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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파르타코딩클럽 Jan 11. 2023

엄마 이후의 커리어

큰일 난 사람들의 큰일 낸 이야기 EP.03

헉, 큰일났다!

계획대로 풀리는 일은 드물고, 불안에 잠 못 이루는 밤은 잦다. 내 인생인데 마음대로 움직이는 게 어렵다는 불편한 진실이 새삼스럽게 와닿는 순간에 우리는 외친다. “헉, 큰일났다!”


큰일 나는 걸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현명하게 다루는 법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제 맘대로 찾아와 일상을 뒤흔들어 놓는 ‘큰일’의 대처법을 찾기 위해 스파르타코딩클럽 수강생들에게 물었다. “당신의 '큰일'은 무엇인가요?”






"36살에 개발자로 취업한 워킹맘 이윤수입니다"

어떤 말들은 개인을 집단으로 뭉뚱그려낸다. ‘경단녀’, ‘워킹맘’ 같은 말들은 구태여 존재하며 여성의 삶을 포획하는 말들이다.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엄마가 됐을 뿐인데 삶의 주도권을 잃어버리게 되는 서사는 아직도 흔하다.


하지만, 서사는 흔할지라도 삶은 고유하다. 이윤수는 9살 난 아이를 둔 엄마이자, 36살에 신입 개발자로 취업한 워킹맘이다. 엄마와 워킹맘이라는 단어에 가려진 이윤수의 삶이 궁금했다.



9살 아이의 엄마인 동시에 신입 개발자다. 엄마가 되기 전의 커리어가 궁금하다.

공군에서 항공관제사로 5년 정도 일했다. 남편은 후임이었다. 1년 정도 연애하다 결혼을 했고, 아이가 생겨서 잠깐 휴직을 했다가, 결국 일을 관뒀다.



항공관제사로 일한 기간은 어느 정도였나

7년 정도 일했다. 휴직 전엔 1년 정도 팀장으로 일했다.



당시 스스로에게 커리어는 어떤 의미였나

굉장히 큰 의미였다. 숫자로 표현한다면 일상의 80% 정도가 일이라고 할 만큼, 일에서 의미를 찾는 편이었다. 비행이 많이 잡힌 날 복잡한 교통을 문제없이 풀어냈을 때, 처음 팀을 맡았을 때, 팀원들에게 팀장으로 인정받았을 때의 성취감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내 역할을 다 해내며 성장하고 있다는 걸 체감하는 순간이 즐거웠고, 더 성장하고 싶은 욕심도 컸었다.



당시 삶이 만족스러웠나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육아휴직을 할 때는 어땠나.

출산 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6개월을 더해서 총 9개월 동안 휴직했다. 알고 있던 지식들이 서서히 잊히는 게 느껴질 땐 조금 답답했다. 복직 후에 이전만큼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고. 원래는 1년 동안 휴직할 계획이었는데, 업무 적응에 대한 걱정 때문에 반년 만에 복직했다.



복직 후 힘들었을 것 같은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처음 복직했을 땐 정말 날아갈 것 같았다.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다’란 생각이 들 만큼. 오랜만에 일을 하니 처음엔 어색했는데 금방 다시 적응이 되더라. 이대로라면 다시 잘 나갈 수 있겠단 생각에 들뜨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퇴사를 했다.

육아휴직을 했다 복직하는 엄마들이 많이 겪는 일인데, 복직 후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면 아이가 엄마를 잘 못 알아보게 된다. 엄마를 엄마로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거다. 이런 이야기는 워낙 많이 들어서 어느 정도 감수했었다.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그래도 나를 엄마로 봐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복직을 하고 보니깐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가 너무 힘들어했다. 하루하루 아이 얼굴에서 생기도 없어지고, 이러다 정말 큰일 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일만 쫓을 때가 아니란 생각에 일을 관뒀다.



남편은 일을 관두는 것에 대해 뭐라고 말했나.

남편도 내게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고 있어서 괜찮겠냐고 물어봤었다. 양가 부모님이 도와주실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낯선 사람들 손에서 힘들어하는 아이를 생각하면 내가 일을 관두는 게 최선이라는 데엔 둘 다 동의를 했었다. 그렇게 5년 정도는 육아에만 전념했다.



육아에 전념했던 시기는 어땠나.

처음엔 정말 어려웠다. 육아가 처음이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던 것 같다. 아이가 낮잠이라도 자면 그 틈을 쪼개서 육아서를 보면서 공부를 하다가, 아이가 깨면 같이 산책도 나가고,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집중했다. 아이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 같다.

행복했다곤 할 순 있을 것 같은데, 평온한 시절은 아니었다. 왜 어른들이 그러지 않나. 평생 할 효도는 어렸을 때 다 한다고. 한참 힘들 땐 완전히 미화된 말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행복에 대해서 멈춰서 생각해 볼 만한 시간은 없었지만, 당시엔 아이를 위해서라면 평생 이렇게 주부로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일을 시작했다. 취업을 준비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아이가 조금씩 자라면서, 남는 시간이란 게 생기더라.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놓고 집 근처 커피숍에서 하루를 보내다, 저녁에 아이를 재우고 나면 공허함이 밀려왔다. 내 인생을 이대로 흘려보내긴 너무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 인생은,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고민을 2년 넘게 했었던 것 같다. 완전히 아이에게만 투자하는 삶이 아니라, 나로도 존재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지금은 개발자가 됐다. 항공관제사와는 완전히 다른 분야인데, 개발자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도 궁금하다.

사실 처음엔 개발자니 코딩이니 하는 말들이 뭔지도 몰랐다. 그냥 생산성 있는 취미를 찾고 싶었다. 베이킹을 해보기도 하고, 그림을 배워보기도 하면서 의미 있게 시간을 쓰는 법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코딩을 배워두면 쓸모가 많다는 소리가 들리더라. 주식이 유행이던 시절이라 매매 자동화 프로그램을 만드는 강의로 코딩을 처음 접했다. 이참에 배워두면 가계부 정리도 조금 더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고, 나중에 가족들 사진첩도 만들 수 있겠다 정도의 가벼운 마음이었다.



코딩, 해보니 어땠나.

일단 강의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해서 주식 자동매매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그때는 뭘 이해하고 만든 게 아니었다. ‘이게 왜 되지?’ 싶더라. 작동 원리를 모르니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게 답답해서 조금 배워봐야겠다 싶었다. 스파르타코딩클럽은 그때 처음 알게 됐는데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본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내 것’을 갖고 싶단 생각을 많이 할 때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무엇을 만들었나.

‘해결의 책’이라는 간단한 웹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 고민을 적으면 랜덤으로 글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어디 가서 보여줄 정도도 아니고, 포트폴리오로 활용하기에도 부족하지만 지금도 자랑스럽다. 첫 번째 프로젝트였고, 내가 뭔가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래서 개발자로 취업을 결심한 건가.

국비지원으로 스파르타코딩클럽의 강의를 하나 더 들었다. 그때 이걸 직업으로 가져보면 어떨까란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다. 찾아보니깐 개발자는 다른 직업보다 공간의 제약에서 조금 더 자유롭다는 이야기도 있고,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면 육아랑 병행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항해99*까지 하게 됐다.


*스파르타코딩클럽의 개발자 취업 부트캠프



부트캠프는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데, 30대 중반에 그걸 감수하는 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다.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

남편은 내색은 안 했지만 분명 불만이 있었을 거다. 아무래도 공부하는 동안엔 집안일을 이전만큼 잘 챙기기 어려우니까. 취미생활을 더 지원해 줄 테니 원래 살던 대로 그냥 살자며 회유하기도 했었다. 아이는 엄마가 하는 걸 응원한다고 하면서도 ‘엄마 근데 나랑 좀 더 놀아주면 안 돼?’ 이런 식으로 많이 매달렸다. 그럴 때마다 ‘또 내가 괜한 욕심을 부려서 가족을 다 힘들게 만드는구나,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라는 생각에 힘들었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가 궁금하다. 어떤 확신이 있었나.

사실 내내 확신은 없었다. 나이는 많지, 5년 동안 경력은 끊겼지, 정말 수료 후에 취업할 수 있을까 싶었다. 고민이 끊이질 않지만, 그때마다 조금 더 먼 미래를 보자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며 버텼다.


아이는 계속 자랄 것이고 언젠간 독립도 하게 될 텐데, 그땐 아이도 자신만의 커리어가 있는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길 거라고 생각했다. 부모 인생의 유일한 의미가 자식인 건 아이 입장에서도 좋지 않다고들 하니까. 물론 어느 정도는 내 욕망에서 비롯된 정당화이겠지만, 아이를 위해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계속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처음 시작할 땐 ‘나’를 더 많이 생각했는데, 그만두고 싶을 땐 아이를 조금 더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수료 후 취업까지도 쉽진 않았을 것 같다.

서류 탈락을 정말 많이 했다. 10군데에 지원하면 한 군데 붙을까 말까 하는 정도. 당연한 일이다. 나라도 더 젊고 가능성 많은 신입을 뽑고 싶었을 테니까. 그래도 여태껏 내 삶을 위해서 투자한 시간들과, 그 투자를 위해 감수했던 것들을 생각하면서 계속 지원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합격하는 곳도 늘어나고, 내가 원하는 조건을 맞춰주는 곳도 생기더라. 지금 다니는 회사는 집에서도 가깝고, 재택근무도 자유롭다. 아이 문제로 요청하는 경우엔 무기한으로 재택근무를 해도 괜찮다고 제안해 주셔서 바로 다니겠다고 했다. 항해99 수료 후 2달 만이었다.



취업할 때 기분은 어땠나.

그냥 안심이 많이 됐다. 가족을 챙기면서 내 커리어도 이어나갈 수 있는 곳을 찾았다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이제 내 인생도 마냥 멈춰있는 게 아니라 다시 움직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기쁘다기보단, 안심이 참 많이 됐다.



입사 후 반년 정도 지났다. 요즘의 일상은 어떤가.

요즘은 일상은 저글링 하는 것과 비슷하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일정 관리가 관건이다. 하루 종일 분 단위로 쪼개서 쓰면서 회사와 아이 모두에게 충실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래도 내 힘으로 만들어낸 일상을 돌아보면 뿌듯함을 느낀다. 저녁시간엔 아이는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하고, 나는 그 옆에서 남은 잔업을 한다. 일을 하다 아이가 ‘엄마 나 다 했어’하면 그걸 봐주고, 나는 다시 일에 집중한다. 아이는 책을 읽고. 평일 저녁은 그렇게 책상 앞에 나란히 앉아서 각자 할 일도 하고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며 잔잔하게 보낸다.



엄마인 동시에 ‘경단녀’였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번 공백기가 생기고 나면 나이 때문에 위축되기가 쉽다. 아이에 대한 걱정도 발목을 잡고. 하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서라면 도전해도 괜찮다는 얘길 드리고 싶다.


나이도 많고, 학벌도 별로고, 코딩이 뭔지도 몰랐던 나도 지금은 개발자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지 않았나. 아이도 힘들어하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잘 자라주고 있다. 아이는 내 생각보다 강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커리어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처음 개발자로 취업을 준비할 땐 누구나 아는 회사에 들어가 연봉을 많이 받는 게 곧 커리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다르다. 물론 여전히 더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 더 유명한 회사에 다니고 싶단 생각은 있지만 성취감을 크게 느끼는 순간은 훨씬 더 일상과 맞닿아있다. 팀 안에서 내 역할을 해낼 때, 내가 내 삶을 위해서 시간을 할애하고 있음에도 아이가 엇나가지 않고 잘 자라주고 있는 걸 확인할 때 성취감을 느낀다. 모두 커리어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용기 내지 않았으면 느끼지 못했을 기쁨들이다.


연봉이나 주변의 시선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이 뭔지 알고, 그걸 실천할 용기를 내는 게 커리어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큰일을 낸다'는 건 뭐라고 생각하나.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으며, 최선의 일상을 지켜내는 것. ‘누구도’엔 물론 ‘나’도 포함된다. 어떻게 보면 지금은 두 번째 도전이다. 엄마가 됐을 뿐인데, 아이와 나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희생시켜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었다. 아이도 힘들어했고, 나는 결국 내게 가장 중요했던 일을 관둬야 했지만 지금은 내 삶을 원하는 대로 꾸려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의 일상을 계속해서 살아내는 게 내겐 큰일이다.




엄마 이후의 커리어

인종, 성별, MBTI까지, 세상엔 사람을 나누기 위해 고안된 다양한 분류법이 있다. 여기에 커리어를 기준 삼아 분류법을 하나 추가한다면, 이런 구분이 가능하지 않을까. 자신의 커리어에 마음 놓고 몰입할 수 있는 사람과, 커리어에 몰입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중요한 무언가를 감수해야 하는 사람.


위대함은 전자 중 큰일을 낸 사람을 위한 찬사다. 그렇다면 후자,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다짐을 하고 또 해야 겨우 삶을 전진시킬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찬사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윤수는 커리어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내가 처한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이 뭔지 알고, 그걸 실천할 용기를 내는 것”이라고 답했다. 아마도 후자에 가장 적당한 찬사는 '현명함'일 것이다.


'큰일 낸 이야기'의 세 번째 주인공은 36살에 개발자로 취업한 워킹맘이 아니라, 현명한 선택을 계속해서 쌓아나가고 있는 이윤수다.






누구나 큰일 낼 수 있어

스파르타코딩클럽



CREDIT

 이상우 | 팀스파르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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