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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Oct 08. 2022

10월 8일 박경혜의 하루

엄마의 엄마

엄마에게는 엄마는 있었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는 외할머니를 만난 적이 없었다. 내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총 세 분이었다.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는 아주 먼 곳에 사셨기 때문에 볼 일이 거의 없었다. 그에 비해 외할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계셨고 엄마는 나를 데리고 자주 자신의 아버지 집에 놀러 가셨다. 

외할아버지는 아주 인자한 분이셨다. 유일한 손주인 나를 귀여워하셨고 내 응성도 잘 받아주셨다. 부모님은 내가 외할아버지 집에만 가면 버릇이 없어진다고 걱정했지만 외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아껴주셨다.

외할아버지 집에는 항상 큰 사진이 하나 걸려있었다. 엄마를 닮은 어떤 사람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엄마는 외할아버지 집에 가면 가끔 그 사진을 보고 눈물을 훔치셨다. 나는 그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를 몰랐지만 그저 엄마가 우는 것이 슬퍼서 따라 울었다.

외할아버지 집은 내가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만 갈 수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여야 하는 그해 겨울에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처음으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잃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를 알았다. 그리고 비로소 엄마가 그때 어떤 마음으로 울었는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스무 살과 스물다섯 살에 각각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도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두 분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내게도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아빠는 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의 부모님을 보내드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빠가 조금 냉정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방 안에서 혼자 크게 울고 있는 아빠의 모습을 봤을 때, 나는 감히 내가 다른 사람의 슬픔을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이후로 할머니나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올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엄마 이야기는 달랐다. 엄마는 자신의 엄마 이야기를 가끔 내게 하시곤 했다. 외할머니를 만난 적이 없는 나에게는 아주 머나먼 조상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엄마도 자신의 엄마에 대한 기억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열 살 때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였는데 어느 날 차에 치여 돌아가셨다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그날 충격으로 한동안 차를 무서워하셨고 나이가 들어서도 차를 잘 타지 않으려고 하셨었다.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아직까지도 운전면허를 따지 않고 있다. 그래서 불편한 것이 많았지만 엄마는 엄마 나름데로의 생활 방식이 있었다. 

사실 엄마는 엄마 노릇을 잘하지는 못했다. 엄마는 다른 집의 엄마들하고는 달랐다. 나에 대해서 무관심했으며 내가 힘들 때 나를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를 몰랐다. 그렇다고 나에 대해서 아예 방임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 엄마는 엄마가 추구하는 가치를 나에게 강요했는데 그게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나는 엄마의 그런 태도가 너무 헷갈렸다. 어느 날은 내가 딸이 아닌 것처럼 내버려두었고 어느 날은 마치 나를 자신의 인형처럼 대하려고 했다. 사춘기가 되어서는 그런 엄마에게 화도 냈지만 엄마를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점차 엄마와 대화를 하지 않기 시작했고 우리 모녀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 

어느 날, 자고 있는데 목이 너무 말라 부엌으로 가던 도중 부엌 한구석에서 쭈그리고 있는 엄마를 봤다. 엄마는 무언가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그것은 외할머니의 사진이었다. 엄마는 자신의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엄마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어 엄마에게 큰 소리를 내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엄마는 나를 헷갈리게 했지만 나는 조금씩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잘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나는 성인이 되었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우리 모녀는 더욱 대화를 할 일이 없어졌다. 엄마는 원래도 그랬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느라 늦게 집에 들어오셨고 나도 대학생활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점차 귀가 시간이 늦어졌다. 아빠는 그런 나를 걱정했지만 엄마가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가도 항상 엄마는 그랬다. 유일하게 엄마가 나에게 큰 관심을 보인 때는 있었다. 바로 며칠 전, 사랑하는 사람을 부모님께 소개해드렸을 때였다. 내가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신경도 안 쓰던 엄마는 그날따라 남자 친구에게 지나칠 정도로 많은 것을 물어봤다. 나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엄마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 친구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엄마한테 이제 와서 엄마 노릇을 하려고 하는 것이냐며 크게 소리를 쳤다. 아빠는 엄마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며 크게 화를 내셨다. 나는 너무 분해서 그 길로 집으로 나와 남자 친구 집으로 갔다. 

며칠 동안 나는 남자 친구 집에서 지냈다. 남자 친구는 아빠한테 따로 전화해서 자신이 잘 설득해서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했지만 나는 바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남자 친구는 난처한 표정으로 며칠 동안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결국 나는 남자 친구와 함께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아빠는 집으로 돌아온 나를 혼내지 않고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식탁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아빠는 엄마가 내가 돌아온다고 해서 새벽부터 나를 위한 밥을 차려주셨다고 나에게 말했다. 엄마는 돌아온 나에게 별 말은 하지 않고 계속해서 음식을 하고 계셨다. 나는 손을 씻고 말없이 엄마 옆에 서서 음식을 하시는 것을 도와드렸다. 

사실 엄마는 나에게 대단한 음식을 해주신 적은 없었다.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수준의 간단한 반찬만 해주셨고 그 외에는 반찬가게에서 사 온 것들로 밥을 때웠다. 그래서 오늘 엄마의 행동은 굉장히 의아한 것이었다. 

엄마의 밥은 무척 맛있었다. 엄마가 이런 음식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남자 친구는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노력했고 나도 일부러 엄마의 밥이 맛있다며 엄마를 칭찬하려고 했다. 아빠는 평소보다 더 크게 웃으시면서 엄마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엄마는 말없이 음식만 먹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남자 친구가 집으로 간다고 하자 아빠는 자신이 예비 사위를 데려다주겠다며 남자 친구를 따라나갔다. 엄마와 나만의 시간을 벌어주려고 했던 것 같다. 엄마와 둘만 남은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엄마를 쳐다봤다. 그러자 엄마는 말없이 나를 안아주셨다. 엄마가 나를 안아준 것은 어릴 때 이후 처음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나 역시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우리 모녀는 한동안 서로를 안고 울었다. 긴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과 우는 행동만으로 충분했다. 

잠시 후 우리는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에게 무엇이 섭섭했고 무엇이 미안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엄마는 자신이 엄마의 노릇을 잘하지 못한 것 같아서 항상 미안했다고 하셨다.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엄마는 어렸을 때 자신의 엄마를 잃어서 또래 아이들과 달리 엄마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한없이 다정했던 외할아버지는 사실 엄마의 아빠로서는 굉장히 냉정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엄마를 항상 혼내는 역할이었고 나와는 달리 할아버지, 할머니도 없던 엄마는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엄마는 그런 환경에서 자라왔고 하루빨리 자신의 아빠에게서 멀어지는 날을 상상했었다. 마침내 결혼을 통해 할아버지와 멀어졌을 때, 엄마는 속으로 너무 기뻤다. 하지만 우리 집과 외할아버지 댁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완전한 자유를 꿈꾸던 엄마의 계획은 실패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고 자신에게 대하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인자한 미소로 나를 이뻐하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배신감을 느꼈다. 그때 처음으로 엄마는 자신의 엄마가 살아있었다면 자신도 엄마의 사랑을 느끼면서 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엄마는 외할아버지 집에 있는 외할머니의 사진을 보고 울었다.  

엄마는 자신은 자식이 태어나면 사랑으로 키우려고 했지만 어떻게 아이를 사랑으로 키울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은 엄마의 아빠처럼 자식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어쩔 때는 나를 방임하셨고 어쩔 때는 나를 강하게 누르려고 하셨다. 엄마는 나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몰랐다.


아빠가 굉장히 늦게 들어온 덕분에 우리 모녀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엄마가 완전히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엄마의 심정이 무엇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는 되었다. 나는 엄마에게 그럼 왜 남자 친구한테는 그리 관심을 가졌냐고 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웃으면서 “네가 변변찮은 놈 만날까 봐”라고 말하셨고 나도 어이가 없어서 따라 웃었다. 엄마로서 엄마는 엄마의 역할을 다한 것뿐이었는데 그걸 보고 화를 낸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그리고 나는 다시 엄마를 안고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는 아까와는 달리 눈물은 안 흘렸지만 나를 더욱 포옥 안아주셨다. 엄마의 품은 무척 따뜻했다. 

모녀의 이야기는 밤을 새우도록 계속되었다. 나는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잠을 자며 엄마에게 엄마의 엄마에 대해서 물었다. 엄마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자신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엄마는 오늘따라 소녀처럼 보였다. 나는 다시 소녀로 돌아간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며 엄마의 엄마 이야기에 집중했다. 어린 시절에는 머나먼 조상처럼 느껴지던 외할머니의 이야기는 오늘은 나의 가장 소중한 가족 이야기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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