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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무지개 Jan 06. 2019

정체를 알면 놀라는 스페인 음식 몇 가지

음식은 문화적 상대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한 시대의 문화 흐름을 대변하는 음식, 인류학으로 본 음식은 지역적인 특수성으로 인해 어떤 음식은 금기시되었고, 또 어떤 음식은 신성시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이슬람교의 돼지고기와 힌두교의 소고기가 아닐까 싶다. 물론, 종교학적인 맥락은 차치하고라도 중동이라는 뜨겁고 건조한 곳에서 돼지를 키우는 일은 사람에게 필요한 물과 음식이 줄어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고대 이슬람 사회에서는 당연히 키워서는 안 될 동물로 분류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인도에서도 소고기를 먹을 수 없었던 환경적 이유로 우유 섭취와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문화적 이유로 당연히 소는 도살 금지였고 신성시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모든 음식은 인류 문화이래 존재 이유와 역사적 배경이 변하면서 발전해왔다


인류가 식량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저질렀는가. 


스페인에서는 이슬람교도가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하면서 하나의 음식 혁명이 일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쌀'. 유럽에 쌀을 들여온 이슬람교도들로 하여 스페인에서는 벼 재배법, 관개용수를 대는 법, 토지 관리하는 법 등 다양한 혁명으로 식량을 축적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 세계의 대표적인 음식 혁명을 가져온 '대사건'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이다. 종교를 앞세워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하며 많은 원주민을 살해한 사실에 머리 숙여 숙연해지지만, 한편으로는 발견 이후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가져온 혁명적 음식은 굶주림에 지친 지구의 많은 이들에게 축복이 되어 주었다. 감자, 고구마, 토마토, 고추, 옥수수 등 이제는 이 재료가 인류의 보편적인 음식 재료가 되어 각 지방의 특산물인 경우가 흔하다. 강원도에서는 감자, 옥수수가 빠질 수 없는 전통 음식의 한 계열로 떠오른 것을 보면,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지구촌 곳곳에 푸짐한 식량 혁명으로 삶의 질을 향상했음은 분명하다. 


현대에 들어오면서 각 지방에서 발전해 온 고유한 음식 문화는 서로 공유되고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며 다양한 요리법이나 마니아 군이 생성되고 있다. 문화가 융합되면서 정체 모를 신인류의 음식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요즘에는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이 SNS를 통하여 다양하게 공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서도 요즘 현대인의 식량이 편의점에서부터 속속들이 나타나며 아주 다양한 형태로 한 끼를 때울 수 있다. 도시락에서부터 라면, 자장면, 심지어 통닭까지...... 신기하다면 신기한 현대적 시스템 위에 아주 빠르게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이렇게라도 뚝딱 한 끼를 해결해야 하는 바쁜 신인류에게는 이런 음식조차도 먹기에 버거울 정도로 시간이 없어 보인다. 언젠가는 알약 하나로 해결할 날도 올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도 들면서.....

스페인에서도 요즘 다양한 음식이 시민의 마트를 점령하고 있다. 외국에서 건너온 외래 음식이 한국에 정착하여 토종화 되듯이 스페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외래 음식이 이곳  마트 진열대에서 소비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음식으로 일본의 초밥, 모로코의 쿠스쿠스(Cuscus), 중국의 훈툰(wanton) 및 딤섬, 페루의 퀴노아 등 다양하다. 재료로는 김, 두부, 라면 등 다양한 제품이 서민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이제는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되었다. 물론, 아직도 한국 식품은 스페인 마트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희귀한 음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페인의 내놓으라는 레스토랑에서는 불고기 및 김치 등을 모티브로 한 다양한 한국식 요리법을 선보이며 시민들에게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렇듯 음식은 문화의 한 부분으로 돌고 돌며, 발전하거나 쇠퇴하는 묘한 힘을 가지고 한 시대를 풍미한다. 시대에 따라 문화를 해석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여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는지 알 수 있다. 




그 한 예로 중세시대에 악마의 열매로 불렀던 '트러플(Truffle)'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현대에는 세계 3대 진미에 들면서 경매에 수억대로 팔리는 이 트러플이 땅속에서 자라고 묘한 냄새를 풍긴다고 중세 로마 가톨릭에서는 악마로 규정하며 금지했다고 한다. 그런데 안토니오 성자가 맥각병(麥角病)에 걸린 사람들을 위해 곡류가 아닌 돼지로 음식을 만들면서 이 트러플의 운명도 바뀌게 되었다. 동물의 수호신 안토니오 성자가 돼지를 목초지에 방목하며 길렀는데 그곳에서 암퇘지가 땅을 파며 찾아낸 땅속 버섯이 트러플이었다. 이 트러플은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과 환상의 조합을 이루며 다시 역사 속에 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중세 시대에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이 검은 악마의 버섯이 현대에는 고가의 상품으로 팔리며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참고로 글쓴이는 한국 최초 트러플 연구서 매거진을 발행하고 글을 쓰고 있다, 관심 있는 독자는 방문하시길~)


요즘은 음식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어 그런지, 때로는 음식이 무슨 놀이나 장난처럼 되는 경우도 있다. 단순히 자신의 인스타에 '인증'하기 위해 음식을 주문하고, 셀카를 찍고 '나 여기 다녀갔소~ '자랑질하며 음식이 일종의 해괴한 에피소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의 스페인 통신란에서는 장난으로 이런 음식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님을 밝히고, 문화의 일부로 한국인에게는 약간 생소한 스페인 음식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단순한 다름이 문화적 차이로 이어져 스페인 사람들의 식생활 및 음식 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정체를 알면 한국인이 십중팔구 놀라는 스페인 음식! 


1. 이거 고추장 아니야?

스페인에도 한국 고추장과 비슷하게 생긴 음식이 있다. 처음에는 맛도 비슷하고 생긴 모양새도 비슷해 정말 고추장과의 페이스트(paste)가 아닌가 싶었다. 재래시장에서는 가끔 고추장처럼 넣어 팔기도 해서 호기심이 일었다. 게다가 한국인이 좋아하는 마늘과 일종의 고춧가루인 붉은 파프리카 가루가 들어가 그 맛도 고추장과 흡사했다! 스페인에는 파프리카 가루도 매운맛, 단맛 두 종류가 있는데, 어떤 지방은 말 그대로 매운 파프리카를 넣어 진짜로 고추장 맛까지 나는 녀석도 있다.  

이 음식은 어떻게 먹을까? 한국에서는 다용도로 고추장을 양념으로 쓰며, 대표적으로는 밥에 올려 비벼 먹기도 한다. 비슷하게도 스페인에서도 탄수화물인 빵 위에 발라 먹는다. 빵 위에 쓰윽 바르는 모습이 흡사 고추장을 연상케 하는데 맛을 보면 참 독특하다.  

이 음식은 소브라사다(Sobrasada)이다. 빵에 주로 발라먹거나 흔하지 않게 국물 요리를 할 때 넣어 양념으로 먹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재료의 정체는 돼지기름에 파프리카 가루와 소금, 후추, 어떤 곳은 마늘을 첨가하여 잘 섞어 만든 음식이다. 특히, 마요르카 지방의 소브라사다는 매운 파프리카 가루를 써서 한국의 고추장 맛과 흡사하다. 

한국에서는 지방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많아 이 정체가 돼지비계라고 하면 다들 놀라 숟가락이 뒤로 물릴 지경이다. 콜레스테롤 조절하는 사람들은 무작정 먹고 큰 변을 당하실 수 있다는 함정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2. 이거 콩국 아니야? 

이번에는 한국의 콩국 맛과 비슷한 수프를 소개한다.  

스페인 내륙 지방에서 추운 겨울에 먹었다는 음식으로 맛은 한국의 콩국과 비슷하다. 전에 EBS 촬영 차 필자가 사는 스페인 고산 마을에 샘킴 세프가 방문했다가 이 콩국을 맛보고 한 소리이다. 

"한국의 콩국 하고 비슷한 게 아주 담백하네요."

보통 라 마딴자(La Matanza)라는 '돼지 잡는 날'에 먹는 특별식이다. 라 마딴자는 월동 준비로 김치를 담그는 한국처럼, 스페인에서도 추운 겨울에 돼지를 잡는 특별한 날이다. 이날은 돼지 및 가축을 도살하여 온 집안사람들이 모여 스페인식 염장 햄인 하몬(Jamón), 다양한 소시지, 기름에 튀겨 병조림 보관하는 오르자(horza) 등, 여러 종류의 육류 저장 음식을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 준비하는 대대적인 집안 행사이다. 

일꾼을 위해 준비하는 음식




한국에서는 김치를 담그면서 일꾼을 위해 수육을 준비하는데, 스페인에서는 돼지를 잡으면서 일꾼을 위해 돼지를 굽거나, 콩가루를 넣은 수프를 만들기도 한다. 이 수프는 열량이 풍부한 음식으로 따뜻하게 데워 먹는 게 특징이다. 돼지를 취급해야 하는 추운 겨울이니 아무래도 따뜻한 음식이 2, 3일 일하는 돼지 잡는 날에는 필수적이기도 하다.  

돼지비계 기름으로 만든 콩가루 수프 

이 수프는 돼지비계를 구워낸 후, 기름을 모아 끓이다가 콩가루를 넣어 만드는 수프이다. 굳으면 바로 라드(lard)가 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오랜 세월 동안 비계가 몸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생겨났는데, 스페인에서는 예전부터 돼지비계로 만든 기름을 이용하는 음식이 간혹 있었다. 억울하게도 몸에 좋지 않다는 누명이 최근 들어 속속 밝혀지면서 요즘에는 저탄고지(저탄수화물 고지방) 다이어트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으니, 정체를 알아도 괜찮을 음식이지 않을까 싶다. 


3. 이거 닭다리 아니야? 

이 음식은 개인적으로 조금 놀랐던 음식이다. 양고기를 먹는 곳에서는 별 대단한 요리는 아닐 텐데, 양고기 문화권이 아닌 한국에서는 조금 색다른 요리가 아닌가 싶다. 물론, 요즘에는 다양한 양고기 음식점이 한국을 점령하여 생소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요리는 자라호(Zarajo)라고 하는 새끼 양의 창자를 양념하여 나무 막대에 세 가닥으로 꼬아서 만든 요리이다. 쿠엔카(Cuenca)의 전통 음식이지만, 요즘 전국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머튼(mutton)보다는 램(lamb)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육질이 부드럽고, 격한 맛과 향은 적은 편이다. 스페인에서는 양고기를 코르데로(Cordero)라고 부르니 한번 맛볼 기회가 있을 때 부드러운 육질을 확인해 보기를......  

이 음식은 보통 꼬치처럼 나무 막대에 돌돌 말아 나와서 얼핏 보기에는 닭다리처럼 보인다. 파슬리와 마늘, 레몬 양념이 들어가 더 상큼 신선해 보이는 이 음식. 새끼 양의 창자를 꼬아 만들었지만, 거부감이 없을 정도로 맛있어 보인다.  


4. 이거 과자 아니야? 

뻥 튀겨 나온 옥수수 과자라고 불리는 한국 과자처럼 생긴 음식이 스페인에 있다. 스페인에서는 술안주나 간식으로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야외 회식 때에도 자주 먹는 음식으로 얼핏 보기에는 진짜 옥수수 과자처럼 보인다. 실제로 과자처럼 봉지에 포장해서 팔기도 해 가끔 혼동할 때도 있다. 스낵 코너에 옥수수 과자 옆에 있으면 스페인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과자로 혼동한다. 하지만 이 과자는 돼지비계와 껍질을 튀겨 만든 음식이다.  

돼지비계 튀김으로 스페인어로 치차론(Chicharron) 혹은 또레즈니요스(Torreznillos)라고 하는데 스페인뿐만 아니라 스페인 식민지를 거쳐 간 나라에서 지금도 먹는 대중적인  음식이라고 한다. 필리핀 및 남미, 심지어 미국에서도 이 튀긴 돼지비계 껍질이 스낵처럼 팔린다고 한다.  


5. 한국에 닭발이 있다면, 스페인에는......

스페인 마트에서도 한국처럼 닭발을 판다. 하지만 그다지 대중화되어 있지 않아 소수의 소비자가 애용하는 듯하다. 한국처럼 닭발이 인기를 누리지 못해 그런지, 의외로 현지인들이 닭발을 보고 놀라는 경우가 있다. 특히 한국에 방문한 스페인 사람들은 빨간 양념을 한 닭발을 보면 굉장히 놀란다. 

하지만, 세상에서 스페인 사람들처럼 고기의 모든 부위를 잘 먹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돼지는 버리는 게 하나도 없고, 소꼬리와 혀도 스튜와 구이로 먹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래서 닭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이 닭발을 먹는다면 스페인 사람들은 특이하게도 닭의 볏을 먹는다. 

닭볏 스튜 

크레스타스 데 가요 귀사다스(Crestas de Gallo Guisadas)라고 하는 이 음식은 자모라(Zamora) 지방의 전통요리로 스튜 형태로 푹 끓여서 먹는다. 처음에는 보기에 수제비처럼 밀가루 반죽해서 넣은 음식인 줄 알았는데, 닭 볏으로 한 스튜라 해서 깜짝 놀랐다.  


위의 몇 가지 예로 스페인의 특이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알아보았다. 알면 전혀 특이할 이유가 없는 이 음식들은 여전히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것도 있고, 닭 볏과 같이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음식도 있다. 한때 복날에 먹던 보신탕을 생각하면 될 듯하다. 현대의 보편적 음식 정서에 따라 개고기는 금하게 되고, 우리 음식 문화도 다양하게 변하면서 밥보다는 밀가루 음식을 즐기는 추세라고 하니, 스페인에서도 대중적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음식은 사라져 가고 있다. 


몸과 마음을 구성하는 일차원적 에너지 충전소 음식, 과연 어떤 길로 어떤 형태의 모습으로 미래에 존재할지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궁금해진다.  



* 참고: 글쓴이 산들무지개의 블로그 하늘 산책길, 그곳에서 꿈을 꾸다에서는 더 쉽고 재미있는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페인 현지의 일상과 문화를 글과 사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위의 타이틀을 클릭하시면 바로 블로그와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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