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하고 뜨거운 거리의 공기는 마치 헤어드라이기의 바람 같다. 더위에 차마 손을 다 잡을 수가 없는 연인들은 손가락만 살짝 걸고서 걷는다. 이글거리는 돌바닥 때문에 얇은 샌들보다는 차라리 밑창 든든한 운동화를 신는 게 나은 7월의 마드리드이다. 더운 게 본래 여름의 모습인데 왜 그런 모습이냐고 여름에 따져봤자 계절은 말이 없다. 때가 되어 돌아왔노라며 그저 묵묵히 제 있을 시간을 지킬 뿐이다. 더운 여름이라고 왜 눈총만 받아야 할까. 실은 그 계절과 함께 근사한 것들도 돌아왔다.
◼ 7월의 절정, 보라색 라벤더 밭
7월의 마드리드에서 꼭 가야 할 곳이 있다. 도심에서 1시간만 가면 만나는 보라색 라벤더 밭이다. 도저히 라벤더 밭이 있을 거라고 믿기지 않는 황토색의 건조한 마드리드 외곽도로를 달려가다 보면 브리우에가 Brihuega라는 표지판과 함께 도로가 2차선으로 좁아지는 지점을 만난다. 그곳에서 조금만 더 가다 보면 기대치 않은 순간, 먼 곳에서 일렁이는 보라색 물결을 마주한다. 상상보다 더 광활하고 더 벅찬 풍경이다. 보라색 사이사이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프레임 속에 자연을 담아보려 저마다의 포즈를 잡는다. 그 어떤 프레임도 눈앞에 아름다움을 다 담지는 못하겠지만.
마드리드 근교 라벤더 밭, 사진은 아름다움의 반에 반도 담지 못했다
놀라움이 조금 잦아들면 보라색 파도 속으로 느리게 걸어 들어가 본다. 라벤더가 바람과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웅웅 거리는 또 하나의 소리가 있다. 라벤더 옆에서 춤을 추는 꿀벌들의 소리이다. 벌들이 내는 소리에 겁먹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벌들은 사람에 관심이 없다. 그곳에 있는 모두는 오로지 라벤더만을 바라본다.
◼ 나누고 싶은 위로의 향기
라벤더 향은 친숙하다. 로마시대 때부터 향료, 목욕용품, 세제 등으로 쓰였다. 특히 불면이나 불안을 완화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아로마테라피의 인기 원료이기도 하다. 한 방울의 라벤더 에센스만으로도 어두운 밤 위로가 되는데, 라벤더 밭에서 손끝에 꽃잎을 스치며 느끼는 향이 주는 위로는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꼭꼭 싸매어 귀하고 고운 사람들에게 보내주고픈 향이다. 멀리서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들, 그들과 함께 이 밭을 거닐었다면 얼마나 더 향기로운 오후였을지 잠시 그려본다.
◼ 라벤더처럼 기대하며 산다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향 덕분에 라벤더의 꽃말은 '침묵'이다. 과연 라벤더 밭을 걷는 많은 이들은 보라색 향이 주는 마법에 취한 듯 조용히 속삭이며 이야기한다. 또 하나의 꽃말은 '기대'이다. 행복, 풍요, 사랑, 지혜, 세상에는 좋은 말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 으뜸은 기대이다. 오늘을 살아내게 하는 힘, 꿈을 꾸게 해주는 말이다. 그러니 언제나 기대하며 산다. 매번 그 기대가 무너질지라도 기어이 또 기대하며 산다. 매년 다시 피어나는 라벤더 꽃처럼.
보라색 우산과 차양, 라벤더로 온통 보라보라했던 브리우에가 마을
Tip!
언제 가면 좋을까 보통 7월부터 라벤더 꽃이 진한 보라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며 가장 절정은 7월 중순~하순까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