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나 소' 출신의 작가입니다

개와 소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by 소율


그 시절 어떻게 ‘글짓기 반’이 되었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담임 선생님이 정해주었는지 내가 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초등(국민) 학교 3학년 때쯤부터 나는 글짓기 반이었다. 학년당 두세 명 정도, 모두 열 명가량의 글짓기 반 아이들은, 말하자면 우리 학교의 글짓기 대표 선수였다. 수업을 마치면 다 같이 모여 한 편씩 글을 썼다. 주기적으로 열리는 대회가 가까워지면 글짓기 반 선생님은 심지어 수업을 빼먹게 하고 연습을 시켰다.


그건 굉장한 특혜에 가까웠다. 선생님 명으로 당당하게 교실 밖을 나갈 수가 있다니. 마치 청포도 사탕을 입에 문 듯한 기분이었다. 무척 모범생이었던 나조차 그런 일탈이라면 언제라도 오케이였다. 수업 중간에 가방을 챙겨 들고 글짓기 반으로 향할 때는 아마 모르긴 몰라도 턱의 각도가 5도쯤 올라갔을 테지. 달콤함의 극치는 글짓기 대회를 하는 날에 맛본다. 당일 수업을 제치는 건 물론이고 대회를 마치면 참석한 아이들 모두에게 크림빵(또는 소보루빵)과 우유를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제과점에서 만든 빵은 평소에 먹을 수 없는 고급 간식이었다. 주어진 주제에 맞게 머리를 굴리며 끄적이는 시간만 견디면 앞뒤로 꿀 같은 보상이 주어지니, 이 아니 좋을 소냐.


그럭저럭 단맛에 길들여져 글짓기를 하던 일상이 달라진 건 고등학생이 되어서였다. 또래보다 조숙하고 시니컬했던 나는, 어느 날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판정을 내린 뒤 (지가 뭐라고), 나름 펜을 꺾(?)었다. 별다른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사춘기 소녀의 변덕이었을까나.


몇 년 후 이오덕 선생님을 통해서 다시 글쓰기와 만났다. 정확히 말하면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 했던 게 이름처럼 ‘글쓰기’가 아닌 ‘글짓기’였다는 것을 알았다. 진짜 글쓰기는 오직 혼자 쓴 일기뿐이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묘하게도 일기는 즐거울 때보다 불행하다고 느낄 때 오히려 잘 써졌다. 아내와 엄마가 되고 며느리라는 경력이 쌓이면서 동시에 흰머리가 생겨났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그렇듯 적지 않은 풍파가 몰려왔다. 일찍 자리 잡은 흰머리는 더욱 늘었다.


마흔 중반, 생에서 가장 큰 위기를 통과하며 쓴 일기장이 몇 권이던가. 눈 뜨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던 그때, 아침나절부터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일기를 썼는데 고개를 들어보면 어느덧 느른한 저녁 햇살이 내려앉곤 했다. 내 평생 그때만큼 절실히 글을 썼던 적은 없었으리라. 그리고 그 일기 쓰기가 나를 살렸다. 자신에게 묻고 답하고 소리치고 흐느끼고 마침내 격려하던 시간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글쓰기는 나를 치료해준 의사였고 괴로움을 나눈 친구였다. 한마디로 마법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때 얻은 힘으로 세계여행(2011년)도 하고 첫 책 『고등학교 대신 지구별 여행(2014년)』도 썼다. 물론 그동안 여러 개의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며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절망에서 나를 건져낸 ‘일기의 시간’이 없었다면 모두 무용지물일 수 있었다. 글짓기를 하던 꼬꼬마 시절 내 꿈은 (당연하게도) 작가였다. 어린 내가 재밌게 읽은 멋진 이야기를 쓰는 동화작가가 되고 싶었다. 머리 굵어졌다고 같잖게 재능을 운운했지만 돌아 돌아 늦은 나이에 나는 여행작가가 되었다. 아마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끝내 꿈을 버리지 않았던 것일지도. 스물아홉에 품었던 여행에 대한 불씨를 십 년이 넘어서야 피워 냈고 열 살 아이가 품었던 소망은 마흔일곱이 되어서야 다른 색깔로 그러나 꽤 괜찮은 모습으로 이루어졌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고작 ‘책 한 권만으로' 작가라는 이름표를 달기는 솔직히 남 부끄러웠다. 누구는 '책을 한 권이라도’ 쓴 게 어디냐고 부러워하기도 했다만. 그러나 계속 쓰고 계속 책을 내지 않으면 스스로 작가라 인정하기 어려웠다. 2018년 4년 만에 두 번째 책 『중년에 떠나는 첫 번째 배낭여행』을 출간했다. 간격은 길었지만, 한결 작가라는 자리에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 후로 2020년, 세 번째 아이 『베트남 소도시 여행』의 출산을 앞두고 있다. 이제야 작가라는 수식어가 딱 붙는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 자리가 어렵다.


예전 글쓰기 교실의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하셨다. “작가가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책을 쓴 사람이 작가다.” 특별한 누군가가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누구라도 책을 쓰면 작가라는 말씀이었다. 시나 소설 같은 순수문학을 해야만 작가로 인정받던 시절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났다. 그럼 에도 ‘여행작가’라고 하면 개나 소나 할 수 있다며 내려다보는 시선을 종종 접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시인이나 소설가보다야 여행작가 되기가 훨씬 수월한 건 사실이니까. 진입장벽이 낮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완전히 맞는 말이라고는 못하겠다. 개나 소가 뭐 어때서? 개나 소나 작가를 할 수 있는 게 바람직한 방향 아닌가? 개나 소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 아닐까? 같은 의미로 개나 소나 음악을 하고 개나 소나 미술을 하는 그런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분명히 밝히는데, 개와 소는 아무 잘못이 없다).


작가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부끄러움은 거의 늘 나를 따라 다닌다. 그건 사실 남들의 하대 때문이 아니다. 날마다 열심히 쓰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자책으로부터 부끄러움이 나온다. 새 생명을 출산하는 시점에서 자신에게 독려와 격려를 하고 싶었다. 이 글은 그런 의미다.


결국 내가 할 일은 확실해졌다. ‘개나 소' 출신의 작가로서 자리에 눌리지 말 것, 또한 작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그저 꾸준히 쓸 것, 그리하여 보다 아름다운 책들을 꿈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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