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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민 Mar 16. 2020

비인기 종목 전성시대

 "왜 이 좋은걸 여태 몰랐을까?"

2019년 6월 프로 당구가 출범했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 골프에 이은 6번째 프로 종목을 선언이다. 프로화를 맞이한 당구 종목이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 글은 당구를 포함한 비인기 종목 활성화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척박한 대한민국 스포츠 환경에도 불구하고 선전하고 있는 피겨, 격투기, 씨름, 컬링 종목의 성장에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지금부터 비인기 종목 성장 과정에 어떤 비결이 숨어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피겨 종목을 살펴보자.


한민국 피겨에 대한 관심은 김연아로부터 시작했다. 김연아는 피겨불모지인 대한민국에 혜성처럼 등장해 한 시대를 풍미했다. 열악한 피겨 환경을 감안한다면 정말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전통적으로 동계 종목은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과 같은 속도감 있는 종목이 인기를 끌었는데 생소한 피겨종목에서 좋은 성적이 나오자 대중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피겨 종목은 기술뿐만 아니라 예술성이 부각되는 종목인데 대중들은 김연아 선수 경기를 보면서 마치 한편의 공연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이전 동계종목에서 느끼지 보지 못한 생소한 경험이었다.

2007년 대형 스포츠 마케팅 사와 계약을 맺으며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된 김연아는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완벽한 연기를 펼치며 신기록을 세우고 우승했다. 김연아 선수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은메달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스포츠 비지니스 관점에서 눈 여겨 볼 지점은 김연아 선수를 매개체로 피겨 종목뿐만 아니라 비인기 종목 자체가 크게 활성화 되었다는 점이다. 초기 김연아 선수에 집중되었던 스폰서십 활동이 시간이 지나면서 빙상연맹 마케팅으로 옮겨간 것이다. 현재 빙상연맹 후원사는 SK텔레콤, KB금융그룹과 같은 대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이후 연맹-협회 스폰서십 활동은 빙상 연맹을 필두로 체조, 배드민턴, 바이애슬론, 트라이애슬론, 컬링, 역도 등과 같은 비인기 종목으로 확산된다. 김연아 선수 등장이 대한민국 빙상 종목을 넘어 비인기종목 자체를 활성화 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도 눈에 띈다. 2011년에는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제작되기도 했다. 김연아가 진행하고 심사하는 피겨 스케이팅 프로그램으로 크리스탈(가수)과 김병만(개그맨)이 우승을 차지했다. 크리스탈과 김병만은 2011년 8월 김연아 아이스 쇼에 초대되어 실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광고모델로서 김연아 활약도 두드러진다. 김연아 선수 이름을 내건 연아 빵부터, 쥬얼리, 화장품, 에어컨, 우유까지 당시 10여개 광고 모델로 출연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은 김연아 열풍이었다. 피겨 인구가 늘어났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보는 스포츠’로 써 피겨뿐만 아니라 '하는 스포츠'로 써 피겨도 활성화 되었다. 이제 어린 아이들 둔 학부모들은 한번 정도는 아이들에게 피겨를 권할 정도가 된 것이다.


2020년 2월 김연아가 4대륙 피겨 선수권 대회에 나섰다. 이번에는 수상자가 아닌 시상자로 나선 것이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유영(16, 과천고)에게 메달을 건네는 김연아 모습에 대중들은 여전히 환호를 보낸다. 김연아 선수 등장 이후 수많은 연아키즈들이 등장했다. 스타는 스타를 낳는다. 피겨에 대한 관심은 포스트 김연아를 갈망하는 대중들의 욕망과 맞물려 있다. 피겨 종목은 한 명의 스타로 인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다음은 격투기 종목을 살펴보겠다.


70년대 프로레슬링, 80년대 프로복싱, 90년대 씨름의 시대가 지나고 바야흐로 종합격투기(MMA, Mixed Martial Art)의 시대다. 격투기는 경기 방식에 따라 입식타격기와 종합격투기로 나뉜다. 입식 타격은 말 그대로 서서 하는 경기다. 주먹·발·무릎 등을 이용해 상대를 가격하는 방식이다. 종합격투기는 입식타격 기술에 메치기, 조르기, 누르기, 관절 꺾기 등 그라운드 기술이 포함되어 있다.


대한민국 투기 종목은 최홍만으로부터 시작했다. 당시 최홍만 선수는 입식타격 단체인 K-1에서 활동했다. 최홍만은 압도적인 피지컬로 당대 최고 파이터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깜짝 선전했다. 대중들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격투기에 대한 폭력적인 이미지는 최홍만 선수 등장 이후 크게 개선된다. 최홍만 선수는 경기와 더불어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운동 선수로서 훈련을 등한시 한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오늘날 최홍만 선수 뒤를 이은 많은 격투기 선수들이 경기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공로는 부인할 수 없다. 예능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은 소통과 공감을 바탕으로 한 대중성 확보다. 최홍만 선수는 씨름-격투기-예능을 오가며 투기 종목을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재평가 되어야 한다.

투기 종목이 메이저 종목으로 떠오르게 된 결정적 계기는 격투기 서바이벌 프로그램 때문이다. 격투기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무명이거나 비교적 덜 알려진 선수들이 큰 무대로 진출하기 위한 여정을 다룬다. 국내에서는 2011년 '주먹이 운다'와 2017년 '겁 없는 녀석들'이 인기를 끌었다. 특히, '겁 없는 녀석들'은 지상파에서 제작되었는데 종합격투기 소재의 지상파 프로그램 출연은 격투기 종목이 어느덧 주류 콘텐츠 반열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해외로 눈을 돌려 동남아 진출을 염두 해 둔 새로운 격투기 프로그램(맞짱의 신)이 방송 중이다.

국내 격투기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UFC의 TUF(The Ultimate Fighter)나 복싱의 컨텐더(contender)와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했다. 최근 UFC는 새로운 방송 프로그램인 '데이나 화이트 컨텐더 시리즈(Dana White’s Contender Series)를 선보였는데 주목할 만한 점은 유망주 선수뿐만 아니라 최근 슬럼프를 겪고 있는 스타 선수나 타 단체 소속 선수도 함께 참가 한다는 것이다. UFC는 과거 화려한 이력을 소유한 스타 선수가 재기를 노리는 과정이나 UFC소속이 아닌 타 단체 소속 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다. 격투기 종목은 본 대회 보다 방송 프로그램이 더 큰 관심을 이끌 낼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미디어 친화적인 성격을 가진 대표적인 종목이다.


다음은 씨름 종목을 살펴보겠다.


90년대는 씨름의 시대다. 씨름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스포츠로써 가치를 지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만기, 이봉걸, 강호동 등 당대 씨름 스타 선수들에 열광했다. 하지만 씨름이 스모를 연상케 하는 비대한 선수들의 느릿한 몸싸움으로 변해버리며 대중들의 관심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전 씨름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씨름의 희열'이다. 유튜브에서 시작한 열기가 지상파로 이어졌다.


"이 좋은걸 할아버지들만 보고 있었네.” "이건 그냥 미친 경기다."


2018년 8월 학산배 전국 장사 씨름대회 단체전 결승전 유튜브 댓글이다. 비인기 종목인 씨름 관련 콘텐츠 조회가 270만을 넘겼다. 댓글만 해도 1만 7천 건을 훌쩍 넘겼다. 이 영상 이후 씨름 관련 콘텐츠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특이한 점은 덩치 큰 백두급이나 한라급이 주목 받던 과거와 달리 탄탄한 몸매와 잘생긴 외모를 가진 경량급 금강급(90kg이하), 태백급(80kg이하) 선수들이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대한씨름협회에서는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유튜브에 공식 채널을 개설해 젊은 세대를 겨냥한 홍보 영상을 제작하는 것은 물론 지상파와도 손을 잡았다. 씨름판 프로듀스 101인 '씨름의 희열'은 젊은 세대가 재발견한 씨름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뉴트로'열풍과 맞물려 씨름 신드롬을 일으킨 '씨름의 희열'은 회를 거듭할수록 자체 시청율을 경신했다. 2018년 8월 유튜브에서 시작된 씨름 열풍이 공중파를 통해 확산되기까지 약 1년 3개월 정도 시간이 걸렸다.

'씨름의 희열'을 주목해야 하는 건 단순히 젊고 잘생긴 선수들이 힘겨루기 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씨름 자체가 가진 매력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 과정에서 시청자는 시합에 어떤 기술이 들어갔는지 하나씩 배워갔다. 시합 이면에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느끼는 감정도 세심하게 표현했다. 이제 씨름 종목 선수들은 각각의 캐릭터를 갖게 되었다.


초대 장사로 등극한 임태혁 장사, 작은 체구지만 최고 승률을 자랑하는 윤필재 장사, 실력과 비쥬얼을 겸비한 손희찬, 이승호 장사, 시크한 매력을 뽐내는 박정우 장사, 강호동이 롤 모델인 전도언 장사, 부상투혼을 보여준 허선행 장사, 씨름인기 선봉장 황찬섭 장사와 같이 씨름의 희열에 출연한 씨름 선수들은 저마다 개성 있는 캐릭터를 가지게 된다.


4라운드 공개 방송에는 약6,000여명이 직관 신청을 하기도 했다. 2019년 11월30일~2020년 2월22일까지 방영된 '씨름의 희열'은 비인기 종목이 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화제성이 강한 유튜브 채널과 대중성을 기반으로 한 지상파 조합은 좋은 시너지를 보였다. '씨름의 희열' 흥행으로 대한씨름협회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교두보를 확보했다. 창원시로부터 씨름 관련 사업(훈련장, 역사박물관, 전용 경기장)에 500억 원 투자 유치를 받았고 KBS지상파와 2022년 말까지 중계권 계약을 완료했다. 씨름은 유튜브 채널과 지상파를 통해 단기간에 큰 성장을 이뤄냈다. 이전에 어떤 종목도 이렇게까지 빠르게 성장한 사례는 없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다음은 컬링 종목을 살펴보자.


한국 컬링은 국제무대에서 일찌감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2012.2월 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에서 4강에 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저변이 구축되어 있지 않은 환경 속에서 이뤄낸 성과이기에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컬링 열풍은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때 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유치원 교사, 휴학생 등으로 구성된 컬링팀은 제 2의 우생순으로 불리며 큰 화제를 낳았다. 특히 이슬비 선수에게 쏠린 관심이 컸다. 컬링 경기가 있는 날이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이슬비'가 오르내릴 정도였다. 귀여운 외모로 관심을 끌기 시작하더니 "잘 했어요 언니", "괜찮아요 언니"라는 '유행어'를 만들었다. 

4년 뒤 컬링 인기는 팀킴이 이끌었다. 2018년 아시아 최초 컬링 대표팀이 따낸 은메달은 본격적인 컬링 인기에 신호탄이 되었다. 평창동계올림픽 대회 기간 중 컬링종목에서는 대표팀 스킵(주장) 김은정(28)이 경기마다 애타게 외치는 '영미'를 패러디 한 각종 영상들이 쏟아졌다. 특히, 영미 송은 영미EDM, 영미헤비메탈, 영미랩버전 등으로 다양하게 만들어져 높은 조회수를 보이고 있다. 스브스 뉴스나 비디오 머그, 숏터뷰와 같이 SNS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매체들은 컬링 종목에 예능적 요소를 결합한 영상물을 만들어 내며 큰 호응을 이끌어 냈다.

그간 동계 스포츠 종목에 컬링이 설 자리는 없었다. 대중들은 빠른 스피드와 치열한 순위싸움이 오가는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을 선호했다. 이에 반해 컬링은 다소 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관심 받기 힘들었다. 하지만 미디어 컨텐츠로서 컬링은 달랐다. 약 2시간 30분 경기시간 동안 상반신이 자주 클로즈업 되었기 때문에 스폰서 로고 노출 효과가 뛰어났다. 컬링 종목은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대기업 스폰서를 유치했다.

방송사들은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실력과 인기가 검증된 컬링 편성을 정례화 했다. 팀킴 이후 준수한 외모를 가진 여자 팀 경기 시청률 상승이 눈에 띈다. 2019년 12월 16일부터 열린 코리아 컬링 리그(KCL)에서는 믹스 더블이 큰 화제가 되었다. TV시청률은 여자 팀 경기가 높았으나 실제 바이럴 효과는 믹스더블에서 발생되었다. 외모가 뛰어난 송유진 선수와 전재익 선수 두 선수간 케미가 온라인 상에서 큰 이슈가 된 것이다. 중계 방송사인 MBC SPORTS+와 엠스플뉴스는 이들 케미를 부각시키는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며 큰 버즈량을 이끌어 냈다. 펭수출연도 큰 화제를 낳았다. MBC SPORTS+는 펭수를 활용한 콜라보레이션 5부작 프로그램 제작을 통해 코리아 컬링 리그 대회 기간에 홍보활동을 병행했다. 특히, 1월6일에 방영된 팀킴 vs 펭수의 이벤트 매치가 많은 화제를 낳았다. 3월9일 현재 2백4십만 뷰를 기록 중이다. 컬링은 동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스폰서 노출 효과가 뛰어난 종목이다. 컬링은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스폰서 유치에 성공하며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확보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놀라운 성적을 보이고 있는 컬링은 이슬비, 팀킴, 송유진, 전재익과 같은 친숙한 스타 플레이어를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이상으로 피겨, 격투기, 씨름, 컬링 4가지 비인기종목 성공 스토리에 대해 살펴보았다.


종합하자면, 천편일률적으로 적용되는 특정한 성공 방정식은 없다는 점이다. 피겨는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김연아로부터 성장동력을 찾았고 격투기는 메인 경기 못지않게 '주먹이 운다'와 같은 방송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며 큰 성장을 이루었다. 씨름은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어느 날 자고 일어 났더니 갑자기 시작된 유튜브 씨름 열풍이 지상파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이다. '씨름의 희열'은 지상파에서 비인기 종목을 소재로 성공한 사례로 많은 비인기 종목들이 벤치마킹 할 사례로 떠올랐다. 지상파의 영향력이 예전만 같지 못하다고는 하나 케이블이나 뉴미디어 플랫폼이 특별할 이유 역시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공중파는 짧고 자극적인 영상을 담아내기에 부족하지만 심층인터뷰나 비하인드 인터뷰를 담아내기에 적합하다. 컬링은 뛰어난 스폰서 노출 효과를 앞세워 많은 스폰서를 유치했다. 동적인 스포츠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얼음판 위에서 정적인 스포츠가 가진 장점을 부각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결국, 비인기 종목은 자신에 상황과 환경에 맞는 조합을 찾아나서야 한다. 성공은 상수가 아닌 변수임을 기억하자. 한번 성공했다고 해서 다음에 성공하리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오늘날 우리가 '성공'이 아닌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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