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mavera, 위로의 정원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

by Bona
2560px-Sandro_Botticelli_-_La_Primavera_-_Google_Art_Project.jpg Sandro Botticelli - "La Primavera" (1482) , Tempera on wood panel , Uffizi Gallery

완전한 타지, 뜻밖의 공간에서 아직 오려면 먼 이른 봄이 도래한 듯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내내 내게 그곳은 겨울 같은 스산함, 외로움 같은 정서로 깊게 각인되어있던 곳인데, 삶과 죽음이 ‘공존’함을 넘어 죽음에 대한 기억 역시 아름다울 수 있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던 곳이다.



┃2018년 1월 4일의 잘츠부르크 페터수도원 묘원

KakaoTalk_20251203_122700178_01.jpg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터 수도원 묘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극 후반부 나치를 피해 마리아의 수녀원으로 도망치며 잠시 몸을 숨기는 장소로 나온 곳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자는 죽음 이후를 돌보고, 그 죽음은 살아있는 자들의 마음을 돌보고.

한 번씩 스쳐 갔을 많은 생(生)의 위로의 순간, 삶과 죽음의 어우러짐과 소중함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묘사한 글을 도해한 장면 같았달까.


죽음이 가득한 묘원을 한걸음 한걸음 내딛일 때마다 내가 받은 인상은 죽음을 인식하는 것이 꼭 슬픔과 공허는 아니라는 것을. 무덤에 놓인 꽃들과 사진, 어떤 물건들을 보며 상상했던 것은 찾는 이와 거기 머문 이와의 추억, 살아있을 때의 따뜻함. 삶과 죽음의 영속성이었다.


제 맘대로 상상하는 것일지라도 나는 무덤을 거닐며 어떤 슬픔을 이식받기 보다 그들이 함께 했을 때의 기억, 죽음으로 하여금 생각나는 삶의 장면, 죽음으로 하여금 생각해 볼 미래들을 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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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냈을 따뜻한 저녁, 함께 맞이했을 아침 녘의 햇살과 한낮, 무덤 위에 올려진 크리스마스 리스처럼 언제고 그들이 지상에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 만들었을 크리스마스를 위한 장식들, 누군가에게 이런 기억의 향기를 남겼을 사람들이 여기 잠들어 있겠구나. 하고


그래서 이런 삶의 파편을 햇볕에 자주 비출 수 있게, 마음이 사무칠 땐 빗방울에 쓸어 보낼 수 있게, 내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우리의 무덤도, 죽음도 삶과 조금 가까워야 하지 않을까. 이런 삶과 죽음이 정원의 형태로 주변에 자리하면 참 좋겠다. 하는 상념이 들었다.

죽음이 가까이 있다면 우리는 각자의 몫으로 주어진 삶을 더 사랑하지 않을까.



일상의, 보통의 죽음이 기억된 곳을 거니는 것은 페터 수도원 묘원을 걸었던 것 처럼 어떤 잔잔하지만 묵직하게 뿌리내린 사랑이란 지면을 딛어 보는 것이 아닐까, 사랑을 느끼며 걷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그때에도, 지금도 잠시 죽음에 대한 관객이 되었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나의 죽음을 생각한다’


기억에 남았던 책 구절이 떠올라 함께 담아본다.


『라틴어 수업』- 한동훈
Hodie mihi, cras tibi
(호디에 미기, 크라스 티비)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로마의 공동묘지 입구에 새겨진 문장입니다. 오늘은 내가 관이 되어 들어왔고, 내일은 네가 관이 들어올 것이니,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라는 뜻의 문구입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영원으로부터 와서 유한을 살다 다시 영원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숨이 한번 끊어지면 그만인데도 영원에서 와서 인지 인간은 영원을 사는 것처럼 오늘을 삽니다. (…) 내일은 저 역시 관이 되어 누군가에게 기억으로 남을 것이고, 또 그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게 할 겁니다. 인간은 그렇게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죽음으로써 타인에게 기억이라는 것을 물려주는 존재입니다.


이제 거기에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해봅니다. 부모님이 남긴 향기는 제 안에 여전히 살아 있지만 그 다음을 만들어가는 것은 제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기억을 밑거름 삼아 내 삶의 향기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가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제 부모님에 대한 기억을 가슴에 담고 오늘을 살아가고자 하는 저를 통해 신은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또한 그렇게 해서 제 삶은 어떤 기억으로, 어떤 향기로 남게 될까 하고요. 아마도 그것은 제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하는 질문일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 ‘호디에 미기, 크라스 티비’와 더불어 다음의 말 한 마디를 함께 떠올려봅니다.


si vis vitam, para mortem (시 비스 바탐, 파라 모르템)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작가는 아름다움을 너무 아끼기에 마주치는 아름다움마다 아주 귀하게, 귀중하게 받아들인다. 귀하다는 것은 단지 내게 다가왔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이 아름다움이 발화되는 순간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한번 더 숙고하기에 느낄 수 있는 귀함. 내가 맞이할 수 있는 아름다움도 누군가에게 빚진 순간이라는 것을 아는 귀함.


그래서 그 귀한 마음이 귀하다.



작가를 통해 미학이란 삶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태도를 연마하는 학문인건가 하는 것,

추한 것을 추하다 말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을 굳건히 응시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알고 간다.



책 | 목정원,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양장본 HardCo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