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는 요리가 아닌 욕망을 다룬다.

과정없는 즉각적인 쾌감의 연속

by 우주사슴

이 방송을 보고 있으면 배가 고프다기보다 감각이 빠르게 예민해진다. 시각과 청각이 먼저 반응하고, 판단은 그 뒤를 따라온다. 이것은 식욕의 자극이라기보다는, 즉각적인 쾌감에 반응하도록 설계된 시청 경험에 가깝다.

흑백요리사에서 요리는 전 과정이 아니라 결과 중심으로 재편집된다. 재료를 이해하고 실패를 겪으며 판단을 수정하는 시간은 축약되고, 완성 직전의 장면과 평가의 순간이 전면에 배치된다. 과정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과정은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분위기의 배경으로 밀린다. 요리는 이해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반응을 유도하는 이미지로 기능한다.

이 지점에서 시청자의 위치가 달라진다. 시청자는 요리를 분석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감각적으로 반응하는 쪽에 가깝다. 왜 이 선택이 옳았는지보다, 얼마나 놀라운지와 누가 이겼는지가 먼저 들어온다. 이해가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해는 사후적으로 따라오며, 판단의 중심에는 감각 반응이 놓인다.

경쟁 포맷은 이 구조를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흑과 백, 네임드 고수와 재야 언네임드라는 구분은 요리사를 입체적인 개인이 아니라 역할로 정렬한다. 요리는 여전히 이야기의 중심에 있지만, 그 역할은 변화한다. 설명의 중심에서 결과를 정당화하는 장치로 이동한다. 승패가 먼저 제시되고, 요리는 그 결과를 납득시키는 근거로 배치된다.

이때 소비되는 것은 개별 요리의 맛이라기보다 쾌감의 흐름이다. 만족은 빠르게 도달하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대신 다음 장면으로, 다음 대결로 이동하게 만든다. 이는 포만을 목표로 한 식사라기보다, 짧은 만족이 반복되도록 설계된 소비 방식에 가깝다. 반응의 밀도는 높아지고, 여운은 짧아진다.

이 구조는 흑백요리사만의 것은 아니다. 유사한 방식은 이미 짧은 영상 플랫폼, 자극적인 썸네일,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여러 경쟁 리얼리티에서 반복되고 있다. 흑백요리사의 특수성은 이 방식을 ‘요리’라는 비교적 안전하고 보편적인 욕망의 대상에 적용했다는 점에 있다. 음식은 설명 없이도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이 구조는 특히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이 점에서 흑백요리사는 미식 자체를 확장하기보다는, 미식을 빠르게 소비 가능한 형태로 압축한다. 깊이는 낮아지지만 반응 속도는 빨라진다. 요리는 사유의 대상이라기보다 감각을 즉각 호출하는 매개가 된다.

이것을 문제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제작자든 시청자든, 이를 전통적인 의미의 요리 프로그램으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우리는 요리를 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욕망이 어떻게 자극되고 관리되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방송을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보는 경험과, 그 구조를 의식하며 보는 경험은 서로 다른 정보를 제공한다. 전자는 쾌감의 리듬을, 후자는 그 리듬이 설계된 방식을 드러낸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두 경험이 동일하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지점에서 흑백요리사는 하나의 사례가 된다. 요리라는 외피를 썼지만, 실제로는 욕망이 편집되고 유통되는 방식을 비교적 투명하게 드러내는 사례다. 그리고 이 방식은 특정 프로그램에 국한되지 않고, 동시대 미디어 전반에서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흑백요리사는 요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무엇에, 어떤 속도로,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길들여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점에서 이 방송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현재의 미디어 소비 환경을 읽어낼 수 있는 하나의 징후로 기능한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흑백요리사는 요리가 아닌 욕망을 다루는 프로그램이다. 그 욕망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분석의 대상이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리고 왜 그것에 쉽게 반응하는지를 인식하는 순간, 이 방송은 소비 대상에서 관찰 대상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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