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AI 3
누구나 한 번쯤 AI 챗봇과 대화하며 "이것 참 편리하군"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질문을 던지면 순식간에 답변이 나오고, 복잡한 데이터를 분석해서 깔끔한 결과물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며 기술의 진보에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실무에서 AI 솔루션을 기획하고 구축하다 보면, 기술의 화려함과 사용자의 실제 필요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진짜 질문은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사용자가 정말 무엇을 원하느냐에 있다.
기획자로서 AI 프로젝트를 이끌면서 가장 자주 마주하는 딜레마는 개발팀의 기술적 야심과 사용자의 현실적 필요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개발자들은 최신 알고리즘과 혁신적 기능에 몰두하고, 경영진은 시장에서 차별화될 수 있는 독창성을 요구한다. 하지만 정작 사용자들은 복잡한 기술보다는 자신의 일상 속 문제를 해결해 주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도구를 찾고 있다. 이 지점에서 기획자는 번역가가 되어야 한다. 기술의 언어를 사용자의 언어로, 사용자의 필요를 개발 가능한 스펙으로 옮기는 작업이 바로 AI 솔루션 기획의 핵심이다.
2023년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런 번역 작업의 중요성을 몸소 체험했다. 가상공간 플랫폼 개발 과제에서 초기 기획안은 기술적으로는 완벽했지만, 실제 사용자들이 가상공간에서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했다. 개발팀은 고해상도 렌더링과 실시간 상호작용에 집중했지만, 사용자 인터뷰를 통해 발견한 것은 다른 차원의 니즈였다. 사용자들은 화려한 그래픽보다는 직관적인 네비게이션을, 복잡한 기능보다는 간단한 협업 도구를 원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 중심의 접근법을 버리고 사용자 여정 중심으로 설계 방향을 전환했다. 사용자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기능들에 우선순위를 두고, 부차적인 기능들은 과감히 삭제하거나 서브메뉴로 이동시켰다. AI 기술은 사용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백그라운드에서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역할로 제한했다. 결과적으로 사용자들의 평균 체류 시간과 재방문율이 크게 향상되었고, 복잡한 기능들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만족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2024년 AI 기반 이미지 생성 도구 서비스를 기획할 때도 비슷한 통찰을 얻었다. 최신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해서 이미지를 자동 생성하는 기능은 기술적으로 인상적이었지만, 실제 디자이너들의 작업 플로우를 관찰해 보니 그들이 원하는 것은 완성된 이미지가 아니었다. 창작 과정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아이디어 스케치나 레퍼런스 이미지, 그리고 기존 작업물을 빠르게 변형할 수 있는 도구가 더 절실했다. 결국 AI가 완성품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창작 과정을 보조하는 파트너 역할을 하도록 서비스 컨셉을 전면 수정했다.
2023년 도면 인식 AI 시스템 개발에서는 기술과 사용자 니즈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초기 요구사항은 도면에서 부품을 자동으로 인식하는 것이었지만, 실제 현장 담당자들과 대화해 보니 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부품 인식을 넘어서 견적 관리까지 연결된 통합 워크플로우였다. 하지만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완전 자동화가 어려워서, 사람의 검토 과정을 포함한 반자동 시스템으로 설계 방향을 조정해야 했다.
2022년 관광 데이터 분석 플랫폼 로드맵을 설계할 때도 비슷한 패턴을 발견했다.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을 활용해서 관광 수요를 예측하는 시스템 구상안을 만들었지만, 실제 관광업계 종사자들이 원하는 것은 정교한 예측 수치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예측 결과를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행 가능한 가이드가 더 중요했다. 결국 로드맵에서는 예측 기능과 함께 상황별 대응 방안을 제시하는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했다.
사용자 경험 설계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사용자 자신도 명확히 알지 못하는 잠재적 필요를 발견하는 일이다. 사용자는 종종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고, 설사 표현한다고 해도 그것이 진짜 문제의 핵심이 아닌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사용자들이 "더 빠른 검색 기능"을 요구할 때 실제로는 검색 속도가 아니라 검색 결과의 정확성이나 관련성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더 많은 기능"을 원한다고 할 때는 오히려 기존 기능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아서 여러 도구를 오가며 작업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호소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깨달은 것은 사용자를 관찰하는 시선 자체가 하나의 전문 기술이라는 점이다. 2022년 당시에는 머신러닝 기반의 분류와 예측 모델이 주류였고, 컴퓨터비전도 기초적인 객체 인식 수준이었다. 2023년에는 메타버스 플랫폼과 VR/AR 기술이 본격화되면서 초기 생성형 AI가 등장했고, 2024년 들어서야 ChatGPT와 같은 대화형 AI가 상용화되며 생성형 AI 활용이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기술의 급속한 발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패턴을 분석하는 것은 도구의 영역이지만, 그 패턴이 의미하는 바를 해석하고 사용자의 진짜 의도를 추론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획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2022년에는 제한적인 머신러닝 도구로도 사용자 중심 설계가 필요했지만, 2025년 현재는 거의 모든 것이 기술적으로 구현 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기술적 가능성이 무한히 확장되는 지금, 무엇을 구현할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사용자에 대한 이해의 깊이에 달려있다. 훌륭한 AI 솔루션은 놀라운 기술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기술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사용자 중심 설계의 핵심은 기술을 감추는 데 있다. 가장 성공적인 AI 솔루션은 사용자가 AI의 존재를 잊고 자신의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투명함을 갖추고 있다. 복잡한 알고리즘은 뒤에 숨어있고, 사용자 앞에는 직관적이고 자연스러운 인터페이스만 드러나는 것이다.
사용자를 꿰뚫는 시선이란 결국 기술 너머에 있는 인간의 본질을 보는 눈이다. 사람들이 AI 도구를 사용하는 이유는 AI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도구를 통해 자신의 삶과 업무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기획자는 이런 변화에 대한 열망을 읽어내고, 기술을 통해 그 열망을 현실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화려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사용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세심한 배려들이다.
결국 AI 솔루션의 성공은 얼마나 똑똑한 AI를 만드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기술은 수단이고, 사용자의 삶이 목적이다. 이 순서를 바꾸는 순간,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의미를 잃게 된다. 진정한 혁신은 사용자가 기술의 복잡함을 느끼지 않고 자신만의 목표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자연스러움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