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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Oct 11. 2022

10월 11일 정병규의 하루

경쟁사

얼마 전 직장인들이 투자를 공부하는 모임에 가입했다. 경제관념이 워낙 없이 쓰기만 하는 나였기에 돈을 모으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사실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기에 이런 모임에 가입하는 것도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다.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한 끝에 나는 모임에 가입했다. 그리고 오늘이 첫 모임일이었다.


“평일인데도 다들 모여줘서 감사합니다. 저는 모임을 이끄는 유승하입니다. 00 기업에서 사업기획 쪽 업무를 맡고 있고 나이는 이제 35살입니다. 제 포트폴리오는 천천히 보여드릴게요. 일단 서로 인사하고 무슨 일하는 지도 말씀해주세요. 그래야 서로 이야기할 것이 많아지더라고요. 서로 정보도 교환할 수도 있고요.”


모임을 이끄는 유승하라는 사람의 이야기로 모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유승하는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타입이었는데 말투에 재수 없음도 묻어 나오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차례대로 자기소개를 했다. 어디서 다들 온 건지 굉장한 스펙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이 사람들은 그냥 연봉만으로도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 아닌가? 그리고 투자도 기존에 잘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왜 여길 온 거지? 한 명 한 명 소개를 할수록 나 자신만 초라해졌다. 그러다 조금 의외의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송진명이라고 합니다. 저는 XX라는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고 있고 회사에 온지는 2년 정도 되었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저희 회사 핵심 아이템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만큼은 아니지만 차곡차곡 돈을 모아서 작은 꼬마 빌딩을 하나 사는 것이 꿈입니다.”


송진명의 소개는 굉장히 평범했다. 약간 자신의 자랑을 한 것 빼고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의 소개는 매우 특별했다. 그는 내가 다니는 곳 경쟁사 직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요새 심하게 경쟁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오늘만 해도 경쟁사인 이곳의 공격적인 마케팅 때문에 회사에서 회의를 했을 정도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내 소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처음에는 내 차례인지 모르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내 순서임을 깨닫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안녕하세요. 제가 이런 자리는 또 처음이고 제가 I 유형이라 굉장히 어색하네요. 하하…. 저는 뭐 직장인고요. 투자 이런 거 전혀 모르고 저축도 많이 안 해서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싶어서 여기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아까 이야기 들어보니깐 제가 배울 게 많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머릿속이 하얘지니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문장을 만드는 데 성공한 내가 대견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자리에 앉으려는 그 순간….


“오 저는 그런 분들 환영해요. 그런데 저희 모르는 게 너무 많네요. 선생님의 성함은 무엇이고 어디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는 말씀해주세요.”


유승하였다. 그의 개입으로 인해 다시 사람들은 나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다시 자리에 일어났다. 사람들은 내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시선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아…. 어…. 음… 하하…죄송해요. 제가 정말 이런 자리는 처음이라. 죄송합니다. 저는 정병규라고 하고요. 회사, 그….. 아… 맞다…. 이름 이야기해야죠? 저는 정병규고요. YY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나는 서둘러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가 소개를 마치자 내 말에 크게 반응하는 사람이 두 명 있었다. 바로 유승하와 송진명이었다.


“어? YY? 야 이거 진명님이랑 동종업계 아니에요? 와 이런 경우도 있네. 신기하네요. 두 분 직군도 비슷한 거 아니에요?”


유승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반가워요. 병규님. 진짜 반가워요. 업계 사람을 이런 데서 만나네. “


송진명이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어색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놨다. 그는 매우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소개가 끝나고 우리의 이야기는 본론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나만의 어색함은 오래가지 않을 수 있었다. 유승하의 주도로 시작된 이야기는 흥미로운 것이 많았고 다른 사람들도 인사이트를 끊임없이 제공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계속 필기했다. 유승하는 말이 없는 나에게 할 말이 없는지를 물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어색한 미소뿐이었다. 내가 몇 번 그러자 유승하도 나 대신 다른 사람의 참여를 더 유도했다.


.

.

.


“오늘 수고하셨어요. 처음이라 많이 어색하시죠? 병규님처럼 초보인 분들도 많으니 너무 부담가지시지 마시고 할 이야기 없어도 저에게 질문하고 그러시면 많이 도움 될 거예요. 그러면 다음에 뵐게요.”


모임이 끝나고 유승하는 나에게 다가와 모임에 대한 피드백을 전달했다. 그의 말이 고맙기도 하면서도 압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라 나도 그의 말대로 하겠다고 하고 모임 장소를 빠져나왔다.


“병규님!”


서둘러 나가려고 하는데 내 뒤에서 누가 나를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송진명이었다.


“진명님. 오늘 수고하셨어요. 말 잘하시던데요?”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송진명에게 말했다.


“하하, 저도 초보인데요 뭘. 괜찮으시면 잠깐 맥주나 하나 하시는 것 어때요? 제가 쏠게요.”


송진명의 말에는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죄송해요. 피곤하기도 하고, 내일 일도 있어서 먼저 들어갈게요.”


나는 그의 말을 거절하고 바로 사라지려고 했다.


“그러면… 자 여기 제 명함입니다. 우리 같은 업계인데 제가 반가워서 그래요. 너무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면 다음 모임 때 뵙겠습니다.”


송진명은 일방적으로 나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나는 마지못해 그의 명함을 받고 내 명함을 그에게 줬다. 그는 여전히 나를 흥미로운 듯이 쳐다봤다.


집으로 가면서 나는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에게 오늘 투자 모임에서 경쟁사 직원을 만났다고 했다. 내 말을 들은 동료는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내가 송진명이라는 이름을 말하자마자 바로 동료한테서 전화가 왔다.


“병규님. 그 송진명이라는 사람. 조심해요. 그쪽 회사에서 항상 우리가 하는 거 따라 하고 있는데 송진명이 그 회사 핵심 중의 하나예요. 전에 팀장님이 그 사람 이야기한 게 생각이 나서…. 전화드렸어요.”


“하하… 고맙습니다. 뭐 일단 아예 피할 수는 없으니 적당히 거리를 둘게요. 그런데 제가 회사 핵심은 아니라서 저에게 뭘 건질 수도 없을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


전화를 끊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송진명이 쉽지 않은 상대인 것은 맞는 것 같았다. 조심해서 나쁠 것 없어 보인다. 그나저나 투자 공부하려고 들어간 모임에서 경쟁사 직원, 그것도 하이에나 같은 사람을 만나다니… 이렇게 운이 없는 경우가 있을까 싶다. 모임이고 뭐고 그냥 인터넷이랑 유튜브로 공부하고 나 혼자 있는 것이 더 편할 것 같다. 한두 번만 더 나가보고 고민해 봐야겠다.


오늘은 정말 피곤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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