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동기가 빚어내는 협상의 마법에 대한 연구
협상 테이블에서 가장 답답한 순간은 언제일까요. 저는 “제로섬 게임의 함정”에 빠졌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양쪽이 자기 몫을 지키는 데만 몰두하느라, 함께 더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서 흘려보내는 순간입니다.
18년간 HR 현장에서 협상하며 한 가지를 분명히 느꼈습니다. 똑같은 이슈를 두고도 어떤 테이블에서는 서로 양보하며 창의적인 해법을 찾고, 어떤 테이블에서는 끝까지 대립하다가 모두가 손해 보는 합의에 이릅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사회적 동기(social motives), 즉 협상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어떻게 다루는가가 협상 과정과 결과를 어떻게 바꾸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앞서 살펴본 신뢰가 협상의 바닥을 받쳐주는 토대라면, 사회적 동기는 그 위에서 어떤 상호작용을 펼칠지 방향을 정해주는 나침반에 가깝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보고 싶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협상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협상 과정과 결과는 실제로 달라지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 효과는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나타나는가?”
협상 연구에서 말하는 “사회적 동기”는, 협상자가 자신과 상대방의 결과 분배에 대해 어떤 선호를 가지는지를 뜻합니다. 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친사회적 동기(Prosocial): 나와 상대 모두의 이익을 함께 높이고 싶다.
개인주의적 동기(Individualistic): 내 이익을 최대한 많이 챙기고 싶다.
경쟁적 동기(Competitive): “얼마나 많이”보다 “상대보다 더 많이”가 중요하다.
직관적으로는 친사회적 동기를 가진 사람이 더 좋은 협상을 할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실제 데이터에서는 어떤 그림이 나올까요. 그리고 이런 동기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정보 교환, 양보, 문제 해결 등)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 어떤 성과로 연결될까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De Dreu, Weingart, Kwon 연구진은 바로 이 질문을 메타분석으로 다뤘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수행된 28개 연구, 2,400여 명의 데이터를 모아, 사회적 동기가 협상 행동과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연구진은 두 가지 이론적 관점을 비교했습니다.
목표/기대 이론(Goal/Expectancy 계열): 친사회적 동기가 “함께 잘 될 것”이라는 기대를 만들고, 이것이 정보 교환과 문제 해결 행동을 늘려 통합적 결과로 이어진다는 관점
관심의 유연성 모델(Flexibility-of-Concerns): 친사회적 동기가 “상대 이익에 대한 관심”을 키워, 더 유연한 전략 선택과 조정 행동을 이끌어낸다는 관점
두 이론 모두 “친사회적 동기 → 협력적 과정 → 더 좋은 결과”라는 큰 방향은 같지만, 어디에 초점을 두는지가 조금 다릅니다.
메타분석 결과, 친사회적 동기를 가진 협상자들은 뚜렷이 다른 패턴을 보였습니다.
정보를 더 많이 교환했습니다 (효과크기 r≈.29)
자신의 우선순위와 이익을 더 솔직하게 공유하고, 상대의 우선순위를 적극적으로 파악하려 했습니다.
더 높은 공동 이익을 달성했습니다 (r≈.29)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통합적 해법에 도달하는 비율이 높았습니다.
더 많은 양보를 했습니다 (r≈.22)
교착 상태에서 먼저 양보하며 판을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대로 개인주의적·경쟁적 동기를 가진 협상자들은 정보 교환이 적고, 문제 해결보다는 대치와 밀어붙이기에 더 많이 머물렀으며, 그 결과 공동 이익 수준도 낮았습니다.
연구진은 친사회적 동기가 어떻게 결과로 이어지는지, 그 경로도 분석했습니다. 가장 잘 지지된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친사회적 동기 → 정보 교환 증가 → 공동 이익 증가
친사회적 동기를 가진 협상자는 상대의 필요와 제약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쓰고, 자신의 우선순위도 더 개방적으로 공유합니다. 이 정보들이 쌓이면서, 서로에게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교환하는 통합적 합의에 도달하기가 쉬워집니다.
결국 “좋은 마음” 자체가 결과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정보를 더 주고받는 행동”으로 실현될 때 공동 성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많은 실무자가 걱정하는 부분은 여기입니다.
“상대도 생각하다 보면, 결국 내 몫이 줄어드는 것 아닌가?”
이 메타분석에서 흥미로운 점은, 친사회적 동기가 개인 성과에 미치는 효과가 매우 작고(효과크기 r≈.06), 통계적으로도 미묘한 수준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친사회적 동기를 가진 협상자가 눈에 띄게 손해를 보지도, 크게 이득을 보지도 않는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공동 성과는 분명히 높아진다.
내 몫은 크게 줄지 않는다.
“둘이 같이 더 많이 벌면서, 내 자리도 대체로 유지되는” 그림에 가깝다.
사회적 동기의 효과는 모든 상황에서 똑같지 않았습니다.
양측 모두 친사회적일 때: 정보 교환과 공동 이익이 가장 크게 높아졌습니다.
한쪽만 친사회적일 때: 효과는 있었지만, 위만큼 강하지는 않았습니다.
협상 구조가 복잡할 때: 이슈가 여러 개고 교환·조합의 여지가 크면, 친사회적 동기의 효과가 훨씬 더 두드러졌습니다. 단일 이슈·순수 분배 협상에서는 차이가 제한적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서양·비서양 문화권을 비교했을 때 사회적 동기의 효과 크기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상대도 잘 되게 하고 싶다”는 동기가 협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현상 자체는 문화권을 넘어 비교적 안정적으로 나타난 셈입니다.
이 논문을 읽으면서, 임단협 협상에서 있었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복지 제도 개편을 논의하던 자리에서, 노조 대표가 회의 초반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조합원 이익만 보는 게 아닙니다. 회사가 지속가능해야 우리도 지속가능하니까요. 다만 공정하게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이 한마디가 공기를 바꿨습니다. 사측도 방어적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재무 상황을 꽤 구체적으로 열었습니다.
“올해 복지 예산은 이 정도입니다.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지 같이 고민해보시죠.” 그 뒤 3시간 동안은 정말 “정보 교환”의 시간에 가까웠습니다.
노조는 설문조사 결과를 공유했습니다. 젊은 직원들이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육아 지원이라는 데이터였습니다. 사측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복지는 역량개발 지원이라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결국 합의문에는 이런 해법이 담겼습니다. 육아휴직 기간을 확대하되, 복직 후 일정 기간 역량개발 프로그램 참여를 의무화하는 설계였습니다. 예산 총액은 거의 그대로였지만, 양측 모두의 핵심 목표를 엮어낸 통합적 패키지였습니다.
논문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양측 모두가 친사회적 동기를 갖고 테이블에 앉았고, 그 동기가 자연스럽게 “서로의 정보를 꺼내 놓는 과정”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합의였습니다.
다른 회사에서 경험한 협상은 정반대였습니다. 노사 모두 “우리가 얼마나 더 가져오느냐”에만 초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사측은 재정 정보를 거의 공유하지 않았고, 노조는 모든 제안을 의심했습니다.
결국 숫자상 타협은 했지만, 누구도 만족하지 않았고, 다음 해 테이블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메타분석에서 말하는 “공동 이익은 낮고, 정보 교환도 적은” 전형적인 패턴이었습니다.
이 연구에서 건질 수 있는 질문들을, 현장에서 바로 써볼 수 있는 체크리스트 형태로 정리해 봤습니다.
이번 협상에서 나는 상대의 이익도 함께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 몫만 보고 있는가?
내 목표는 ‘상대보다 더 많이’인가, 아니면 ‘둘이 함께 더 많이’인가?
지금 내 마음속 기본 가정은 ‘파이는 이미 정해져 있다’인가, ‘파이를 키울 여지가 있다’인가?
상대의 말 속에 ‘우리’라는 단어가 많은가, ‘나/너’가 많은가?
상대는 정보를 먼저 열어보려 하는가, 아니면 끝까지 감추려 하는가?
양보를 말할 때, ‘상호 이익’을 이야기하는가, ‘내가 손해 본다’는 느낌을 강조하는가?
이번 협상에서 양측이 모두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관계는 일회성인가,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얼굴을 봐야 하는 관계인가?
상대의 ‘진짜’ 관심사와 두려움은 무엇일까. 그걸 이해하려는 질문을 충분히 던졌는가?
나는 내 우선순위를 상대에게 명확하게 설명했는가?
상대 우선순위를 알기 위해, 어떤 질문을 한 번 더 던져볼 수 있을까?
지금 단계에서 부담 없이 먼저 열어도 되는 정보는 무엇인가?
오늘 협상에서 우리 둘은 정보를 충분히 교환했는가?
상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의 ‘차이’를 발견했는가?
그 차이를 활용한 교환 제안을 실제로 테이블에 올려봤는가?
협상 후 돌아보면, 내 사회적 동기는 어디에 가까웠는가. 더 친사회적으로 접근했다면 어떤 옵션이 가능했을까?
협상은 반드시 제로섬 게임일 필요가 없습니다. 상대가 성공한다고 해서 내가 실패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이긴다고 해서 상대가 완전히 져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메타분석이 보여주듯, 친사회적 동기를 가진 협상자들은 정보를 더 많이 주고받고, 통합적 해법을 더 자주 찾아내며, 그 결과 더 큰 공동의 파이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의외로, 그 과정에서 자신이 더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협상 테이블에 앉는 순간, 자동으로 “방어 모드”와 “경쟁 모드”가 켜진다는 데 있습니다. 상대를 의심하고, 정보를 숨기고, 양보를 약점으로 느끼는 순간, 우리 스스로 파이를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을 줄여버립니다.
이번 주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짧게만 자신에게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동기로 이 협상에 들어가고 있는가?” 그리고 의식적으로 선택해 보는 것입니다. “함께 더 큰 가치를 만드는 협상자” 쪽으로 방향을 살짝 돌려보겠다고요.
그 선택이 결국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그리고 우리의 다음 라운드 관계에도 가장 이로운 길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