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선포 이후 우리 사회는?
계엄이 선포된 지 1년이 지났다. 표면적으로는 정국이 일상으로 돌아온 듯 보이지만, 그 기간 동안 드러난 균열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박정희 사망 이후 다시 등장했던 계엄은 다시 한번 한국 사회의 깊은 구조를 드러냈다. 이번 계엄 역시 개인 권력의 연장을 겨냥한 친위적 쿠데타 시도로 평가되며, 시간이 흘러 공개되는 정황들은 그것이 상당히 치밀하게 준비된 사건이었음을 시사한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가 있기 전 이미 주요 거점에 병력이 배치되었고, 특정 정치인과 언론인 명단이 사전에 작성되었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즉흥적 대응이 아니라 사전 기획된 권력 장악 시도였음을 보여준다.
이 사건이 남긴 충격은 단순한 정치적 파동을 넘어 사회 전체의 균열로 확대되었다. 계엄의 배경을 둘러싼 입장은 갈린다. 한쪽은 이를 헌정 질서를 위협한 명백한 내란 시도로 규정하고, 일부 극단적인 쪽은 정치적 혼란에 대응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주장한다. 이 두 해석 체계는 상호 배타적이며, 어떤 중간 지점도 형성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한국 사회는 동일한 사건을 두고 완전히 다른 현실을 살아가는 집단으로 분리되어 있다.
정치권 내부의 움직임도 이 분열을 재확인하게 만든다. 내란 가담 세력에 대한 단죄는 사법 절차를 통해 진행되고 있지만, 이 과정은 법적 책임 규명을 넘어 정치적 정당성 확보의 장으로 전환되고 있다. 야당은 혼란스러운 채로 탄압을 주장하고, 여당은 민주주의 회복의 서사로 각각 재구성하며, 사건의 본질은 진영 논리에 흡수된다. 과거 전두환의 신군부 쿠데타 이후에도, 노태우 정권 이후에도, 권력 전환기마다 유사한 패턴이 반복되어 왔다. 진영 대결의 주제로 환원되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특성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중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사건 이후 극우 세력이 더욱 선명하게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보수 진영 내부의 분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일부 정치인들은 계엄을 옹호하거나 최소한 이해 가능한 조치로 포장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이념 구도는 더 좁아지고, 정치적 언어는 전선을 기준으로 재편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보수층의 합리적 중간 지대는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한국 사회가 안착된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안정적으로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를 형성할 능력을 충분히 확보했는지 묻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계엄 사태는 단발성 예외가 아니라, 여전히 제도적 취약성과 정치문화의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권력이 위기에 처했을 때 비상조치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 국가 폭력이 동원될 수 있는 구조적 조건, 정보의 독점과 판단의 불투명성 같은 문제는 여전히 완결되지 않았다. 제도가 권력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제도를 우회하거나 무력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우선 제도적 차원에서 비상조치에 대한 견제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계엄 선포의 요건과 절차를 더 엄격하게 규정하고, 국회의 해제 권한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또한 군과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고, 권력의 사적 동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사법적 차원에서는 단죄가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사실 관계 규명과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독립적 조사 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제도 개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문화와 사회적 신뢰의 부재다. 극단적 진영 논리가 지배하는 한, 어떤 제도도 쉽게 무력화될 수 있다. 시민사회는 정치권의 극화를 견제하고, 중간 지대를 확보하며, 사실에 기반한 논쟁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언론은 진영 논리를 재생산하기보다, 사실 검증과 맥락 제공에 집중해야 한다. 교육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비판적 사고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비관적이다. 이런 변화는 단기간에 이루어지기 어렵고, 정치권에 그런 의지가 없다. 역사적으로 한국 사회는 위기 이후에도 근본적 변화보다는 일시적 봉합을 선택해 왔다. 이번에도 시간이 지나면 계엄은 잊히고, 구조적 문제는 다음 위기를 기다리며 잠복할 가능성이 크다.
계엄 이후 1년은 한국 사회가 크게 바뀐 시간이라기보다, 기존에 쌓여 있던 취약성이 표출된 시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분열의 구조는 더욱 선명해졌고, 진영 대립은 이념적 극화를 통해 강화되고 있다. 정치적 책임의 문제와 제도적 안정성, 사회적 신뢰 회복은 모두 아직도 미완이다.
결론은 단순하다. 계엄은 끝났지만, 그 후유증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리고 이 진행형이 어디로 향할지는, 우리가 지금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