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 사용 - 수리 - 폐기의 과정
아웃도어 장비와 의류는 그저 기능을 제공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몸을 감싸고, 자연 속에서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며, 때로는 우리의 한계를 시험하게 만드는 동반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물건들의 전 과정을 자주 잊곤 합니다. 매장에서 만나는 순간만 기억할 뿐, 그것이 어떤 자원에서 출발해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 그리고 우리의 손을 떠난 이후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눈감습니다. 장비의 생애주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소비의 책임을 자각하는 일이며, 자연과 사회 속에서 내가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를 묻는 일이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제작 과정
장비의 생애는 원료 채취에서 시작됩니다. 합성섬유는 석유에서, 천연섬유는 땅에서 길러진 면화나 양의 털에서 옵니다. 석유가 정제되어 폴리에스터나 나일론 실로 변하고, 면은 농약과 물을 거쳐 흰 솜으로 자라납니다. 그 후 방적, 직조, 염색, 방수·발수 가공을 거쳐 우리가 아는 옷감이 됩니다. 이 과정에는 막대한 에너지와 화학물질이 투입되며, 생산지의 노동자와 지역 사회에 직접적 영향을 미칩니다.
예컨대, 불소계 화합물은 방수 성능을 높이지만 분해되지 않아 토양과 물에 남습니다. 면 재배는 전 세계 농업용수의 큰 비중을 차지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물 부족의 원인이 됩니다. 즉, 재킷 하나가 매장에 걸리기까지 이미 수많은 환경적·사회적 비용이 지불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파타고니아가 재활용 섬유를 확대하고, 유기농 면을 도입하며, “Don’t buy this jacket”이라는 광고로 과소비를 경고했던 것은 단순한 브랜드 이미지가 아니라 근본적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실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건을 ‘나의 서사’로 만드는 사용의 과정
장비는 사용될 때 비로소 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현대의 소비 문화는 종종 ‘사용’보다 ‘소유’에 집중합니다. 새것을 빠르게 사고, 조금만 낡아도 다른 것으로 교체합니다. 하지만 아웃도어 장비의 진정한 가치는 시간과 경험 속에서 빛을 발합니다.
필요한 것만 가지고, 오래 사용하며, 그 과정에서 물건 안에 나의 이야기를 쌓아가는 것. 이것이 소비의 본질을 넘어서는 길입니다. 지퍼가 닳아있는 재킷은 폭풍우를 견뎌낸 흔적일 수 있고, 흠집 난 배낭은 수많은 산행을 함께한 증거가 됩니다. 결국 물건은 단순한 기능적 도구가 아니라 나의 서사를 담는 기록자로 변모합니다.
수리와 재사용은 관계를 이어가는 기술이다.
물건이 낡아간다는 것은 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국면의 시작입니다. 파타고니아의 ‘Worn Wear’는 이 철학을 실천적으로 보여줍니다. 찢어진 옷을 고쳐 다시 입을 수 있게 하거나, 필요 없는 장비를 중고로 되팔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는 단순히 친환경적이라는 수식어로 끝나지 않습니다. 수리는 물건과 나의 관계를 연장시키는 행위이며, 한 물건이 더 많은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시간을 선물하는 행위입니다.
국내의 중고장터 역시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단순히 ‘싸게 사는 법’이 아니라, 자원의 수명을 늘리고 물건의 생애를 존중하는 문화입니다. 실제로 저는 오래 입은 재킷의 지퍼를 수선해 다시 입으면서, 새것에서는 얻을 수 없는 감각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손에 익은 무게감, 낡음이 주는 신뢰. 이것은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물건과의 유대입니다.
끝맺음의 책임
아무리 애써도 물건은 결국 수명을 다합니다. 그러나 폐기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선택의 순간입니다. 단순히 쓰레기로 버릴 수도 있지만, 재활용 센터를 통해 원단이나 금속 부품을 다시 자원으로 환원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제도와 기술은 아직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인이 재활용을 선택하는 순간, 순환을 향한 작은 길이 열립니다.
나의 중심
장비의 생애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하나의 질문에 닿습니다. “나는 물건을 어떻게 대하는가?” 이는 곧 “나는 자연을, 그리고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필요한 것만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을 고쳐가며 오래 쓰는 것, 유행과 관계없이 자신의 중심을 지키는 것.
이는 단순히 환경을 위한 선택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절제하고 성찰하는 과정이며, 물건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소비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때, 나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고, 타인과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결국, 오래도록 곁에 머문 물건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숨결이 깃든 동반자이며, 나의 시간을 기억하는 증인입니다. 우리는 소비자가 아니라 관리자로서, 물건의 생애를 함께 짊어지는 존재입니다. 작은 배낭 하나의 생애주기가 곧 우리의 삶과 사회의 방향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에게 오래 남아 있는 물건은 무엇입니까? 그 물건 안에는 어떤 시간이,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