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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포를 황태채로 변신시키며

by 소율 Jul 15. 2024

우리 집 다용도실에는 황태포가 살고 있었다. 남편과 강원도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사 왔는데 도통 먹게 되지가 않았다. 그나마 한 마리는 내가 맥주 안주로 먹어치워서 남은 게 네 마리. 황태채였다면 손쉽게 반찬을 해 먹었을 텐데. 손질하고 양념에 재워 황태구이를 만들어 먹을 정성이 내겐 없었다. 아들이 성인이 된 후 살림 특히 요리와 멀어진 지 오래였다. 


오늘 아침에 드디어 저것을 처리하기로 결심했다. 주방 바닥에 퍼질러 앉아 가위로 지느러미와 머리, 꼬리를 떼어냈다. 몸통을 한 입 길이로 조각조각 자르고 껍질을 벗겼다. 가시가 있나 손가락으로 훑으면서 세로로 찢었다. 황태포에서 황태채로 변신한 놈들을 물에 살짝 적셔 부드럽게 만들었다. 남편이나 나나 치아가 부실해 딱딱한 밑반찬은 좋아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들기름을 듬뿍 넣은 고추장 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무쳤다. 드디어 애물단지가 맛난 반찬으로 탈바꿈했다.


아이고, 속이 다 시원하네! 다용도실을 열 때마다 몰려오는 찝찝함과 귀찮음에서 이제야 해방되었다. 막상 하면 별 것도 아닌 것을 왜 그리 미루었는가. 아이를 키울 땐 꽤 성실한 주부였다. 새벽에 일어나 매일 새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 도시락을 싸주었다. 그때 너무 열심히 해서 지친 탓일까? 어느새 나는 심각하게 불량한 주부로 살고 있다.


철철이 직접 장아찌와 매실청을 담그고 식혜를 만드는 여자들을 보면 참 부지런하다 싶다. 바른생활 시절에도 난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내 얼굴이 단정한 인상이라 엄청 살림을 잘할 것 같이 생겼다만. 실제의 나는 살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게 분명하다. 아이가 자랄 후천적인 모성이 본성을 살짝 앞질렀나 봄. 지금은 다시 원위치. 


예전에 5반상 이상은 되어야 만족했던 남편도 이젠 주는 대로 먹는다. 살아남을 방법을 뒤늦게 터득한 게야. 바람직한 변신이고 말고. 오늘 저녁밥은 황태채 무침과 (어제 먹고 남은) 된장찌개 예정. 난 그걸로 충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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