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아니었다면 굳이 회사원이 되지 않았을 거다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연봉표를 펼치고, 어떤 이는 복지제도를 따져보고, 또 어떤 이는 사무실 뷰를 궁금해한다. 나도 때로는 회사의 화장실과 주차, 커피와 얼음이 있는 캔틴을 눈여겨보기도 했다.
내가 선택한 이 회사는, 피트니스 산업에 있다. 이 시장에 ‘기업’을 만들겠다는 국내 최초 유일한 회사.
운동은 나에게 오랫동안 ‘개인적인 것’이었다. 일과 상관없이, 인간적인 회복과 확장을 가능케 하는 시간이었고, 일상과 인생을 분리해 주는 경계선 같은 것이었다. 한 때는 하루 두 번씩 헬스장을 가는 게 당연했고, 인생의 가장 힘든 순간에는 매일 아침 6시 출근 도장을 찍으며 버텼다. 인생을 견디게 해주는 마지막 안전장치 같은 것이었다.
그 ‘개인적인 것’이 서서히 ‘업(業)’이 되었다. 우연이라기보다, 원래 인생이 그렇다. 한창 술을 마시러 다닐 때는 주변에 바텐더와 술 좋아하는 친구들과 술집 사장님들로 인간관계가 채워져 있었다면, 운동에 몰입하고부터는 운동하는 친구들과 헬스트레이너와 헬스장 관장님들로 주변이 채워져 있었다. 자연스레 인맥을 타 고일로 연결되었고, 전체 일의 50% 정도가 피트니스 산업 관련된 것들이었다(예를 들면 상표권 분쟁인데 손님이 피트니스 업계라든가, 공사 문제인데 골프장 사장님이라든가 이런 것들)
그중 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 헬스 트레이너와 관련된 노무 이슈와 지분 투자로 인란 동업 분쟁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헬스장의 산업구조와 운영방식, 인사제도에 대해 관심을 갖고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법과 조직 사이에서 고민하며 살아오던 내가, 피트니스 산업의 성장과 사람을 돕는 HR이라는 영역에 자연스레 한 발씩 들여놓게 되었던 것이다.
왜 하필 이곳이었을까?
결정적인 이유는, 이 회사가 내 삶의 문장과 같은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꾸준히 운동할 수 있도록 돕고, 인류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에 기여한다.”
처음 이 미션을 읽었을 때, 낯선 구절이 아니었다.
마치 내가 내 삶을 설명할 때 써왔던 단어들이, 회사의 언어로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운동이 몸을 바꾸는 일을 넘어서, 마음을 버티게 하고 삶을 다시 걷게 하는 일이라는 걸 믿는다.
하루 두 번의 운동, 새벽 여섯 시의 출근 전 유산소, 땀으로 겨우 버텼던 어느 인생의 고비들.
그 시간들을 지나며 내가 경험한 건 단순한 체력의 회복이 아니라, ‘살고 싶어지는 마음’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 회사는 그 마음을 산업의 언어로 번역하고 있었다. 시장을 만들고, 제도를 설계하고, 구조를 혁신하면서 말이다.
꾸준히 운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건, 결국 사람의 지속 가능성을 돕는다는 뜻이다. 인간이 자기 삶의 루틴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을 다시 회복하는 힘을 갖도록 한다는 것.
그건 어떤 화려한 서비스보다 근본적이고, 어떤 기능보다 존재론적인 가치에 가까웠다.
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리듬과 체온을 돌보는 일.
육체를 넘어서 마음과 삶의 방식까지 닿는 일.
그 일을, 단지 개인의 취향이나 사적인 루틴으로가 아니라 ‘사람을 구하기 위한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이 회사의 방향성에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나에게 ‘일’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온 것이다.
이 회사였기 때문에 가능했고, 이 미션이었기 때문에 당연했다.
지금 내 주변이 어떤 사람들로 채워져 있는가를 돌아보면, 내가 무엇을 좇고 있는지 역으로 알 수 있다.
오늘 하루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낸 공간에서 나는 누구와 어떤 표정으로 어떤 대화를 나누며 무엇을 추구했는가.
지금의 나는 하루하루 동료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때로는 뼈아픈 충고와 진심 어린 조언을 주고받으며, 고객이 꾸준히 즐겁게 운동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묻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 낙담과 좌절과 비아냥이 아닌, 학습과 성장에 대한 순수한 갈망, 숨도 못 쉬게 바쁜 와중에도 “제가 뭐 도와드릴 것 없어요?”라고 하루에 대여섯 번쯤 물어보는 동료들과 함께 한다.
지금 내 옆과 앞, 뒤는 그런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살면서 한 번도 상상도 못 한, 매일이 그런 순간들이다. 나는 단순히 직업을 바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나를 어디다 갖다 둘 것인지”를 선택한 것이다. 내 주변 환경과 그 사람들을 바꿀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를 어디 둘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것이 인생의 유일한 일탈이었고, 가장 큰 변곡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