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정의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를 읽었다. 작가가 직접 쓴 책은 아니고, 시인 김민정과 축구 코치 손웅정의 긴 인터뷰를 나열한 책이라고 보는 게 가장 정확할 것 같다. 그런 스타일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책"이라고 그 책을 접하기엔 책은 매거진 인터뷰 형식에 더 가깝다는 미리 전달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썼다.
책은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고 들었다. 실제로 손웅정이라는 인물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잘 보이고, 소위 말하는 "명언"같은 글귀도 정말 많다. 나도 많은 부분 밑줄 치며 생각하며 배웠는데, 아쉬운 점은 사례가 더 많았으면 하는 것이다. 손웅정이라는 인물이 엄청나게 많은 책들을 읽고 그의 '독서노트'들에 적으면서 읽어서 깨달은 부분을 넘어, 그것을 어떻게 적용했는지 혹은 왜 자신의 삶에도 그런 부분이 맞다고 생각했는지 조금 더 디테일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직접 책을 썼다면 그런 부분이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터뷰식으로 책을 엮은 것의 가장 큰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삶의 여러 가지 부분이 들어가 있어서, 많은 사람에게 도움 되는 부분들이 책 사이사이 다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나한테 와닿았던 부분들은 이렇다 (개인적으로 밑줄 친 부분들):
"항상 배고픔을 유지하고, 항상 어리석음을 유지하라는 거, 그건 항상 초심을 기억하라는 얘기잖아요. 결국 나의 모든 부분을 탁월하게 만들어주는 거, 그건 큰 의미에서의 불편함이죠."
기본은 불편한 것이다?
"그렇죠. 결국 불편함은 노력이에요. 내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요. 그런데 이 불편함이 지속된다는 건 한편으로는 내 몸에 좋은 습관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얘기잖아요."
예전 어떤 책에서 인간의 뇌는 '행복'에 맞춰져 있는 게 아니라 '편안함'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뇌과학 연구결과로 나왔다는 내용을 읽었던 적이 있다. 실제로 그 부분을 읽고 나서 그게 얼마나 정확한 통찰인가 느끼게 되었는데, 내가 무언가를 해야 궁극적으로 내가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으로서는 하기 싫어진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게 지금 당장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는 것일 수도 있고 (궁극적으로 예쁜 몸매와 건강은 나에게 '행복'을 줄 테지만 지금 집 밖에 나가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우리의 뇌는 즉각적인 반응으로 기피할 가능성이 크다) 공부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다.
"애들한테 휴대폰이 문제라면서, 그거 하나도 타협하지 못하면서, 부모들부터 죄다 거기 빠져 정신없으면서, 대체 뭘 어떻게 고친다는 거예요."
나도 아직 애를 가져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렇게 '훈육'하고 '룰세팅'하는 부분이 아마 훌륭한 부모로서의 최상의 난이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 아이가 떼쓸 때, 어떻게 해야 아이에게 짜증 내지 않으면서, 내가 너에게 지금 "이건 안돼!"라고 말하는 것은 다 너를 사랑하고 너를 위한 것이라서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애는 애고, 나는 나고, 애가 지금까지 해온 건 다 애 것이고, 내가 앞으로 할 것은 다 내 것이고. 일관성이 있어야 해요."
나는 실제로 아이를 '잘' 키운 부모님들을 그래도 기본적으로 존경하는 편인데, 이런 '부모로서의 훌륭함'말고 아이의 대단함이 부모의 대단함으로 옮겨가는 것을 기피한다. 한국에서 특히 부모들이 아이에게 자신을 투영하며 아이들을 혹사시키는 것을 보면 더욱더 그런 현상을 기피하게 된다. 우리 부모님은 이런 성향이 조금 적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서 나는 나의 삶을 사는 데에, 그리고 부모님은 부모님의 삶을 사는 것에 대한 경계선이 확실하시다) 대학교-대학교 졸업 시기에 부모님께서 내 미래에 대한 이런저런 욕심을 가지신 적이 있다. 그때 느꼈던 스트레스와 어려움은 아직도 기억난다. 어느 사람이던, 자아가 성립되고 자립심을 가지고 난 상황이라면 부모의 기대는 더 이상 반갑지 않다. 그때 아버지에게 긴 편지를 쓰며 이렇게 얘기했다. "엄마 아빠의 행복은 엄마 아빠한테서 찾아. 나한테서 찾으려고 하지 마. Each person is responsible for their own happiness." 그 시기를 지나고, 의대 가지 않겠다고 단식투쟁을 한 다음, 학자금 전부 내 명의로 정부에서 빌리고 갚았다. 그리고 나서야 부모님도 나를 오로지 따로 선 인격체로 인정을 한 것 같기도 하다.
"돈의 안락함에 안주하고, 또 고객의 요구에만 집중했다면 자동차회사 포드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대신 속도가 무지하게 빠른 마차는 만들어졌을지 모르죠. 꿰뚫어 봐야 해요. 통찰은 급변하는 미래를 예측하게 해주는 나만의 힘이지 않겠어요?"
스티브 잡스가 예전에 했던 말 중 그런 말이 있다고 한다. 대중은 본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더 안락하게, 더 풍성하게 만들지 모른다고.
요즘 내 생각도 그렇다. 시장이 무엇을 원하는지 열심히 파악할 필요는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다 보면, '내' 상상력에 의해 만들다 보면 언젠가 시장이 '어? 저거 나도 필요했던 것 같은데?' 이럴 수도 있다.
"반드시 가족 간에도 룰이 있어야 해요. 어떠한 경우에도 이 룰은 조정이 되거나 타협이 되어서는 안 돼요. 약속이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져요.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으면 애초에 약속을 하지 말든가요."
나도 부모님께서 한번 했던 약속은 꼭 지킨 가정에서 자란 사람인데, 이런 경우 나는 엄청나게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도 말에 무게를 가지고 한번 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질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쉽게 말해 '남을 너무 쉽게 믿는'사람이 된다. 나도 한번 뱉은 말은 끝까지 지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라는 생각.
하지만 살다 보니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오히려 약속을 잘 안 지키고, 했던 말을 까먹고, 한번 뱉었던 말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어쩌다가 저런 사람이 되었나, 싶으면 보통 집안에서부터 부모님들이 약속을 깨는 일이 빈번해서 그랬던 것 같다. "아, 한번 말을 해도 저렇게 번복해도 되는 거구나"라고 아이들도 상처받으면서 오히려 약속 자체를 엄청나게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그래야 아이도 상처를 덜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면 그런 가정에 있는 세상 모든 아이들을 안아주고 싶다. 얼마나 상처가 많았을까.
"이 안에 들어오면 죽기는 없어. 살기만 있어. 세상은 약자의 소리에 그 누구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아. 인생은 고난이라 그랬어. 지금 피 터지게 해야 이십대에 빛날 수 있고, 이십대에 더 피가 터져야 삼십대에 더 빛날 수 있어. 대충대충 안 돼. 설렁설렁도 없어."
아카데미에 오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얘기를 한다고 한다. 나도 개인적으로 10대가 20대를 만들고, 20대가 30대를 만들고, 30대에 다지는 기반이 40대부터 70대까지 쭉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 이런 이야기를 더 일찍 들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땐 그런 말 자체가 없었지만 저는 어린 시절 지금의 왕따 같은 거였거든요. 어쩌면 자처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친구도 없고, 친구 사귈 마음이 아예 없기도 했고, 또 사실 밥 먹고 축구만 해도 하루가 모자랐으니까요. 그런데 일찌감치 그건 알았던 것 같아요. 내가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강해지면 되는 거다, 하는 거요."
손웅정은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비슷한 학창 시절을 겪었는데, 나는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가고 잦은 이사 때문에 학교를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다시 들어가는 학교에서 혼자 밥을 먹거나, 친구 없이 쉬는 시간을 지낼 때가 많았는데, 결국 스스로 깨닫게 된 부분은 이 시기에 내가 나에게 해줄 것은 공부를 잘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밖에 남는 게 없다는 판단을 한 뒤로는, 중학교부터 가는 곳마다 전교 1등을 했다. 그러니까 신기하게 친구들이 오히려 붙었다. 처음엔 나를 자신들의 그룹프로젝트에 들어오게 하면서 "이용"하려는 목적들로 시작하다, 결국 나와 친구가 되고 나도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친구들이 생기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결국 사람들은 강자에게 다가오게 되어있다. 모두 살아남으려고 하기 때문에.
"저는 이기기 위한 뻥 축구는 절대로 안 해요. 예의가 살아 있는 축구를 하고 싶은 거예요. 전 다 젖혀두더라도 이 표현을 꼭 한번 듣고 싶은 거예요. "야, 참 아름답게 축구한다.""
(아이들 시합 전에 로커룸에서 손웅정 감독이 하는 말):
"잘 들어, 나 세가지만 얘기할 거야. 첫째는 투쟁심이야. 축구는 양복입고 치마 두르고 하는 거 아니야. 싸움할 의지가 없는 녀석은 가차없이 빼버릴 거야. 둘째는 자신감이야. 너희에게 실수는 없어. 경험만 있어. 이 경험이 쌓이고 쌓일수록 너희들 크게 성장해. 셋째는 판단력이야. 상황 파악을 빨리빨리 하라고. 많이 보는 만큼 옵션도 많이 생겨. 너희들이 보던 축구와 다른 거 해야 해."
책을 읽다 보면 군데군데 나오는 축구 얘기에서 그가 얼마나 축구라는 스포츠를 예술적으로 사랑하는지 느껴진다. 그리고 얼마나 그 '축구'라는 스포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는지도.
"제가 중고등학교 때 화장실을 가면요, 거기 벽에 명언이라든가 책의 멋진 글귀들이 많이 붙어 있고 그랬거든요. 생각해보면 교훈적이고 도덕적인 내용 아니면, 거기 써둘 리가 없을 텐데 오히려 너무 당연한 소리여서 무시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때 저한테는 타격감이 크게 오더라고요. 그걸 베껴두고 여러 번 읽었던 기억이 나요."
이 부분에서는 나도 참 공감 많이 했다. 나도 화장실에 이런 글귀들이 붙어있으면, 아니면 서점에서도 책을 휙휙 넘기다가 이렇게 와닿는 글들이 있으면 무언가 항상 느끼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글을 읽으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이런 글귀들에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네 밥그릇 네가 챙길 줄 알아야 해. 네가 안 챙기면 다 뺏겨. 전 행동으로 말했던 거에요... 어려서부터 애한테 위축되지 마라, 주눅들지 마라, 배짱을 키워라, 그런 얘기를 계속 했던 것도 중요한 건 너고, 네 꿈이고, 네 경기력이고, 거기서 밀리면 안된다는 걸 분명히 해주기 위함이었어요."
다 연결된 얘기지만, 정말 순수한 자신감,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닌 근거 있는 자신감이 있으려면 실력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 남들에게 당당하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또 동시에 무언가를 뺏길 때도 "이거 내 건데 왜 뺏어가요?"라고 되물을 수 있는 용기가 있으려면,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곳에서는 아쉬울게 없이 떠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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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확실한 것은, 손웅정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그는 굉장히 검소하지만, 책을 좋아하고 축구를 좋아한다. 운동이 습관이 된 사람이고, 옷이나 치장하는데 쓰는 것은 별로 없지만 향수는 몇 가지 골라 잘 쓴다. 세시 반에서 네시에 눈을 뜨고 집 환기부터 싹 시킨 뒤 돌돌이로 이부자리와 베개 위를 밀어대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에 청소와 정리정돈에 두서너 시간씩 쓴다. 단순함과 반복을 좋아하며, 루틴 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어느 독서모임에서 다룬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서모임에 가서는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기보다, 책에 나온 내용을 토대로 이런저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형식이었다. 생각보다는 약간 달랐지만 그래도 정말 재밌게 참여했다.
독서모임에서 호스트님이 준비한 발췌/질문들:
"그 마무리는 값지다 할 거예요. 어쨌거나 그 바람으로 제 삶에 더 충실하려 하고, 보다 정직하려 하는 노력은 더해질 수 있는 거잖아요. 제 침대가 방 한가운데에 놓여 있거든요. 그래야 그 양쪽 면을 다 청소할 수가 있잖아요. 그래 두면 침대와 벽 사이에 딱 제 한 몸 들어가 뉘일 공간이 생기는데 그 모양새가 딱 관 같더라고요. 저는 하루에 한 번씩 거기 딱 누워봐요.
그리고는 하루를 돌아봐요. 오늘 하루로 삶이 끝난다고 했을 때 무엇이 가장 후회되는 일일까. 그렇게 해서라도 후회를 챙기는 거죠."
오늘 하루 가장 후회되는 일은?
내 답변: 후회되는 일이 없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후회할만한 일들이 생기지 않는다. 실제로 과거에 대한 후회도 없다.
평소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부분인데, 나는 주어진 에너지를 다 쓰며 자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잠에 빨리, 쉽게 들고 꿈도 꾸지 않는다. 정말 죽은 듯이 자는데, 대학교 때 한 일주일정도 불안한 감정이 들었을 때는 잠을 쉽게 못 잤던 경험이 생각나면서 반대로 나는 정말 마음 편하게 인생을 살고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울지마, 먹지마, 실수하지마, 넘어지지 마, 약해지지 마" 그 마 좀 하지 말고 대신 그 돼 좀 하면 좋겠어요. "울어도 돼, 먹어도 돼, 실수해도 돼, 넘어져도 돼, 약해져도 돼." 자유를 주자는 얘기에요. 그 안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질서를 스스로 만들고 지켜가도록 부모는 돕기만 하면 되잖아요."
평소에 내가 나에게 많이 하는 말
내 답변: 나에게 하는 "말" 이라기보다 미래에 하고 싶은 일들을 자주 그림으로 상상한다. 나는 생각을 항상 말/언어보다 그림/상황으로 하는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스스로에게 말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대신,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수십 가지의 내 모습이 있다. 언젠가 내 취향을 잔뜩 담은 모던한 커피숍을 차리는 내 모습, 내가 원하는 어깨와 팔 라인으로 가꾼 뒤 예쁜 드레스를 사는 모습 등등.
내가 나에게 자율성을 주기 위해 내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내 답변: 현재도 필요한 만큼 자유로운 것 같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정도의 자유가 좋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다른 사람 힘들게 하지 않는 선에서 내가 세상을 만끽할 수 있는 자유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저는 그 혜성이란 비유가 별로 달갑지 않아요. 이게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 마치 아무런 노력 없이 그저 운이 좋아 갑자기 반짝 반짝 빛나게 된 줄로 착각하게 만들기 쉽잖아요. 저는 북극성을 생각하는 거죠. 버티기라는 거죠. 언제나 그 자리라는 거죠. 늘 같다는 거죠. 길잡이라는 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거죠."
혜성에 대한 나의 의견은?
내 답변: 사실 삶에 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혜성같은 순간"은 한번씩 찾아오는 것 같고, 그게 크던 작던 소위말하는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그 전성기를 만끽하며 누리는 것도 인생의 중요한 경험인 것 같다.
나는 북극성인가?
내 답변: 북극성/혜성으로 나누거나 무엇이 더 좋다/별로다 나눌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북극성 같은 습관을 만들고 그것을 토대로 사는 것이 나와 체질적으로는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한번 그런게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사는 삶도 그대로 멋질거라 생각한다.
북극성이 되기 위해 하고 있는 노력이 있다면?
작가는 "북극성"을 버티며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정의를 했는데, 만약 내가 '나'를 잃지 않고 세상에서 버티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열정을 아까워 하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 나는 어느 조직에서나 시키지 않은 일까지 하고, 다른 사람을 돕거나 내 팀에 기여를 하는 것을 아까워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데 동기부여가 크게 문제되지 않았고 그 이후에도 크게 아깝지 않았는데, 그게 어쩌면 '로펌'이라는 시스템 안에 있어서 그랬던게 아닌가 싶은 마음도 있다.
최근에 아무도 나에게 시키지 않은 일을 팀의 효율성을 위해 (내 기준에) 꽤 열심히 했는데, 하다가도 "나 혼자 이렇게 하는 게 맞나..." / "이래서 나한테 돌아오는건 뭐지..." / "누구 좋으라고..." 그런 생각들이 드는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 자신이 이런 사람인데 어쩌겠는가. 항상 조직에게 필요한 부분들이 보이거나, 주어진 일을 200%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다. 예전에 어디서 읽었던 인터뷰에서 나온 내용인데: "빵 굽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남들과 똑같이 굽는 것을 부끄러워 하라"라는 식의 생각으로 항상 일을 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렇게 일을 하는데 아까워 하지 않기로 결정하며 나아가야 할 것 같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노동법부터 개선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