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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Oct 13. 2022

10월 13일 유성민의 하루

부하 직원

“우현님. 이거 왜 이렇게 했어요?”


“아…. 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아니, 다시 하는 건 당연한 거고 저는 왜 이렇게 했냐를 물었어요.”


“죄송합니다.”


“….”



오늘도 부사수를 혼내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부서에서 막내 생활을 7년 가까이 한 끝에 겨우 만나게 된 부사수는 실수투성이였다. 신입이니깐 어느 정도 이해해주고 싶었지만 그는 그 정도마저 심하게 벗어난 사람이었다. 거의 매일 부사수를 혼내는 것이 내 일과가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너무 화가 많은 것은 아닌가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상담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부사수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열에 아홉은 부사수를 안 좋게 평가했고 그런 사람을 관리해야 하는 나를 위로해줬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내가 참고 살라고 했다. 그 누구도 부사수를 좋게 평가하는 사람은 없었다. 

부사수의 이름은 우현이었다. 그는 대학교를 이제 졸업한 평범한 대한민국의 남성이었다. 여기저기서 인턴 활동을 하다가 우리 회사에 들어온 케이스였는데 말도 제법 잘 알아듣고 머리도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 처음에는 마음에 드는 친구였다. 그리고 성격도 꽤나 좋았고 개인적으로 서로 통하는 말도 많아서 회사가 아닌 밖에서 만났다면 내가 아끼는 동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곳은 회사였고 내가 그에게 가진 기대치는 너무 높았다. 

나도 처음에는 그를 천천히 가르치려고 했다. 실수가 있으면 ‘신입이니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했고 무엇을 고치면 좋은지,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알려줬다. 우현도 고개를 끄덕이길래 나는 그가 말을 잘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바로 다음 날이 되면 또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누구든지 실수를 할 수는 있다. 특히 처음이면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실수를 반복하면 그것은 단순한 실수라고 할 수는 없다. 우현의 경우가 그러하였다. 그는 똑같은 실수를 계속했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에게 다시 설명해줬지만 3~4번 이상 실수가 반복되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가 나를 놀리거나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실수가 너무 계속해서 반복되니 이젠 그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가 이상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영원히 같은 실수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4~5번 정도 실수를 반복하면 그다음부터는 실수 없이 일을 했다. 그러다가 다시 한 달 정도 지나면 같은 실수를 한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그가 특히 실수를 하는 분야는 이메일이었다. 아주 간단한 이메일을 보낼 때도 회사에서 보내는 양식대로 안 보내거나 사소한 예의를 지키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이메일을 보낼 때마다 나에게 확인을 받고 보내라고 시켰다. 애들 첨삭 지도도 아니고 무슨…. 덕분에 나는 내가 할 일을 하지 못하고 그의 업무를 봐주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원래 야근이 많은 부서는 아니었지만 그가 입사한 후로는 나는 야근을 자주 했다. 

그와 함께 일한 지 6개월 정도 지나자 기초적인 실수는 많이 줄었다. 여전히 비즈니스 매너 측면에서는 다듬어야 하는 것이 많았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그에게 일을 주기 시작했고 그가 일을 잘하는지를 감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업무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는 어디서부터 그에게 지적을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그와 함께 실무를 하는 것이 가능할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그를 다른 부서로 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겐 그러한 힘은 없었다. 나 역시 회사 입장에서 보면 겨우 7년 차 직원일 뿐이었다. 

우현의 실수가 계속되자 상사는 나를 혼내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보던 내리 갈굼과 비슷했다. 상사는 우현 앞에서는 좋은 사람인척 하면서 뒤에서는 우현을 욕하면서 나보고 잘 돌보라고 했다. 나는 내가 느끼는 어려움을 상사에게 말했지만 상사는 내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것이 상사의 반응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우현에게 화를 내는 날이 더 많아졌다. 그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답답했고 그와 말만 해도 짜증이 났다.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일이 아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도 그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의 모든 것이 미워졌다.

그에게 하루 종일 화를 내고 집에 오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일 출근하면 그에게 잘해줘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아침이 되면 그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그렇게 몇 달 동안 나는 집에 오면 반성하고 회사에 가면 그에게 짜증 내는 생활을 반복했다. 



“왜 이거는 내가 전에 시킨 것처럼 안 한 거예요?”


“…. 죄송합니다. 제가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우현님. 진짜 왜 그래요? 회사 다니기 싫어요? 다니기 싫으면 나오지 마세요.”


“그래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아….. 진짜 나한테 왜 그래요?”



우리끼리의 아주 평범한 대화의 일부다.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걸 알지만 내 입으로 ‘그럴 거면 때려치워라!’라는 식의 말을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하고 다음에도 같은 일을 반복했다. 나는 지쳐갔다. 

내가 멘토로 삼을 정도로 존경하는 상사에게 가서 고민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원론적인 말만 해줬다. ‘혼내더라도 잘 혼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꾸중은 그거 갈굼으로 밖에 들리지 않을 수 있다.’라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상사는 혼내기만 하지 말고 가끔 칭찬도 하면서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업무를 왜 잘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나는 상사가 해준 여러 이야기를 바탕으로 우현을 ‘잘’ 혼내려고 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우현은 내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그날도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성민님. 잠깐 이리로 올 수 있어요?”


오늘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나랑 친한 동료가 나를 슬쩍 불렀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 있어요?”


나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오늘 회사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봤어요? 그거 전에 성민님이 말한 그 사람이 쓴 글 같던데?”


동료가 조그만 목소리로 주위를 살피더니 나에게 말했다. 커뮤니티? 나는 커뮤니티를 잘하지 않아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거…. 아니다. 내가 링크 하나 보내줄게요. 나중에 읽어봐요. 너무 화내지 말고요.”


그는 뭔가 나에게 말을 해주려다가 멈추고 나에게 핸드폰을 보라고 했다. 나는 자리로 돌아가면서 핸드폰을 살폈다. 동료가 보낸 링크가 도착했다. 나는 링크를 클릭하고 아연실색해서 바로 화장실로 방향을 틀었다. 자리에서 읽기에는 너무 엄청나고 화가 나는 내용이었다. 나는 화장실 변기 하나를 차지하고 그곳에서 링크의 정체를 다시 파악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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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 더러운 상사 새끼, 소리만 질러대서 힘들다.


내용 : 내 위에 성질 더러운 새끼 하나 있는데, 정말 하루 종일 나한테 소리 지른다. 웃긴 건 이 사람 직급도 그리 높지 않아. 대리밖에 안 되었는데 하는 것은 완전 부장급임. 지는 일 하나도 안 하면서 나한테 일만 시키고, 뭐 하나 마음에 안 들면 하루 종일 나를 갈굼. 얼굴 시뻘게져서 말하는데 발음도 새서 뭐라 하는지 잘 모르겠음.

처음에는 나도 내가 잘못했으니 혼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자기가 하라는 데로 했는데도 지랄하는 걸 보면 성격파탄자 아닐까 싶음. 얼마 전 회사에서 소시오패스 피하는 법 영상 본 적 있는데 거기 나오는 유형이 딱 내 상사더라. 엮이기 싫은데 직속 상사라서 피하지도 못 함. 지금도 출근하면서 글쓰는건데 그 새끼 얼굴 볼 생각하니 퇴사마렵다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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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지칭하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정확히 나를 지칭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다. 분명히 나고 이 글을 쓴 사람은 우현이 틀림없다. 너무 기가 막혔다. 댓글에는 다 나를 욕하는 글 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우현한테 가서 소리를 지르고 쥐어 패고 싶은 기분밖에 안 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 글을 쓴 것이 우현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고 설사 우현이 쓴 것이라고 해도 폭력적인 대처를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억울했다. 커뮤니티 상에서 내가 쌍놈이 되는 것도 화가 났고 내가 그래도 자기 잘 되라고 혼내는 것인데 겉으로는 ‘죄송합니다’라고 하고 뒤에서는 이렇게 호박씨를 까고 다닌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어떤 단어로도 내 감정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내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진동이 울리며 핸드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전부터 회의를 하자는 팀장의 메시지였다. 나는 감정을 억누르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밖으로 나가니 우현이 손을 씻고 있었다. 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할 뻔했지만 겨우 참고 그에게 웃으면서 인사했다. 우현은 뭐가 기분 좋은지 실실 웃으면서 나에게 큰 소리로 인사했다. 가증스러운 새끼. 

회의 시간 내내 나는 우현 얼굴만 보였다. 저 자식에게 어떻게 복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어른답지 못하게 우현에게 찌질한 복수를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하고 내 일만 열심히 하는 방법도 있었다. 내 머릿속은 복잡해져 갔다. 그래도 우현의 얼굴을 보면 화만 났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한동안, 아니 아주 오랫동안 나는 우현을 좋은 의도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도 ‘7년 만에 들어온 부사수가 나에게 선전 포고했다’라는 글을 커뮤니티에 올려야 하나? 아 진짜 개 같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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