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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는여자 Nov 23. 2023

따뜻한 생일

8월의 어느 날, 그날은 아들의 9번째 생일이었다. 연초 올해 아들 생일에는 아들의 친구들을 초대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이 계속되면서 생일파티는 불가능했다. 게다가 아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남편마저 갑작스러운 발령으로 멀리 있었다. 그래서 친정엄마와 가까이 사는 동생 식구들을 불러 생일파티를 하기로 했다.     


생일파티를 위해 미리 사둔 HAPPY BIRTHDAY 글자 풍선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조카가 즐겁게 바람을 불어넣고 있었다. 나는 풍선을 하나씩 베란다 창문에 테이프로 붙였다. 아들은 글자가 하나씩 창문에 붙을 때마다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손뼉을 쳤다.

9번째 생일날

미역국, 간단한 다과 그리고 아담한 생일 케이크를 식탁에 놓았다. 제법 오붓하고 즐거운 분위기의 생일상이 되었다. 아들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생일 축하 노래를 피아노로 쳐 달라고 했다. 피아노 실력이 출중하지 못해 박자를 맞추지 못했지만, 아들은 그런 엄마가 좋은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생일파티가 끝나고 아들은 이종사촌 누나, 형과 놀이터로 달려 나갔다. 베란다 창가에 서서 멀리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들을 보니 작년 내 생일날 기분이 문득 떠올랐다.          


새집으로 이사하고 1년이 조금 지난 때였다. 아직 주변에 익숙하지도 않아 새집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적막함. 매일 창밖을 보고 있을 때면 내 마음을 가득 메우던 느낌이었다.   

  

온통 공사판인 어수선한 뉴타운. 얼마 후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도 허전함에 매일 옛 동네 친구들을 만나러 가자고 졸라댔다. 그나마 기댈 수 있었던 남편까지 갑자기 지방발령이 나면서 내 생활은 순식간에 어수선함으로 가득 찼다. 새집으로 이사 올 때 가졌던 설렘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더 좋은 곳에서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이곳으로 왔는데 어느덧 그 선택을 후회가 뒤덮어 버렸다.      


어린 아들마저 우울함을 느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예전 살던 동네 미술학원을 계속 다녔다. 아들은 미술학원 수업이 끝나면 바로 옆 놀이터에서 옛 동네 친구를 만나 놀았다. 적어도 그때만은 아들의 얼굴에서 허전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놀고 있는 아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서 누가 손을 흔든다. 고향 친구이자 아들 친구인 수민 엄마였다. 얼굴 가득 반가움을 보여주던 수민 엄마가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이곳에 살 때는 서로 집으로 가서 함께 밥을 먹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수민이 집으로 향하다가 만난 성우네까지 세 가족이 모였다.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말할 수 없을 만큼 편했다. 수민 엄마가 미역국과 갓 지은 따뜻한 밥을 내어오며 말했다.     


(수민 엄마) “언니 오늘 생일이죠? 사실 며칠 전에 성우 엄마랑 언니 불러서 밥이라도 먹자고 이야기했었거든요. 언니 가족 이사 가서 얼마나 아쉽던지.”    

 

(성우 엄마) “케이크는 내가 준비했지요.”    

 

그렇게 우리는 소박하게 한 끼를 함께 했다. 밥을 먹고 엄마들은 커피 한잔에 쌓아두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 역시 땀을 뻘뻘 흘리며 즐겁게 놀았다. 어쩌다 받은 생일상에 조금 부끄럽고 민망하기도 했지만 이사 온 이후 가장 가슴 따뜻한 하루였다. 계속 가졌던 허전함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른다.

    

오랜 시간을 가깝게 살며 자연스럽게 친해진 사람들. 그곳에 살 때는 소중함을 전혀 몰랐다. 언제나 그곳에 그대로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떠난 후에야 그 자연스럽고 익숙한 만남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달았다.    

 

복잡한 세상을 사는 현대인들, 과거 농경 사회에서처럼 한 마을에 평생 살지 않기에 누구나 헤어짐과 만남을 당연하게 느끼며 살아간다. 영원한 만남은 없다. 그래도 진정 마음으로 나눈 정과 따뜻함은 언제나 가슴 깊이 여운을 남긴다.      


소박하게 내 생일파티를 하며 보냈던 수민 가족, 성우 가족 모두 지금은 서로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오늘도 우리는 서로 안부를 묻고 다음 만남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사람 때문에 피곤하고, 사람 때문에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그 피곤함과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사람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함이었기를, 또 누군가에게는 치유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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