖에 없었다. 밀가루 반죽을 해 만두피를 미는 것은 물론이었다. 아직도 만두피를 동그랗게 찍어낼 때 쓰던 오래된 그 주전자 뚜껑이 기억날 정도다. 속재료로 들어가는 두부도 집에서 만드셨다. 텁텁하리만치 진한 콩 냄새가 나는 손두부가 들어간 큰엄마의 만두는 투박하지만 질리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요즘에는 어디서 쉽게 맛볼 수 없는 그런 만두였다.


차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큰엄마는 명절 음식을 싸주셨다. 어쩐지 맛있는 것보다 내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을 더 많이 싸주시는 것 같아서 나는 음식을 보관해 둔 골방에 슬쩍 들어가 만두며 전이며 이것저것 집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내 뱃속에 잔뜩 담아 갈 요량이었던 것이다. 큰엄마가 싸주신 만두는 냉장고에 들어가 차갑게 식어도 맛있었다. 집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심심할 때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만두가 떨어질 때까지 하나씩 꺼내먹었다. 집에서 반죽해 바로 빚은 만두피는 냉동 만두피와 달리 두께가 두툼하고 반죽이 부드러워서 시간이 지나도 금방 마르지 않는다. 오히려 차갑게 식어서 퉁퉁 불은 만두피는 따끈하게 갓 쪄낸 쫄깃한 만두와는 다른 맛이 있었다.


큰엄마의 투박한 만두도 훌륭했지만 사실 내가 배운 만두는 우리 아빠의 만두다. 만두 빚는 데는 우리 아빠가 선수였다. 부모님은 한때 분식집을 오래 하셨는데 아빠는 엄마의 손재주를 타박하며 만두 만드는 데는 본인 외에는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게 하셨다. 특히 대부분 어려워하는 나뭇잎 모양의 만두를 잘 만드셨다. 험한 일만 했을 법한 두껍고 거친 손 위에 작은 만두피를 올려놓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만두피를 오므려 몇 번 꼬집으면 순식간에 입을 앙다문 새초롬한 만두 하나가 완성됐다. 아빠는 가게에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줄곳 서서 만두를 빚느라 하루를 다 보내셨다.


식당을 접은 뒤에도 아빠는 한동안 집에서도 만두를 만드셨다. 식당을 할 때야 냉동 만두소를 납품받았지만 집에서 만드실 때는 모든 재료를 직접 장보고 손질해 본인의 입맛에 맞는 소를 만드셨다.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하루 종일 재료를 준비해 대야 한 가득 만두소를 만들어 놓으셨다. 정작 앉아서 만두를 빚을 때가 돼서는 온종일 만두소를 만드느라 기운이 빠져서 공부하는 딸들을 불러다 놓고 만두를 몇 백개씩 만들도록 사람을 귀찮게 했다.


나는 우리 집이 식당을 할 때 팔던 만두도 좋아했다. 만두로 유명하다는 프랜차이즈 분식집의 대표와 결혼한 사촌언니 덕분에 우리 집은 가맹점이 아닌데도 만두소와 각종 식재료를 납품받을 수 있었다. 기름지고 짭짤하게 간이 돼 있어 누구나 좋아할 만한 평균적인 그런 맛이었다. 하지만 아빠가 집에서 직접 만든 만두는 유명 프랜차이즈에서 보장하는 맛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만두소는 어떻게 만드는지는 몰라도 속재료가 엉켜 하나의 반죽 덩어리 같지만 아빠의 손만두 포실포실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재료 하나하나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아빠만두소에 절인 애호박 잔뜩 넣는 것을 좋아하셨다. 고기에 당면, 숙주, 파, 두부 등은 당연히 들어가는 재료인터라, 내가 생각하기에 그 차별화된 맛의 핵심은 절인 애호박이지 싶어 나도 만두소를 만들때 다른 재료는 몰라도 이것만은 꼭 넣는다. 가늘게 채를 썬 뒤 소금에 절여 물기를 꾹 짜낸 애호박은 식감이 꼬들꼬들하다. 만두를 쪄낸 뒤에도 그 꼬들함이 살아있어서 다른 속재료와 한데 어우러지면서도 다양한 맛과 식감을 이끌어내는 조화가 있었다. 내가 부엌 한편에서 신문지를 펼쳐놓고 주저앉아 만두를 하염없이 빚을 때 엄마는 만두를 쪄내고, 아빠는 그 만두로 또 다른 요리를 선보이느라 동생을 이리저리 불러가며 잔심부름을 시키는 그런 가족의 조화처럼 말이다.


그렇게 하루 종일 집안 식구 모두가 이 만두 만들기에 동원이 되는 날에는 저녁나절이나 돼야 허리를 펼 수 있었다. 아빠는 그때까지 이 행사를 진두지휘하며 본인이 하루 종일 만두를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에 대해 하소연인지 자랑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을 한참이나 늘어놓으며 우리의 인정을 바라셨다. 일 좀 벌이지 말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누가 너희들을 해먹이겠냐며 상 한가운데 버너를 내놓으시고는 만두전골로 하루의 대미를 장식했다.


멸치를 우려낸 전골 육수에 갓 빚은 신선한 만두를 풍덩풍덩 넣고 팔팔 끓이다가 떠오르면 건져내서 잘 익은 김치를 하나 척 하니 올려서 먹었다. 꿀맛이었다. 만두 속에서 우러난 고기 기름이 국물 위로 둥둥 뜰 때쯤에는 칼국수 사리를 넣어 마무리를 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상 위에서 펄펄 끓어대는 전골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입천장을 데면서 참 맛있게도 먹었다. 그 만두전골의 맛은 지금 아무리 따라 해보려고 해도 생각처럼 되질 않는다. 아마도 시끌벅적하게 만두를 빚던 가족들과 7000km를 떨어져 6시간의 시차를 두고 살기 때문인 듯하다. 내 감각은 요란하게 부딪히는 식기 소리와 아빠의 잔소리, 엄마의 타박, 동생의 투덜거림이 엉킨 시끌벅적함, 그리 부드러운 밀가루의 촉감과  고기 향을 그득하게 품은 만두의 맛과 열기를 기억하는데 지금은 그런 것들이 내 곁에 없으니 말이다.


내가 아무리 외국에 살아 한국 음식이 고프다고 해도, 사실 먹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 가지고 예닐곱 가지나 되는 속재료를 준비하고 만두를 수백 개씩 만들어 찌고 식히고 얼리고 포장하는 정성을 발휘하기는 힘들다. 그까짓 거 사 먹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그 시간과 정을 나눈 추억이 있기 때문에 수고로움을 감수하고서도 일을 벌이는 것이다. 그 추억이라는 것은 "그래, 예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지" 하며 머릿속에 남은 장면들을 더듬어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내 몸이 기억하는 가족과의 노동을 다시 재현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녔다.


아빠와 내가 함께 산을 오르 막걸리를 나눠 마시고 만두를 빚며 내 몸에 추억을 쌓은 것처럼, 내가 아빠를 떠올리는 방법은 두 딸들과 함께 산에 가서 맥주캔을 따고 아무 날이고 같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는 일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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