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회에의 은유
진격의 거인 속 파라디섬은 단순히 “섬나라” 일본의 지리적 특징을 빗댄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일본이 근대화 과정에서 만든 독자적 국가 모델과 권력구조, 그리고 그 내부의 긴장과 모순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서구 열강에 맞서기 위해 급진적인 근대화를 선택했다. 봉건제를 해체하고 중앙집권을 확립했으며, 국민군과 보편적 의무교육을 도입했다. 이는 국가가 국민을 ‘근대적 주체’로 조직화하면서도 철저히 통제하는 모델이었다. 이 과정에서 옛 봉건영주(다이묘)나 사무라이 계급은 자신들의 특권을 박탈당하고 무장 반란을 일으켰지만(사가 반란, 사츠마 반란 등), 메이지 정부는 근대적 국민군과 중앙 관료제의 힘으로 이들을 진압하며 권력을 공고히 했다.
이런 역사적 맥락은 파라디섬의 통치 구조와 잘 맞아떨어진다. 벽 안에서 살아가는 국민은 외부를 ‘악마’로 규정하고 두려워하도록 교육받는다. 거짓된 역사와 기억이 레이스 가문에 의해 독점되고 국민에게 주입된다. 이것은 메이지 일본이 국민교육을 통해 천황 충성과 애국심을 주입하고, 검열과 언론 통제로 비판을 억눌렀던 것과 겹친다.
특히 메이지 정부는 서구 제도를 도입해 국가 경쟁력을 높였지만, 전통적 상징인 천황제를 국가 통합의 핵심으로 유지했다. 헌법상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면서도 실제 권력은 중앙 관료와 군부가 독점했고, 천황은 국민적 충성심을 결속시키는 상징으로 기능했다. 파라디섬에서도 ‘가짜 왕’이 존재하지만 실질적 권력은 기억을 지배하는 레이스 가문이 쥐고 있으며, 국민은 이 상징질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메이지기의 기득권층 저항도 흥미로운 평행선을 그린다. 사무라이나 다이묘는 특권 박탈과 근대화를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켰으나 결국 진압되고 국가에 흡수됐다. 파라디섬 내에서도 “헌병”과 “헌정의회”처럼 형식적 대의기관이 존재하지만, 실질 권력은 제한적이고, 내부 저항은 철저히 통제된다. 거짓된 역사로 국민을 단결시키면서 내부의 반발을 흡수하거나 제거하는 구조가 메이지 일본과 닮아 있다.
뿐만 아니라, 전후 일본은 패전 후 연합군 점령으로 강제적인 민주주의 헌법을 받아들였다. 국민주권, 평화주의, 기본권이 명문화되었지만, 정치적 실천은 관료주의와 안정 지향적 문화가 지배했다. 자민당이 1955년부터 오랫동안 집권하며 계파 정치, 세습, 농촌 기반 조직을 유지했고, 국민들도 전쟁의 혼란을 경험한 뒤 안정을 중시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야당은 민주당의 단기 집권 사례처럼 대안 세력으로 자리 잡지 못했고, 정치적 경쟁은 약화되었다.
파라디섬은 이러한 현실을 극단적으로 풍자한다. 국민을 외부의 위협으로 결속시키며 내부 비판을 억누르고, 국민의 기억과 서사를 국가가 독점하고 재생산하는 구조. 내부의 체념과 냉소, 변화에 대한 저항. 나아가 에렌이라는 인물이 이를 깨뜨리려 할 때 나타나는 폭력적, 파괴적 귀결. 일본의 근대화가 외부 압력과 내부 통제를 통해 급속히 추진된 것처럼, 자유를 향한 분출이 통제와 억압을 넘어 극단적 폭력으로 치닫는 위험성까지 보여준다.
이 은유는 단순히 일본의 역사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권력은 늘 안전과 통합을 명분으로 개인의 자유와 비판을 억누르려 한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진실을 은폐하고 역사 해석을 독점하며, 국민적 정체성을 편의적으로 재구성하는 메커니즘은 보편적이다.
진격의 거인은 파라디섬이라는 장치를 통해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의 근대화 과정, 기득권과 저항, 전후 민주주의의 불완전성, 자민당의 장기 집권까지를 상징적으로 재현한다. 그것은 일본 사회가 직면한 질문을 던진다. 안정을 위해 자유를 희생할 것인가? 통제된 기억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벽을 허물고 진실을 마주할 것인가?
그리고 이 질문은 일본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직면한 보편적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