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영화는 사람에게 많은 것을 전달한다. 스토리를 전달하고 때론 아름다운 영상을 전달하고, 또는 BGM이라는 영역도 존재한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이런 여러 가지를 골고루 섞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영화를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던져놓은 여러 가지 장치를 자신의 관점에서 보고 즐긴다. 어떤 사람은 환희에 울고, 어떤 이는 옛 생각에 훌쩍인다. 또 다른 사람은 새로운 내일을 기대하기도 하고 일부는 자신의 이야기라며 떠벌이기도 한다. 그렇게 영화라는 미디어는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영향력을 미친다.
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즐겨 듣던 노래에 대한 향수를 느낄 것이고 어떤 이는 영국과 유럽의 히피와 68 혁명에 대해 생각할 것이며, 또 어떤 사람은 퀸과 같은 록 그룹을 꿈꿀 것이고 다른 사람은 남들과 다른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공유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난 이 영화를 보면서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그 옛날 엄혹했던 시절, 토요일에 교련조회를 하고, 교장 선생에게 “받들어 총!”을 외쳤던 그 시절. 군사정권 시절의 폭압이 엄연히 존재한 시절이었지만 반대로 이곳저곳에서 변화가 감지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 때 우리들은 헤비메탈을 들었고 디스코에 빠졌으며 일부는 디스코장에 출근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옆에서 잠만 잤던 짝꿍은 늘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밥을 먹을 때도,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물론 수업 시간에도 한쪽 귀에는 이어폰이 걸려 있었다. 소니의 워크맨이 전 세계 청소년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꿔놓았던 시절, 우리나라에서는 마이마이, 아하 등과 같은 국산 테이프 플레이어가 대세를 이뤘다. 간혹 청계천과 세운상가에서 소니와 파나소닉, 아이와와 같은 일본산 플레이어를 구한 친구들도 있었다. 일본 상품을 정식으로 수입하지 않던 시절이었는데도 많은 친구들이 일제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우리 반에서는 아이와를 가진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은 거기에서 음악을 들었고 공부를 했으며 별밤에 보낸 사연을 들었다. 그런데 내 짝꿍은 파나소닉에서 스콜피온스(사실 더 많은 헤비메탈 그룹이 있었는데 이것만 생각남) 등과 같은 헤비메탈을 들었다. 간혼 백두산과 부활도 들었던 것 같고 테이프 중 하나에 퀸이 섞여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헤비메탈에는 파나소닉이라는 말도 덧붙였던 듯하다. 친구는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한쪽 이어폰을 빌려주곤 했는데 상당수는 고막을 찢는 듯한 것들이어서 이어폰을 던져버리곤 했다.
난 당시에는 록은 물론 팝송을 좋아하지 않았다. 간혹 라디오에서 들었던 게 전부였다. 그 때 마이클 잭슨이 있었고 아하, 보이 조지, 웨슬리라이프, 아바, 빌리 조엘, 밥 딜런, 에릭 크립톤, 에어 서플라이, 조지 마이클, 리차드 막스 등이 기억난다. 이후 책에서 재즈를 듣고, 록과 블루스, 힙합을 읽은 후 이들을 다시 듣기는 했지만 빠져들지는 못했다. 그래도 음악을 들으면서 예전과는 다른 감성을 느낄 수는 있었다.
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스토리보다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 세상의 많은 음악이 그렇듯이 편견과의 싸움과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이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또 무엇이든 과하게 되면 애초의 순수성을 잃게 되는 교훈까지.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런 영화는 어두컴컴한 극장이 아니라 윔블리 스타디움과 같은 탁 트인 공간에서 여럿이 소리를 질러가며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근데 내 짝 경태는 지금 뭐하고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