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으로 접근해 보자.
한국 사회에서 흔히 ‘지역감정’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곱씹어 보면, 지역 간의 차이는 본래 단순한 지리적·문화적 다양성에서 출발했다. 사투리, 음식, 기후, 풍습 등은 각 지역의 고유성을 형성했다. 이런 차이는 갈등이 아니라 교류와 상호 보완의 기반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언제, 왜, 어떻게 단순한 차이가 적대와 차별, 정치적 동원으로 변했을까?
지역감정은 감정 그 자체라기보다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만들어진 구조적 산물이다. 권력과 자원이 편중되는 과정을 통해 제도와 담론이 이를 정당화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 전반에 내면화됐다.
일제강점기: 편향적 개발과 수탈의 심화
본래 지역 간의 차이는 지리적 여건과 생활양식의 다양성에서 비롯되었다. 중앙과의 거리, 교통, 자연환경에 따른 경제활동의 차이가 있었지만, 이러한 차이는 곧장 적대적 감정이나 구조적 차별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일제강점기는 지역 간 불균형을 새로운 차원으로 고착시켰다. 식민지 수탈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경성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산업·교통축이 집중적으로 개발됐다. 영남 남부는 철도와 항만, 산업시설이 집중되며 산업화의 초기 혜택을 일부 누렸다. 호남은 대규모 지주제가 강화되며 일본으로의 쌀 수탈 중심지로 전락했다. 자원은 착취되되 투자와 근대화는 제한적이었다. 강원도는 석탄 같은 일부 자원이 개발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소외됐다. 충청도는 일제가 남북을 통제하기 위한 행정·군사적 완충지대 정도로 기능했을 뿐, 본격적 투자의 대상은 아니었다. 이런 불균형은 단순한 경제적 차이를 넘어, 지역적 위계와 불만을 심화시켰다.
해방과 분단: 발전축의 편향과 전략적 선택
해방 이후 남북 분단과 전쟁은 한반도의 발전축을 더욱 경직되게 만들었다. 수도권에서 영남으로 이어지는 경부축이 국가 재건과 안보 전략의 핵심 경로로 자리 잡았다. 국방, 물류, 산업이 집중적으로 배치되며 해당 축은 경제적·정치적 권력의 중심이 되었다. 강원도는 북한과 맞닿은 접경지로서 안보의 전초기지로 규정되며 군사적 논리 하에 통제되고 개발되었다. 충청도는 행정과 군사 중심지로서 교통의 허브가 되었지만, 적극적 투자는 뒤따르지 않았다. 호남은 전쟁 피해가 중첩되면서 개발에서 더욱 소외되었다.
박정희 시대: 지역감정의 본격적 구조화
박정희 정권은 지역감정을 구조화한 결정적 시기였다. 경부고속도로와 중화학공업단지는 영남을 축으로 설계되었고, 수출지향 공업화 전략이 영남의 도시와 산업단지를 성장의 거점으로 삼았다. 영남권은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에서 집중적인 수혜를 받았다. 반면 호남은 개발에서 상대적으로 배제됐다. 충청도는 선거 전략상 ‘스윙 지역’으로서 그때그때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개발 약속과 예산을 받았다. 강원도는 국가안보 담론 속에서 군사적 충성심이 강조되며 보수적 성향이 고착되었다. 지역감정은 감정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선택적 투자와 배제의 결과였다.
군부독재 시기: 폭력적 진압과 감정의 심화
전두환·노태우 시기의 군부독재는 지역감정을 더욱 노골적으로 정치에 활용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폭력적 진압은 호남의 소외와 피해의식을 극단적으로 각인시켰다. 동시에 정권은 영남권의 결집을 전략적으로 강화해 지지기반으로 삼았다. 충청도는 정권 교체기의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며 각종 개발 약속을 받고 균형자 이미지를 유지했다. 강원도는 안보 논리와 군사투자를 통해 보수 정당의 충성스런 지지기반으로 자리 잡았다. 지역 간 차이는 감정적 혐오와 정치적 거래가 맞물려 제도적으로 강화되었다.
민주화 이후: 구조의 관성과 재생산
1987년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었지만 지역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역 기반 정당체계가 고착되었다. 선거마다 지역정체성이 전략적으로 동원되었고, 개발예산과 인프라는 여전히 정치적 거래의 수단이었다. 영남과 호남은 서로 견고한 지지기반을 유지했고, 충청도는 실리적 판단을 내리는 ‘균형자’ 이미지로 남았다. 강원도는 안보담론과 보수정당의 약속에 의존해 색을 유지했다. 지역감정은 권력과 자원의 불균형이 만들어낸 구조적 기억이자 반복되는 선택의 습관이 되었다.
최근의 변화와 가능성
최근에는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면서 전통적 지역갈등이 수도권 대 비수도권 갈등으로 재편되는 조짐을 보인다. 수도권이 기회와 인구를 빨아들이면서 지역 간 균형발전이 새로운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젊은 세대는 지역정체성보다 개인적 조건과 계급적 불만에 더 민감하다. 하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지역정체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표심을 동원한다. 지역감정은 약화되기도 하지만, 필요할 때 되살아나는 정치적 자원으로 남아 있다.
결국 지역감정은 단순히 ‘사람들이 미워해서’ 생긴 게 아니다. 권력과 자원의 편중, 정치적 이해관계가 만들어낸 구조적 산물이다. 강원도와 충청도도 예외가 아니다. ‘안보의 외곽’, ‘균형자·캐스팅보터’라는 역할이 정치권력의 계산 속에서 부여된 것이다.
지역감정을 해소한다는 것은 단순히 감정을 달래는 문제가 아니다. 권력구조와 자원 배분을 다시 설계하고, 균형발전과 자치권을 실질화하며, 정치가 지역을 동원하는 방식을 극복해야 한다.
지역감정은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온 구조이자,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