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이 들었음을 느낄 때
뾰족하게 날이 선 엄마보다 같이 깨어있는 엄마이길
나이가 들어감을 실감할 때가 있다. 어제와 오늘이 그리고 오늘과 내일이 비슷비슷하게 느껴질 때이다.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시큰둥해질 때, 나는 나이가 들었음을 느낀다. 비단 시간에 대한 느낌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두 볼을 스치는 바람을 느낄 때, 익숙한 버스 정류장을 지날 때, 매일 걷는 아파트 화단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내가 늙었구나 라는 생각에 짧은 탄식을 내뱉는다. 아, 이렇게 오늘 하루 또 늙어가는구나.
뭉툭해지고 무뎌진 나와는 달리 우리 20개월 아들은 항상 반짝반짝 빛나고 열려있다. 그 아이의 똘망한 두 눈이, 조그만 콧구멍이, 동그란 두 귀가 그리고 함박웃음을 짓는 귀여운 입꼬리가 항상 열려있다. 작은 것에도 감탄이 연발이고, 매일매일이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 투성이다. 오늘은 어디를 데려갈까 하는 것은 그저 엄마만의 고민일 뿐 녀석은 공원에 가든, 도서관에 가든, 그저 아파트 놀이터만 뱅뱅 맴돌아도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오늘 아침 산책에서 포크레인 두 대를 만났다. 여름 동안 아파트 앞 도로의 인도 확장 공사를 한다며 보도블록을 들어내고 있었다. 자주 이용하던 버스 정류장과 인도는 벌써 흙투성이가 되었다.
"8월 말까지 공사를 하면 당분간 꽤 불편하겠네. 많이 다니는 길인데 흙길이 되어버려서 별로인데..."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고 걱정스레 공사현장을 지켜보는 나와는 달리 아이는 두 팔을 휘저으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포케케, 포케케!! 엄마 포케, 아가 포케! 큰 차! 큰 차!"
아이를 안아 올리고는 가만히 공사현장을 다시 보았다. 우리 아이를 위한 3종 선물세트나 다름없는 광경이었다. 작은 포크레인은 보도블록을 드러내 큰 포크레인의 삽에 담아주었다. 큰 포크레인에 블록이 다 차면 커다란 덤프트럭으로 블록들이 옮겨졌다. 이리저리 손짓을 해대는 공사장 인부들과 버스를 타려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아이는 들썩들썩 춤을 추었다. 한참 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아이는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두 팔을 휘둘러댔다. 두 발을 연신 콩콩거리며 공사현장을 지켜보았다.
엄마였기 때문일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얼른 나도 두 팔을 들어 땅을 파고 블록을 담는 시늉을 냈다. 입을 크게 벌려 감탄했다. 아들과 나는 한참 동안 길 건너 횡단보도에 서있었다. 마치 멋진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눈빛을 하고서.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은 공사현장이 아니라 우리 둘을 구경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참 부지런하다는 소리도 들었다. 일어나자마자 산책을 나서자는 성화에 씻기지도 못한 우리 아들. 그래, 이제 집에 들어가도 되겠니?!
무뎌진 내 마음이 뾰족해지고 예민해 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살다 보니 뭉툭한 것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상 날이 선 상태로 사는 것이 때론 피곤하기도 하다는 인생의 진리. 사실은 그렇게 피곤한 상태로 꽤 오랫동안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이젠 좀 둥글둥글하게 살아야지 하고 마음먹었는데, 녀석이 매일매일 나의 잠긴 마음을 통통 두드린다.
다시 날카로워지기보다 아들이 커가는 속도에 맞추어 나도 딱 그만큼 열려있기를 바라본다. 더 많이도 아니고, 더 적게도 아닌 딱 그만큼. 같이 신기해하고, 같이 좋아하고, 같이 즐길 수 있도록 속도를 맞추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은 비록 아이의 감탄사를 들으며 다시 되돌아보는 엄마이지만, 곧 같은 곳을 보면서 함께 소리 지를 수 있는 엄마이기를 바라본다.
집에 들어온 녀석은 거실 매트 위로 콩콩 뛰어서 올라오더니 바닥에 머리를 박고 어설픈 앞구르기를 했다. 그리고는 양 손에 티라노를 들고 또 우와~를 연발했다. 아빠 티라노와 형아 티라노라고 내게 소개도 시켜줬다. 크아앙~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더 크게 벌려 티라노 흉내를 내며 아이를 잡으러 갔다. 거실에는 여느 아침의 공룡 추격전이 펼쳐졌다. 이렇게 우리의 아침이 또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