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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Oct 14. 2022

10월 14일 송정훈의 하루

손절하는 사회


“지우야, 전에 놀던 민규라는 애랑 잘 지내지?”


“민규? 아 걔 손절했어. 나랑 안 맞고 재수 없어.”


정훈은 며칠 전 아들인 지우와 대화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민규는 지우의 어릴 적 친구였다. 지우가 어렸을 때부터 자주 집에 부르던 친구였기 때문에 정훈도 잘 알고 있는 아이였다. 특히 민규는 전교 1, 2등을 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정훈은 지우가 그런 친구와 어울린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중학생 이후로는 지우가 친구를 집에 부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정훈은 아이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집에만 안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아주 가끔 다른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는 것을 봤던 정훈은 민규의 행방이 궁금해 지우에게 물었던 것이었다.


“손절? 친구끼리 무슨 손절이라는 말을 써…. 너네 뭐 싸웠어?”


정훈은 TV에서 뉴스를 보면서 지우에게 물었다.


“아니? 그냥 재수 없어 그 새끼. 앗… 미안 아빠. 여튼 우리 반에서도 걔 손절한 애가 한 둘이 아니야.”


정훈은 지우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훈이 생각하기에 고작 고등학생 밖에 안 된 애들이 무슨 손절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면서 친구 관계를 끊는 것인가 싶었다. 정훈은 자연스럽게 친구끼리 멀어질 수는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자신이 아들이 손절이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한다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너네 어릴 때 친하게 지냈잖아? 나중에 나이 들고 하면 친구만 한 게 없더라. 나중에 적당히 화해하고 친하게 지내.”


“아이, 진짜. 내가 알아서 해! 왜 갑자기 참견이야?”


지우는 갑자기 정훈의 말에 화를 내더니 문을 쾅 닫으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야, 송지우. 너 밖으로 안 나와? 아니, 뭐 애들은 화나면 문 닫고 들어가는 게 규칙이야?”


가만히 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훈의 아내인 나영이 아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됐어, 오랜만에 일찍 들어왔더니, 이게 무슨….”


정훈은 아내를 말리고 눈앞에 놓인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이동했다. 좋은 소식 하나 없는 뉴스보다 예능이나 보면서 기분을 달랠 셈이었다. 하지만 어디 하나 정훈의 마음에 드는 방송이 없었다. 결국 정훈은 애꿎은 TV를 향해 짜증을 내고 아내에게 리모컨을 넘기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정훈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정훈이 미처 확인하지 못한 수많은 메시지가 핸드폰에 와있었다. 정훈은 일을 할 때는 핸드폰을 거의 보지 않았다. 정훈은 메시지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대부분이 쓸데없는 소리였다. 

대화를 모두 확인한 정훈은 핸드폰 주소록을 검색했다. 그가 찾는 이름은 주소록의 상단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찾는 사람의 이름은 ‘김기수’였다. 정훈은 기수의 연락처를 확인하고 전화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말았다. 정훈이 기수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것은 10년 전일이었다. 이제 와서 정훈이 갑자기 연락하기에는 별다른 명분이 없었다. 정훈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잠시 예전의 일을 떠올렸다. 


정훈과 기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다. 같은 동네에서 자랐고 대학교에 가서도 연락을 했으며 서로의 결혼식도 갔었던 사이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지만 그래도 가끔은 서로 연락하던 사이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주 사소한 것으로 정훈과 기수는 다퉜다. 동창회 모임에서 있었던 일인데 서로 술이 취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했던 것이었다. 주먹다짐까지 할 뻔하다가 주위 친구들의 만류로 겨우 진정되었지만 그 이후로 정훈은 기수와 연락을 하지 않았다. 화가 너무 난 정훈은 기수의 연락처마저 차단했다. 아들 지우가 쓰는 말처럼 기수를 완전히 손절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 정훈은 차단했던 기수의 연락처를 복구했지만 그에게 연락할 일은 없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정훈은 아들에게 한 소리하기는 했지만 자신도 별다를 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 헛웃음을 지었다. 잠시 고민하던 정훈은 기수에게 간단한 문자를 보냈다.


‘안녕? 나 송정훈이야. 김기수 맞지? 잘 지내? 오랜만에 생각나서 연락한다.’


정훈이 문자를 보내고 5분 후, 답장이 왔다.


‘죄송한데 저는 김기수라는 사람이 아닙니다. 잘못 연락하신 것 같습니다.’


정훈이 기운이 빠졌다. 용기를 내서 연락했는데 이미 그 번호는 기수의 연락처가 아니었다. 정훈은 이대로 기수와 화해하지 못한 채 인연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니 허무했다. 정훈은 기수의 연락처를 알고 있을 친구들을 찾아서 그들에게 기수의 연락처를 물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연락처도 정훈이 알고 있는 것과 같았다. 기수는 정훈과 싸운 이후 동창회 모임에도 나오지 않았기에 그의 근황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야, 그건 그렇고 이명진 알지? 걔 내 돈 안 갚고 연락 안 되는데 걔 근황 알아?’


정훈이 기수의 연락처를 물어볼 겸 연락했던 현석이 정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니, 나도 걔랑 연락한 지 꽤 되었어.’


‘아오, 씨…. 고소를 해야 하나. 알았다. 아무튼 너 걔한테서 혹시 연락 오면 꼭 나한테 말해줘라.’


‘알았어. 연락 줄게….’


‘이번 일 끝나면 걘 진짜 손절이다 손절!’


또 손절이라는 단어를 들은 정훈은 자기 또래들도 이런 표현을 쓴다는 것이 좀 신기했다. 물론 이번 경우는 정훈이 보기에도 손절하는 것이 맞는 경우이긴 했지만 정훈은 새삼 인간관계를 끊는 게 쉬워진 세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불현듯 정훈은 자신도 다른 친구들 중 누군가에게 손절당한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이 들었다. 기수와 같이 직접적으로 부딪힌 경우가 아니더라도 살면서 정훈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누군가에게 실망을 준 경우가 있지 않을까? 정훈은 괜스레 자신의 인간관계가 정말 괜찮았는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정훈은 핸드폰으로 ‘손절’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손절하는 방법’, ‘이런 사람은 손절해라’, ‘손절 기준’ 등 다양한 게시글 혹은 영상이 검색되었다. 정훈은 심지어 뉴스 기사에도 손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정훈은 이런 상황이니 자신의 아들도 그런 단어를 쉽게 입이 올리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훈 자신도 자신의 주위 친구도 손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젠 정말 손절을 권유하는 사회가 된 것 같네.”


정훈은 이렇게 짧게 탄식하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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