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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봄 Sep 11. 2024

할머니를 인터뷰하기로 마음먹다

할머니를 인터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잘 살고 있다가 불현듯 마음을 먹은 이유는 할머니와의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걸 깨달아서이다. 어렸을 때는 주변인의 죽음을 겪은 적이 없어 남은 자의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나에게 죽음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기사 속에서, 주변인의 건너 건너서가 다였다. 스무 살이 넘도록 나에게 죽음은 직접적으로 다가온 적이 없어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처음 겪는 주변인의 상실이었다.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어이, 조양." 하고 다정하게 불러 주시던 그 환한 웃음이 아직까지 기억에 생경한데, 할아버지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셨다. 다시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찍어 둔 짧은 영상을 보는 방법밖에 없어 할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가끔 돌려 보곤 했다.


그 영상은 할아버지가 암으로 입원해 계실 때 어디서 가까운 사람의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두라는 말이 기억나 찍어 둔 영상이었다. 영상의 길이는 15초짜리 동영상으로 “할아버지 이쪽 봐 주세요.” 했을 때의 할아버지의 ”오냐, 오냐.“ 음성만이 담겨 있다. 당시에는 그 영상이라도 남겨 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15초 가량만 찍어 둔 걸 처음으로 후회한 적이 있다.


가족끼리 다 같이 티비 프로를 보고 있을 때였다. 티비 화면에서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인터뷰 영상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중년 남성이 나왔다. 티비 속 중년 남성은 “어머니의 인터뷰를 보고 있으면 어머니가 꼭 살아 계신 것 같아 좋아요.” 라고 말을 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당시, 할아버지의 짧은 영상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던 아빠가 떠올랐다.


나는 아빠가 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나에게 영상을 직접 찍었냐 묻는 아빠의 눈은 시뻘게져 있어 말을 얼버무렸던 기억이 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아빠였지만 그 눈은 아빠가 슬프다는 걸 나타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이가 든다고 슬픔이 줄어드는 게 아니었다. 아빠는 그저 묻어 두는 게 익숙할 뿐이라는 걸 알게 됐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티비 속 중년을 보고 있으니 문득 아빠도 그리움을 느낄지 궁금했다. 슬픔도, 그리움도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었다. 그때 아빠가 내게 말을 걸어 왔다. “전에 할아버지 영상 찍어 둔 거 있지 않았나.” 하고. 휴대폰 앨범에서 할아버지의 영상을 찾아 보여 주니 할아버지의 얼굴이 나왔고, 아빠는 15초짜리 영상을 한참을 반복해서 봤다. 그러고 아빠는 말했다. “와 이리 짧노.”  


돌아가시기 전에 할아버지 영상을 남겨 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빠의 말처럼 티비 속 인터뷰 영상과 15초짜리 영상의 길이는 너무나 대조되어 처음으로 후회했다. 영상을 찍는 게 뭐가 어렵다고, 조금만 더 길게 남겨 둘 걸 싶었다. 그때는 주변인을 떠나보내고 남은 자로 살아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나이였다. 이걸 미리 알았다면 추억할 거리를 더 많이 남겨 뒀을 텐데.


그래서 할머니를 인터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더 이상의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주변인을 떠나보내고 남은 자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잘 살아가다가도 문득 그 이름이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지나간 추억을 꺼내 보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사랑했던 이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생생하게 담긴 영상이 있다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가족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영상이라면 더더욱.


죽음을 생각하면 아득해져 온다. 나의 죽음이나 주변인의 죽음을 떠올리면 무섭기만 해 죽음은 나와 무관한 일이라며 그동안 외면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두려움에 떨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다. 할아버지를 떠나보냈지만 우리 곁에 남으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리고 전하는 것. 아직 할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남아 있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지는 못해도 더 값지게 쓰고 싶다. 그러니 앞으로는 할머니와의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고, 할머니가 그리워질 때마다 들여다볼 수 있는 추억을 많이 만들고자 이 이야기를 써 내려 간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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