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용기 내 사무실로 찾아온 피해자들 앞에서 최선을 다해 찾아보겠다는 약속은 밀려드는 업무와 현실 앞에서 많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소 사건은 이미 두 자매분이 처음 사무실로 찾아온 날부터 입건되기 시작하면서 사건은 1일차 시작되었고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는 범죄자는 피의자로 전환되면서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3개월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가져다주는 단서를 일일이 확인하느라 3개월, 전국에서 올라온 피해자들 조사와 보강조사에 3개월까지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버렸고 피의자가 사용한 이메일 안에서 발견된 엄청난 양의 데이터 분석으로 인해 밀려드는 다른 사건들이 적채 되고 있었습니다.
“형사님 이렇게라도 신경 써 주시고 수사하는 과정을 알려 주신 것만으로도 저희들은 너무 감사합니다!”
사건을 끌고 가다가 지칠 때면 피해자들에게 잘 지내고 있는지 한 번씩 전화를 드렸고 그럴 때마다 피해자분들은 저에게 많은 힘을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무실에 그렇게 자주 찾아오던 두 자매분이 짜증 나고 보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는 사무실에 한 번씩 방문해 줘서 커피를 나눠 마실 때면 왜 그렇게 편안해지고 사건에 더 매달려야겠다는 힘이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수사 능력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는 벽에 부딪히면서 시간은 흘러갔고 차마 사건은 종결할 수 없어 서류함에 몇 개월간 방치해 버렸습니다.
피해자분들과 자매분이 사건 진행 상황이 궁금해 찾아올 때면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둘러대고 그대로 사건은 서류함에 방치된 채 하얀색이던 서류 묶음들이 시간이 지나 누런색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놓친 건 뭐지?’
하루는 그동안 정리한 단서들을 쳐다보느라 미처 옆 사무실에서 점심 먹으러 가자는 소리를 듣지 못해 사진을 찍어 저에게 보내주었습니다. 출처:박중현
수백 페이지의 기록을 얼마나 자주 넘겨 봤으면 기록 모서리 부분이 제 손때가 묻어서 색깔이 변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외부의 도움을 찾기로 했습니다.
피해자들이 송금한 계좌가 농협이나 국민은행 같았으면 누가 범행을 저질렀는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인적사항은 금방 특정되겠지만 Santander Bank와 같은 국내에서 어떻게 조치를 취해 볼 방법이 없는 해외 계좌이다 보니 금융 쪽은 이 부분에서 막혀 더 이상 진행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관내에 있는 국민은행을 방문해 외환 담당자를 찾아가 피해자들이 송금한 해외계좌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경찰청에 전화를 해 해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수사 기관을 연결해 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연천경찰서 사이버팀 박중현이라고 합니다. 수사 중인 사건이 하나 있는데 해외 수사기관 좀 연결해 주실 수 있나요?”
국내 파견 나와있는 이분들과 같이 일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경기북부지방경찰청과 경찰청 외사국 사이버안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사무실로 들어가 사건 설명하고 찾아다니고 전화를 돌렸습니다.
“그러면 제가 국내 파견 나와있는 해외 수사기관분 연락처를 알려 드릴 테니 전화를 해 보세요!”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서 제 사건 설명을 듣고 국내에 파견 나와있는 해외 수사기관 담당자분을 연결해 주었습니다.
영화 시카리오(sicario)에서 FBI와 함께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는 인물들이 소속된 수사기관으로 국내에서 파견 나와 미국과 국내 다크넷(DarkNet)과 다크 웹(DarkWeb)상에서 아동 성착취 영상물을 유포하는 범죄자자들을 함께 검거하는데 국내 경찰청 사이버안전국과 공조수사를 하고 있는 기관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국내에서만 허우적대고 있던 수사 방향을 모두 해외로 포커스를 맞추고 그동안 작성한 사건 서류들을 모조리 다시 꺼내 해외로 연결된 단서들을 다시 정리하였습니다.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송금받은 해외 계좌.
피의자가 사용한 해외 사이트 가입정보.
피의자가 사용한 특정 해외 숙박업체 사이트.
곧바로 해외 수사기관 담당자와 면담 일자를 정하고 그동안 정리한 두꺼운 사건 기록을 들고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해외 수사기관이라 그런지 사무실 방문 전 저에 대한 모든 인적사항을 미리 건네주었고 방문을 위해 출입할 차량, 동행자에 대한 정보도 요구하였습니다.
출입 통제를 지나 기록을 들고 사무실을 방문하였습니다.
이어서 두 분의 수사관과 인사를 나누고 그동안 진행한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하였습니다.
두 수사관은 저의 사건 브리핑을 집중해 들으면서 중간중간에 질문도 많이 하였습니다.
“제가 수사가 막혔던 부분인데 이것만 확인된다면 수사가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풀리지 못했던 수사 단서들을 보여주며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이 부분은 저희들이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만났던 두 분의 수사관은 그 뒤로 2번 더 수사회의를 가졌고 그때 도움을 받았던 고마움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미국 수사기관 신분으로 처음 들어보던 시골 경찰서 수사관이 혼자서 사건을 끌고 가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저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셨습니다.
“저희는 주로 경찰청하고 일하는데 이렇게 경찰서 수사관이 직접 방문하신 적은 처음인데 혼자서 사건을 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시군요!”
“저는 영화에서만 보던 미국 수사기관과 이렇게 함께 일하게 된 것만 해도 너무 영광입니다.”
이 사건을 진행하면서 외국 수사기관과 함께 일하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 간 형사사법공조 시스템이 앞으로 사이버범죄 수사 해결의 핵심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국제공조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2018년 2월 정보보호대학원 석사논문도 형사사법공조 시스템에 관한 주제를 다뤘습니다.
해외 수사기관 앞에서 3차례 수사회의를 가졌고 이분들 앞에서 사건 브리핑을 했던 그 순간은 앞으로 닥치게 될 어려운 고난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출처:박중현
두 자매가 방문하면서 혼자서 끌고 가던 사건은 투트랙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해외와 관련된 단서들은 미국 수사 가관에서 그리고 사건의 주체는 바로 나.
정말 생각지도 못한 지원군이 생기니 처음 봤을 때 막혔던 사건의 단서들이 새로운 관점으로 보이게 되고 핵심 단서들이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 처음 피의자의 이메일에서 발견한 메일 중 하나가 상당히 의심스러웠는데 다시 들여다보니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Dear '피의자가 사용한 가명’
당신이 사용하던 ‘피의자가 사용하던 이메일 주소’ 아이디가 성공적으로 리셋되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 변화를 시도한 게 아니거나 접근 권한이 없는 누군가가 시도한 거라면 ‘iforgot.apple.com’에 접속해서 그 즉시 비밀번호를 변경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도움이 필요하면 Apple Support에 접속해서 문의하세요.
피의자의 메일함에 들어있던 이 한통의 이메일은 저의 뒤통수를 강하게 때렸습니다.
'이 한통의 이메일로 역으로 올라가면 되겠다!'
리버싱 기법으로 하나하나 역순으로 타고 올라가면 그동안 수집했던 데이터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